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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보현산(135m) 보현사(普賢寺)

백수.白水 2015. 10. 26. 14:53

서울에 사는 시골초등학교동기모임, 초기에는 회원이 꽤 많았으나 지금은 많이 떨어져나가고 6명만 남아서 부부동반으로 만난다. 2개월에 한 번씩 만나기로 되어있지만 사정이 있으면 건너뛰기도 하는데 금년에는 두 번이나 빼먹었다. 주로 서울에서 만나지만 모처럼 파주 탄현면의 헤이리마을 근방에서 놀았다.

나가는 거리가 짧으니 나는 편하다.

 

 

탄포천토메기집(점심) - 보현산 보현사 - 성동사거리 우거지국밥(속풀이) - 적성노래방 - 할머니국밥집 (저녁 속풀이)으로 돌아 어째든 4차까지 마치고 9시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오를 때 도로변왼쪽으로 철책이 쭉 쳐져있고 철책너머로 강이 흐른다.

서울에서 오두산통일전망대 까지가 한강이고, 북쪽에서 오두산성으로 흘러내리는 강은 임진강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오두산성 앞에서 서로 만나 西流하니 이를 조강이라 하고 조강은 마침내 서해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성동IC부근 탄포천과 임진강의 합류지점까지>의 왼쪽(서쪽)으로 보이는 임진강너머 땅들은 모두 이북 땅이고, 탄포천을 지나면서부터 임진강북쪽으로 보이는 땅들은 우리의 땅인 것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북 땅과 남한 땅의 거리는 오두산통일전망대 앞에서는 2,100m이고, 가장 가까운 곳은 탄포천 앞으로 겨우 460m에 지나지 않는다.

 

 

 

 

 

 

 

 

 

 

 

 

 

 

 

 

동법토정(憧法討淨)인가? 아님 정토법동(淨討法憧)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보통은 본전에다 대웅보전 극락보전 적멸보궁... 등의 편액을 거는데 이곳은 특이하다.

 

 

 

보현사의 내력에서 신라 문선왕조(文宣王朝) 때의 고승 검단선사가 본존불(本尊佛)을 조각하였다고 적었으나

이는 문성왕(文聖王, 재위 839857)의 잘못이다. 문선왕(文宣王)이란 중국의 孔子를 달리 일컫는 칭호로 신라시대에 문선왕은 존재하지 않는.

 

신라 문성왕대에 검단선사와 수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폐사된 것을 불기 2,544(서기 2,000) 인수(忍修)스님이 본전을 준공하였다는 내용이다.

 

이곳 보현사는 오두산전망대와 가까이에 있는 검단사와 관련이 있는듯하다.

 하나는 양쪽 다 검단선사가 창건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로 검단법당 내의 석불은 등신불(等身佛)로 천여 년 간 버려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인근 금산리 보현암에서 수습하여 보존해오던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현재 보현사의 본존불이 석불이라서 의아했는데 이 석불이 일제강점기 때 수습된 천년된 등신불인지 아니면 복제품인지 확인을 하지 못했으며, 또한 작년3월 검단사에 들렸을 때 법당내에서 石佛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찌된 일인지 앞으로 더 확인해야 될 부분이다.

 

 

검단사(黔丹寺)

 

(관련:파주살래길과 검단사(黔丹寺) http://blog.daum.net/ybm0913/2889)

 

검단사(黔丹寺)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검단산(鰲頭山,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847(신라 문성왕 9) 혜소(慧昭)가 창건하였다. 혜소는 얼굴색이 검어 흑두타(黑頭陀) 또는 검단(黔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찰 이름은 그의 별명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사찰이 있는 오두산이 검은 편이라 검단사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에 있었으나, 1731(정조 7) 장릉(長陵)을 탄현면 갈현리로 옮길 때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다. 이후 장릉에 제사를 지낼 때는 이 사찰에서 두부를 만들었다고 해서 한때는 두구사(豆拘寺)라고도 불렀다.

 

1906년 김정호(金正昊)가 법당을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법당인 법화전과 요사가 있고, 유물로는 아미타불탱화와 신중탱화·검단선사영정 등이 전한다. 탱화는 19세기말에 제작된 것이고, 검단선사영정은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원본을 토대로 조선 후기에 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당 내의 석불은 등신불(等身佛)로 천여 년 간 버려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인근 금산리 보현암에서 수습하여 보존해오던 것이다. 현재는 북한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염원을 기도하는 조그마한 암자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

 

 

본존불이 석불이라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보현산 정상에서 보는...

 

조강

 

 

사진 왼쪽으로 통일전망대가 조그마하게 눈에 들어온다.

 

 

 

 

 

 

 

 

 

 

북쪽 땅과 제일 가까운 탄포천과 임진강의 합류지점 방향.

 

 

 

 

 

 

 

 

 

 

 

 

 

 

댕댕이덩굴 열매

 

 

 

 

인동초열매

 

 

 

 

 

 

 

 

 

 

 

 

어둠이 내려앉는 자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