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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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길을

겸손하라는 가르침

백수.白水 2011. 5. 22. 06:08

 

오늘이 시골생활 4년이 지나고 5년째로 접어드는 첫날.

작년 12월 15일 이 공간에 블로그를 만든지 163일이 되는 날이라 표시가 됩니다.

5개월 넘게 블로그 활동하면서 내가 절실하게 느끼는 점.

그 것은  알량한 재주를 과장해서 욕망을 채우려는 태도가 아니라

남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

그 것이 진정한 소통방식임을 깨닿게 됩니다.

 

길, 정황수 그림 제공 포털아트

 

은나라의 상용(商容)이라는 노인이 병으로 눕자 노자(老子)가 제자들에게 교훈으로 일러줄 말씀을 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상용이 입을 벌리며 “내 혀가 남아 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노자가 남아 있다고 대답하자 상용이 다시 물었습니다.

“내 이가 남아 있는가?” 치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지라 노자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상용이 “알겠는가” 하고 노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노자가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은 남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상용이 간단명료하게 답했습니다. “천하의 일을 다 말했네.”

노자가 실제로 상용이라는 노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노자의 ‘도덕경’에도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게 빛날 수 없고(自見者不明),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은 돋보일 수 없고(自是者不彰),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自伐者無功),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오래갈 수 없다(自矜者不長)’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명심보감’ 정기편(正己篇)에는

‘자기 몸이 귀하다고 하여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勿以貴己而賤人),

자기가 크다고 하여 남의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고(勿以自大而蔑小),

용맹을 믿고 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勿以恃勇而輕敵)’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황희 정승과 함께 조선조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높인

맹사성의 겸양지덕에 관한 일화는 오늘날까지 빛을 잃지 않는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열아홉에 장원급제하고 갓 스물에 경기도 파주군수가 된 자만심 가득한 맹사성이

어느 날 선사를 찾아가 선정을 베풀기 위한 자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라는 상식적인 말을 했습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을 건네는 선승이 못마땅해

맹사성은 그런 걸 누가 모르냐며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녹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권했습니다.

맹사성이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자 선사가 맹사성의 찻잔에 물이 넘치도록 따랐습니다.

맹사성이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신다고 선승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선승이 일갈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 적시는 건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선사의 말에 맹사성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면괴스러워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서둘러 방을 나서려다가 문틀에 이마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맹사성은 자만심을 버리고 겸양지덕을 몸에 익히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겸손은 무조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진정한 소통의 방식입니다.

알량한 재주를 과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을 성취하려는 세태,

남보다 나은 위치와 조건을 갖췄다고 으스대며 오만방자한 행동으로 남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 사람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항상 마음을 닦는 행위입니다.

세상에 겸손으로 환하게 빛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상우 작가의 그림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