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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중국

[5] 장가계의 아름다운 용암동, 황룡동굴(黃龍洞)

백수.白水 2017. 10. 24. 21:42

 

무릉원의 제일 동쪽에 있는 삭계곡의 북단으로 7km 떨어진 곳에 있는 황룡동굴(黃龍洞) 1983년에 발견되었으며,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용암동굴로서 중국 10대 용암동 중 하나다

"중화최대의 아름다운 저택", "중국의 국실(國室)", "종유동 중의 최고"라는 이름들이 따라다닐 정도로 그 아름다움이 곳곳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상하 총 4층으로 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618ha, 동굴을 지탱하고 있는 종유기둥의 길이를 모두 합한 것이 14,000m 에 달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동굴 내에는 1곳의 물고(물구덩이)2곳의 하류, 3곳의 폭포, 4곳의 연못, 13개의 궁정, 96개의 길이 있고 각각 석유, 석주, 석화, 석복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는 곳은 황룡동에서 가장 기이한 풍경을 가진 곳으로 유명한데, 종유석으로서 높이가 27m에 달한다.

이곳은 1998년 중국 평안보험공사라는 보험회사에서 1억원(인민비)의 보험을 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행복문과 장수문의 사랑무대 황룡동 

<출처: 중국문화답사기 2 : 형초지역의 도원지몽을 찾아서, 2004. 7. 7., 다락원>

 

황룡동(黃龍洞)의 산은 높지는 않지만 지하 전체가 동굴이라고 했다. 동굴입구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해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한적한 시골 포장도로를 지나가는 느낌밖에 없었다.

입구 가까이 갔어도 상점만 늘어서 있을 뿐 동굴 내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단서는 보이지 않다가 상점진열대를 지나면서 이내 '황룡동 입구'라는 석각이 눈에 들어왔다.

 

 

황룡동 동굴은 무릉원 동부의 삭계욕(索溪峪) 자연보호구역에 있다. 1982년 한 농부가 발견했는데 총면적은 20, 길이가 약 10, 수직고도가 약 160m나 된다. 동쪽에 종유 동굴군이 있는데 석회암으로 구성된 카스트 지형에 속하는 용암 동굴로서 위아래 전부 4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륙이 나란히 나아가는 형태로 아래 2층은 항상 물이 흐르는 수면 지역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크고 작은 100여 개의 동굴은 삭계욕 풍경구 특유의 동굴 장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1/3 정도가 개발되어 있다. 개발된 곳은 황룡동(黃龍洞), 낙타동(駱駝洞), 관음동(觀音洞), 금계동(金鷄洞), 암문동(巖門洞), 우이동(牛耳洞) 10곳이다. 관람할 수 있는 96갈래나 되는 동굴 길은 천지를 감추고 있고 각기 다른 절경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황룡동 풍경구를 답사하게 되었다.

 

동굴 입구는 겨우 두 사람 가량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았지만 안으로 들어 갈수록 점점 넓어졌다. 동굴 안 수로에서는 배로, 육로에서는 보도와 계단으로 2정도 길이를 4층까지 오르내리면서 내부의 모습들을 살펴보았다. 벽에는 용이 장난을 치다가 남긴 비늘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했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천장은 천혜의 장관이었지만 곳곳에 사람 손이 닿은 흔적으로 흉하게 변해버린 곳도 있었다.

 

이 동굴을 '지하마궁(地下魔宮)' 이라고도 부르는데, 동굴 입구는 안개로 자욱했고 내부에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긴 회랑이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수많은 석순, 석주, 석렴, 석금, 석만, 석화, 석종유 등 그야말로 눈이 어지러워 다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또한 나무뿌리가 휘감기고 줄기가 뒤얽혀 있는 모양이 '동굴 밖의 동굴', '누각 밖의 누각', '하늘 밖의 하늘', '산 밖의 산' 같았다.

