오두산통일전망대에 서면 강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데 한강 이쪽에서 저쪽을 바로 건너는 다리가 없다.
앞뒤꼭지 삼천리인데 삥 돌아서 육천리가 되는 것, 집에서 80km 쯤 떨어진...돌아서 가니 멀다.
현재 몇 군데 밖에 없는 민통선 마을, 문수산 북쪽에 있는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다.
인연이다. 인연이 있는 사람은 헤어져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스님의 말씀대로 뜸했었는데...
바람이 고요 숲으로 불었다. 검문소에서 신분확인을 받고 서약서를 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간첩이 아니라면 통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동네로 들어섰는데 어디에도 묘적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없다.
철당간에 깃발을 매달지도 않았고 일주문을 꾸미지도 않았다.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 손바닥 크기의 묘적사라는 조그마한 그림명패하나를 간신히 찾아냈다.
낚은 단독주택을 손질해 토굴(진짜 토굴이 아니라 허름한 수행공간을 스님이 그리 말씀하시는 것)
을 만드신 것인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갈 와편조각이 마당에 수북이 쌓여있다.
「글 잘 쓰고, 글씨 잘 쓰고, 차 잘 우리고, 전각(篆刻) 잘하는...」 석여공스님의 수행공간 묘적사다.
전각작업이 얼마나 힘들면 각고(刻苦)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시중드는 동자승도 없다.
힘든 일을 하다가 다친 어깨탈골의 후유증으로 땔나무도 못하신다며 방에 불도 지피지 않으셨다.
수행의 방편인 와편전각뿐만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는 일상이 모두 각고의 노력임이 이곳저곳에 보인다.
차 한 잔 얻어 마시려고 찾아들었다가, 차를 우려내는 스님의 현란한 손놀림에 홀리고 말씀에 취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갔는지 제대로 모른다. 하여튼 보이차 열 잔은 족히 마셨다. 눈매는 매섭지만 부드럽고, 어려운 말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지도 않았다. 우주와 인간세상, 동서고금을 벽 없이 넘나드는 해박한 식견은 이론이 아닌 깊은 성찰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편안하게 이어가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法問이다. 그러게 대화 그 자체가 바로 說法인 것이지.
그렇다고 몽매한 내가 무엇을 얼마나 배우고 깨닫겠는가?
그저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조금씩 스며들고 느낄 뿐이다.
스님은 아내에게 시집 ‘앉으라 고요’를 건네 주셨고,
우리는 강화도로 넘어가는 도중에 들렸기 때문에 시간에 쫓겨 결국 일어서야만 했다.
스님은 헤어지면서 '내일 집에 가는 길에 꼭 다시 들렸다가시라.'고 거듭 당부하신다.
오늘 다시 찾았다. 구면이라서 이무럽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차를 우려내셨고,
즉석에서 게송(揭頌, 불교적 시의 한 형식)을 쓰고 낙관을 찍어 주셨다.
茗禪(명선)
여기서 茗은 ‘차의 싹 명’자로 “차의 근본(씨앗, 마음의 차)”을 뜻하고 禪은 ‘선 선’자로 ‘선’ 또는 ‘좌선’을 말한다. 따라서 茗禪(명선)이란 “차를 마시고 禪(선)에 든다.”는 말이다. 禪茶一如(선다일여, 선과 차는 한결같다), 茶禪一如(다선일여), 茶禪一味(다선일미, 차와 선은 한 맛이다), 禪茶一味(선다일미)는 모두 한 가지 말이다.
새의 날개깃으로 만든 붓으로 쓰셨다.
글씨는 그림(상형문자)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글씨는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이라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禪자에 난꽃 두 송이가 피었다.
일필휘지로 친 연꽃. 난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치는 것이다. 술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치는 것이라 하신다. ‘친다.’는 것에 대하여 글을 써 올리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작품은 모두 佛心이 통하는 아내에게 주신 것이다.
•心生(심생) 마음이 일어나니
•故種種(고종종) 고로 <種種은 강조의 의미인데 따로 번역하지 않는다.>
•法生(법생) 법이 일어 나고
•心滅(심멸) 마음이 멸하니
•故龕墳(고감분) 무덤과 부처님 감실이 <龕(감실 감): 감실(신주를 모셔두는 장欌). 절의 탑>
•不二(불이) 둘이 아니로다.
•如空(여공) 여공스님 씀.
원효의 오송(悟頌)에서 나온 말이다. 마음이 생겨나면 그 마음 따라 온갖 현상이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그 마음 따라 생겨났던 현상도 없어지는 것이니, 무덤과 부처님의 감실이
둘이 아니로다. 삶(生)과 죽음(死)이. 영화와 천박스러움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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