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국내여행. 산행

사패산(賜牌山)에서

백수.白水 2015. 9. 7. 13:58

2015. 09. 06(일요일)

회룡역에서 10:30분에 서울 사는 친구를  만나 같이 사패산을 오르기로 했는데, 내가 더 먼곳에 산다고 서두르다보니 예정보다 1시간이나 빨리 도착하게 되었다. 별도리 없이 나는 여유시간에 회룡사를 둘러보고 친구는 용암약수터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오늘의 코스는 회룡역 - 회룡탐방지원센터 - 회룡사석굴암갈림길(체육시설) - 용암약수터 - 사패산1보루 - 사패산2보루 - 사패능선 - 사패산을 오른 후 송추계곡의 원각사- 사패산터널로 내려왔다.

 

 

지도 크게보기: http://cityhan.blog.me/130152619725

 

 

 

도로가 음식점에서 만난 단풍잎유홍초

 

 

 

 

회룡역에서 회룡탐방센터를 향해 가다보면 회룡사입구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가까운 도로변에 태조 태종의 상봉지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2차왕자의 난을 겪은 태조 이성계(1933-1408 재위1392-1398)는 제2대 정종(이방과 태조의 2)에게 선위한뒤 정치의 뜻을 버리고 오랬동안 고향인 함흥으로 은퇴하였다가 무학대사의 끈질긴 설득으로 한양 환궁길에 올랐다. 이때 제3대 태종(이방원 태조의 5(재위 14001418)은 부왕이 환궁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나와서 맞이했는데 그 상봉지가 전좌(殿座)마을이 되었고 당시 이곳에서 정사를 하였다고 하여 의정부(議政府)가 되었다.

 

 

 

회룡(回龍)의 지명유래에 대하여

 

도봉산 동쪽 자락에 있는 의정부시 호원동은 서울시와의 관문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호동(虎洞누원리(樓院里장수원리(長水院里)였으나 1914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 당시 호()자와 원()자를 따서 호원리(虎院里)로 개칭했다고 한다. 호원동이라는 지명은 기존 이름을 합친 데서 유래했을 따름이고, 오히려 이곳에는 회룡(回龍)이라는 명칭이 많이 눈에 띈다. 경원선 회룡역, 초등학교·중학교 이름 등에 두루 남아있다. 모두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도봉산 회룡골에 있는 사찰인 회룡사(回龍寺)에는 태조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1881년에 쓰여진 '회룡사 중창기'에 따르면 '왕자의 난'을 계기로 함흥으로 옮겼던 태조가 아들 태종의 거듭된 간청에 한양으로 돌아오다 이곳에 있던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찾았다.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다 절을 중창하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회룡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또 함흥에 있던 태조가 돌아오자 무학대사가 기뻐해 회룡사라고 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회룡사는 조선 후기에도 여러차례 중건과 수리를 거치면서 제법 큰 사찰로 유지돼 왔다. 그러나 19506·25 전쟁으로 폐허가 됐고 이후 복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금 들어서 있는 건물은 모두 6·25 이후에 지어졌다. 다만 탱화, 5층 석탑, 석조(石槽·돌로 만들어 물을 담아두는 수조) 등 옛 문화유산도 간직하고 있다.

 

의정부시는 매년 가을 '회룡문화제'도 열고 있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은 지역 축제로 조선 태조·태종 부자 상봉의 전설을 바탕으로 왕실 행차 재연도 펼쳐진다. 태조가 의정부까지 돌아오자 태종이 아버지를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회룡골 입구에 있는 호원동의 '전좌(殿座) 마을'은 두 임금이 마주 앉았던 곳이라서 유래했다.

 

의정부(議政府)의 명칭도 태조와 관련이 있다. 태조가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 의정부 3정승을 포함한 각 대신들이 한양보다 지금의 의정부로 와서 정무를 의논하고 태조의 결재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정부시는 1912년 지방행정구역 조정 당시에는 양주군 둔야면 의정부리였으나 1942년 의정부읍, 1963년 의정부시로 승격되는 과정을 밟았다.