    

장가계 풍경구에서 북동쪽으로 달려가면 황룡동에 다다른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 아래 2층 누각이 보인다. 산 전체가 바위로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무릉원 속의 무릉원이요 끝을 알 수 없는 미로 속의 미로 황룡동이다.

 

황룡동은 삭계욕 풍경구 중 하나로, 동굴 문을 들어서서 한참 걸어가면 맨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행복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하고, 사는 동안에는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왼쪽으로 난 행복문을 통하여 들어가 오른쪽 장수문으로 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그 소원을 이룰 수가 있다고 한다.

 

천태만상의 종유석들은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지하수로에서 날아오르는 듯한 폭포는 옥구슬을 뿜어내는 듯 자욱한 연무를 만들었다. 내부에는 하나의 고(, 황룡고 黃龍庫), 두 개의 하천[향수하(響水河수정하(水晶河)], 세 개의 폭포[황용폭(黃龍瀑천수폭(天水瀑천지폭(天地瀑)], 네 개의 연못(사담 四潭), 열세 개의 궁청[宮廳, 용무궁(龍舞宮수정궁(水晶宮미인궁(迷人宮) ], 구십육랑(九十六廊)이 있는데 그것들의 길이가 13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가장 큰 청당(廳堂)에는 만 명이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고 한다.

 

황룡동은 지하마궁이라고도 불리운다. 이곳에 있는 석순 중 가장 으뜸인 것은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고 한다. 사막의 선인장과도 같이 지하 바닥에서 우뚝 솟아 올라 천장을 향하여 세월을 쌓고 있는 석순을 바라보노라면 인간의 시시비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인간 60 평생의 모든 시시비비도 이곳 정해신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옛날 이곳에는 황룡이 살았었는데 백성들이 기름을 갖다 부어서 쫓아냈다는 전설도 있다. 동굴 안의 세계는 그야말로 거대한 지하 별세계를 이루고 있어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아름답고 고요한 절경이 극치의 경지에 이르는 것 같았다. 천여 개의 석봉과 석주는 마치 석림(石林)과도 같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는 가장 멋있고 높은 석순은 높이가 19.2m에 달한다.

 

이 석순은 굵은 부위가 40, 가는 부위가 10이며, 천장까지는 6m 더 자랄 수 있는데 이 석순이 천장에 닿으려면 6억 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참고로 이 석순은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는데 그 금액이 우리 돈으로 160억 원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노인과 골뱅이 모습을 한 석순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한 나무꾼 노인이 선녀와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골뱅이를 먹으면 결혼을 할 수 있다는 말에 그 골뱅이가 자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앵무새가 먼저 골뱅이를 먹어 버리는 바람에 결혼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이 지하마궁 마지막 동굴 경관에는 사랑의 무대가 있었다. 주변의 조명과 형태가 궁전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궁청(宮廳) 내부의 신식 무대 왼쪽에 흡사 용왕 딸이 애인과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부에는 금화지(金花池)와 은화지(銀花池) 등 크고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못 가운데에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여러 송이의 석련화(石蓮花)가 피어 있는 듯했다. 향수하(響水河)는 황룡동 가운데 가장 긴 지하수로로서 길이가 약 2인데 조명 아래 물결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우리 일행은 모터가 달린 배로 동굴 수로 양쪽의 석봉과 석주들을 감상하며 그윽하고 신묘한 감상에 젖어들었다.

 

용왕 딸과 사랑하는 애인황룡 동굴의 한 부분. 자연이 빚어낸 종유석의 형상을 보고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름을 붙인다. 사랑 이야기는 전설처럼 오래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황룡동 관련 시 몇 편을 감상해 보자.

 

은 언덕과 옥 계단이 있는 황룡동굴은

규모가 커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한다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는 석순은 높이가 여덟 길

생진선과(生津仙果)라는 종류석은 무게가 아홉 근이다.

