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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길을

견우와 직녀, 칠월칠석.

백수.白水 2016. 8. 14. 12:30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안도현시인의애기똥풀이라는 시다.

 


내가 딱 그 꼴 아닌가. 나 지금껏 칠석날(七月七夕)을 알았고 견우직녀와 오작교를 얘기하며 살아 왔지만 정작 어느 별이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인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지난 8.9() 칠석날, 마을회관에서 푸짐한 잔치가 벌어졌다.

식성대로 골라 먹으라고 개를 잡고 돼지고기를 삶아서 오전10시부터 먹기 시작하다가 점심때가 되니 또 다시 1인당 한 마리씩의 삼계탕이 나왔다.

별다른 놀이와 행사는 없었지만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는 세시풍속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요즘은 폭염과 열대야로 고생을 하지만 대신 높고 푸른 밤하늘에 별보기 좋은 날들이 계속된다.

나는 어제서야 비로소 견우별과 직녀별을 찾을 수 있었다.

견우직녀별은 동쪽하늘의 중천(中天)께 삼각형을 이루는 별, 소위 여름철의 대삼각형을 찾으면 된다. 긴 이등변삼각형인데 워낙 밝아서 쉽게 눈에 띈다.

 


긴 변의 꼭짓점에 있는 별이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Altair)곧 견우성(牽牛星)이고 / 견우별을 밑으로 하여 역삼각형으로 세웠다고 생각할 때, 오른쪽 꼭짓점이 거문고자리의 베가Vega) 곧 직녀성(織女星)이며 왼쪽 꼭짓점은 백조자리의 데네브(Deneb).



은하수는 대략 데네브의 위치쯤에서 시작해서 - 직녀성과 견우성사이를 관통하여 - 남쪽으로 궁수자리를 지나 - 전갈자리의 꼬리까지 이어진다.



여름철에 꼭 기억해야 될 별로 위의 견우성, 직녀성, 데네브 외에 전갈자리의 알파별인 안타레스를 꼽는다.

안타레스는 지난12오늘밤 별똥별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포스팅한 글에 나온다.

서쪽하늘에서 토성, 화성과 함께 삼각형을 이루는 별로 매우 밝고 붉은 색이 강하다.

안타레스는 직경이 태양보다 700배 이상 큰 붉은색초거성으로 표면온도가 대략3,500도 정도라고 한다.

 









칠월칠석(七月七夕)의 유래

 

까치가 놓은 오작교(烏鵲橋)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설화로, 칠월칠석 저녁이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마주한 견우성과 직녀성, 그리고 북두칠성 때문에 이 설화가 생겨난 것으로 본다.

 


이 설화는 고대 중국 설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후한 때 만든 효당산(孝堂山) 석실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이미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인다. 최남선(崔南善)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일 년에 한 번씩 마주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찍이 주대(周代)에 해마다 경험하는 천상의 사실이었는데 여기에 차츰 탐기적(眈奇的)인 요소가 붙어 한대(漢代)에 와서 <칠월칠석설화>가 성립된 것이라고 했다.

 


1976년 말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동에서 발굴된 덕흥리 무덤(5세기 초)의 벽에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지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실로 오랜 역사를 지닌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혼인하였다. 이들이 혼인한 후 놀고먹으며 게으름만 피우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래서 이 부부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안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월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 주었다. 이것이 오작교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월칠석날이 되면 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일 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

 


견우와 직녀에 대한 본격적인 고사는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B.C. 2)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대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인격화되면서 설화로 꾸며졌고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5~6세기)에 이르러 전설의 초기 형태가 생겨났다. <견우직녀설화>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짜임새 있게 자세히 전하는 책은 제해기(齊諧記, 5세기)이다.

 


하늘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칠석의 별자리는 견우와 직녀성 못지않게 북두칠성을 중시한다. 북두칠성은 수명신(壽命神)이어서 칠석 견우성에는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직녀성에는 걸교(乞巧)라 하여 바느질 솜씨를 기원했다. 견우직녀설화는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다.

 

또한 칠석날의 날씨를 보고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점쳐 보기도 하였다. 칠석날 저녁에 비가 오면 만나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 하였고, 칠석 다음날 비가 오면 이제 헤어지면 1년 후에나 보게 될 두 별이 헤어짐을 슬퍼해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점을 쳤다. 뿐만 아니라 칠석날에는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가 없는데, 이는 까마귀와 까치들이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주러 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출처>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