 

[출처] 조선닷컴(수도권II, 우리동네 지명유래, 12 , 의정부시 호원동)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 수령은 약420년으로 나무둘레4.6m, 높이가 25m이다.

 

 

 

 

 

 

 

 

 

 

사패(賜牌)란 왕족이나 공신에게 전지(田地)나 노비를 하사할 때 딸려 주던 문서로, 토지나 노비의 소유 기한 등을 규정한 것이다. 사패를 딸려 하사한 토지를 사패전(賜牌田) 또는 사전(賜田)이라 하고, 노비를 사패 노비라 하였다.

 

 

 

 

 

 

 

 

 

 

 

노랑망태버섯

 

 

 

 

회룡골에서 보는 사패산제1보루

 

 

 

 

 

 

 

 

 

 

 

 

 

 

 

 

 

 

 

 

 

 

 

 

 

 

 

 

 

 

 

 

개여뀌

 

 

 

 

도깨비바늘

 

 

 

 

용암약수터

 

 

 

 

 

 

 

흑자색쓴맛그물버섯

 

 

 

 

 

사패산1보루에서

 

 

 

 

 

 

 

 

 

 

 

포대능선 쪽의 높은 봉우리

 

 

 

 

 

 

 

건너편으로 수락산이 보인다.

 

 

 

 

팥배나무

 

 

 

 

 

 

 

 

 

 

1보루에서 보는 제2보루

 

 

 

 

 

 

 

 

 

 

 

 

 

 

 

 

2보루로 가는 능선에서 뒤돌아 본 제1보루

 

사패산제2보루에서

 

 

 

 

 

 

 

뚝갈

 

 

 

 

 

 

 

 

 

 

사패산정상이 보인다.

 

 

 

 

 

 

 

높은 봉우리는 포대능선 쪽

 

 

 

 

사패산 정상

 

 

 

 

팥배나무

 

 

 

 

 

 

 

 

 

애기며느리밥풀

 

 

 

 

배낭을 벗고 몸을 옆으로 틀어 좁은 바위틈을 통과해야한다.

배가 많이 나온 사람은 빠져나가기 어렵고, 가슴이 너무 풍만해도 힘들지 싶다.

 

 

 

 

 

 

 

바위틈이 아니면 이렇게 가파른 암벽을 선택해야 한다.

 

 

 

 

 

 

 

또 다른 틈새, 이곳은 통과가 손쉽다.

 

 

 

 

 

 

 

 

 

 

애기며느리밥풀

 

 

 

 

 

사패산 정상에서

 

 

 

북한산국립공원의 화강암은 쥐라기(18천만 13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북한산국립공원은 전체가 하나의 바윗덩어리인 암산입니다. 우이령을 경계로 북쪽은 도봉산, 남쪽은 북한산으로 나뉩니다.

 

사패산은 산 전체의 모양 또는 큰 봉우리모양이 삿갓처럼 생겼다고 해서 갓바위산 또는 삿갓산으로 불렸습니다. 지금은 사패산으로 부르는데, 이리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하나는 일부사람이 이산이 조개껍데기처럼 보인다며 사패산이라고 불렀는데 대동여지도가 이를 좇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선조임금이 딸 정휘공주에게 준 산 이어서 그리 불렀다는 설입니다.

 

맑은 날 사패산에서 보면 오른쪽으로는 북한간의 세 봉우리(삼각산: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왼쪽에는 도봉산의 오봉과 자운봉 등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왼쪽] 

 

 

 

 

 

[오른쪽]

 

 

 

 

 

 

 

 

 

 

 

 

 

 

 

사패터널입구(송추)

 

 

 

 

 

 

 

정상 아래로 보이는 바위(갓바위?)

 

 

 

 

 

 

 

 

 

 

 

원각사

 

 

 

 

이고들빼기

 

 

 

 

 

 

송추에서 올려다 보이는 사패산 정상

 

 

 

 

 

 

 

 

 

 

 

 

 

사패터널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