귀빈 맞는 큰 집에는 조각한 조랑(雕廊) 있고

손님 잔치 벌이는 고루(高樓)에는 화동(畵棟)이 있다

백성들이 유지(油脂)를 아끼지 않고 죽이려들자

황룡이 마침내 쫓겨나 모두가 칭송했다

 

銀堆玉砌黃龍洞 洞大能容千萬衆

定海神針八丈高 生津仙果九斤重

迎賓大廈帶雕廊 宴客高樓呈畵棟

不惜民脂理應誅 黃龍被逐皆稱頌

 

- 현대인 유갱생(喩更生) 유삭계욕황룡동(遊索溪峪黃龍洞)-

 

 

황룡동굴이 있는 부()의 경치는 흐릿한데

향수음하(響水陰河)가 있는 지하는 대단히 기이하다

물 흐르는 도랑은 이십 리를 감아 돌고

언덕에는 백 층 돌사다리가 갈마들었다

 

黃龍洞府景迷離 響水陰河地下奇

溝壑回環二十里 丘陵迭宕百層梯

 

- 현대인 섭만평(聶曼萍) 황룡동(黃龍洞)-

 

()는 당나라 때부터 청대까지의 행정구역으로 현()보다 한 단계 높다. 향수(響水)는 물 흐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기 때문에 나온 말이고 음하(陰河)는 석회암층에 형성된 지하수로이다. 앞의 두 구는 황룡동굴의 안팎을 대조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굴속에는 향수하(響水河)라는 음하(陰河)가 있는데, 전체 길이가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약 2구간에 걸쳐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배를 타고 이곳을 가다 보면 수많은 기기묘묘한 석순과 종유석을 볼 수 있었는데, 시인 역시 이에 감동하여 지은 작품이 아닌가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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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농민들이 소가 끄는 쟁기로 밭을 갈고, 오로지 괭이하나로 덩어리를 잘게 깨트리는 소위 로터리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뿐이 아니라 이 지역을 다녀보니 거의 100%가 이런 식이다.

 

 

 

정원수나 가로수로 가끔씩 눈에 띄는 나무. 늦가을인 요즘 우리나라 산기슭에서 지천으로 피어있는 산국을 닮았다. 혹시나 이곳이 아열대기후라서 산국줄기가 목질화(木質化)되어 나무로 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차나무, 茶木(다목)이다.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호남성(湖南省)에서 가로수와 정원수로 제일 많이 심은 꽃나무.

 

 

 

목화와 흡사해서 마찬가지로 혹시나 아열대기후라서 목화줄기가 목질화(木質化)되어

나무로 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간신히 이름을 찾아냈다. 목부용(木芙蓉)이다.

 

 

 

 

 

 

 

 

 

 

 

 

 

 

 

 

 

 

 

 

 

 

 

 

 

 

 

 

 

 

 

 

 

 

 

 

 

 

 

 

 

 

 

 

 

 

 

 

 

 

 

 

 

 

 

 

 

 

 

 

 

 

 

 

 

 

 

 

 

 

 

 

 

 

 

 

 

 

 

 

 

 

 

 

 

 

 

 

 

 

 

 

 

 

 

 

 

 

 

 

 

 

 

 

 

 

 

 

 

 

 

 

 

 

 

 

 

 

 

 

 

 

 

 

 

 

 

 

 

 

 

 

 

 

 

 

 

 

 

 

 

 

 

 

 

 

 

 

 

 

 

 

 

 

 

 

 

 

 

 

 

 

 

 

 

 

 

 

 

 

 

 

 

 

 

 

 

 

 

 

 

 

 

 

 

 

 

 

 

 

 

 

 

 

 

 

 

 

 

 

 

 

 

 

 

 

 

 

 

 

 

 

 

 

 

 

 

 

 

 

 

 

 

 

 

 

 

 

 

 

 

 

 

 

 

 

 

 

 

 

훈제돼지고기. 현지인들이 즐겨먹는데 염장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