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三七日(삼칠일, 세이레, 3×7일, 21일)의 금기(禁忌)

백수.白水 2019. 6. 28. 07:10



흡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더위를 식혀주는 비가 내렸다.

푸석거리는 흙먼지를 잠재우고, 작물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텃밭이 한결 풍성해 보인다.


옥수수의 솟구치는 기세가 겁나게 무섭다.

까치발을 하고서 손을 뻗어도 개꼬랑지(수꽃)가 닿지 않을 정도, 이제 더 이상 커야할 이유가 없다.


옥수수자루에서 암술이 올라와 산발을 하고 꽃가루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삼신(三神)할머니의 점지로 수정이 끝나면 아마도 720일경 햇옥수수를 먹을 수 있겠다.




텃밭을 가꾸면서 거창한 영농일지가 아니라 그날그날 중요한 일들은 한두 줄 정도로 간단하게 비망 기록하는데, 이번에 고추생육과정에서 유의미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고추모종을 심어 놓으면 시일이 지나면서 제 스스로 땅내를 맡고 튼실하게 자라 올라, 방아다리(큰 줄기)가 갈라지면서 꽃이 피고, 애기고추가 열려 제법 나무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때쯤에 방아다리에 달린 고추와 방아다리아래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곁순을 나무에서 가지를 쳐내듯이 모두 훑어 줘야한다.

 

그렇다면 고추곁순을 제거해줘야 하는 시기는 언제일까?

기록을 보니 5.1일에 심은 고추는 5.22일 곁순제거를 했고, 6.4일에 다시 심은 고추는 6.25일 날 곁순을 제거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모종을 심은 지 정확히 3(21)가 되는 날에 곁순을 제거하게 되더라는 말이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삼칠일(3, 3×7, 21), 나의 관심이 삼칠일에 꽂혔다.

닭이 알을 품은 지 21일이면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논외의 문제이고...



사진, 인터넷공간에서 끌어옴


금 줄

 

들어오지 마라 / 금을 넘지 마라 / 밖에서 떠들어도 안 된다.//

왼새끼에 드문드문 / 숯과 고추를 끼운 대문 앞 금줄 / 봄바람에 흔들거린다.//

깊이 알면 다친다는 / 섬뜩한 경고 / 그래도 기웃거리는 나.// <2011.3.18 졸작>


 

예로부터 삼칠일이라 하여 아기출생 후 삼칠일 동안 대문에 금줄을 쳐서 새 생명과 외부세계를 격리시켜 부정(不淨)을 타지 않도록 하는 풍습은 내가 어릴 때만해도 흔히 봐왔던 풍경이다.


농작물이 초기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초라한 모습으로 주접이 들게 된다.

사람은 물론이고 농작물도 삼칠일동안은 애지중지 보살펴 주어야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삼칠일을 무사히 넘긴 고추는 앞으로 장마철을 거치면서 폭풍성장을 할 것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삼칠일(三七日)


魏書云 乃往二千載有檀君王儉. 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 神檀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위서에 이르기를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고 나라의 이름을 조선으로 하였다. 이는 고()와 같은 시기였다.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의 서자환웅이 여러 차례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냄으로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세상을 이루어도 될 만함으로 천부인3개를 주어 내려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이에 3천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정상의 신단나무 밑으로 내려왔으니 이것이 곧 신시요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白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雄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每日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雄虎得而食之忌三七日 雄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장차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주곡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로 하여 세상사를 다스리며 교화하였다. 이에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한 굴속에 살면서 항상 신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기원함에 신웅이 약쑥()한줌과 마늘() 20개를 주시며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되리라 하였다. 곰과 범이 그것을 먹으며 37일을 금기하여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고 범은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삼칠일(三七日)과 구구단


위의 글은 고려후기의 승려 일연(一然)1281년에 편찬한 삼국유사 기이(奇異) 1 古朝鮮(고조선)조에 나오는 단군신화이다.


여기서 삼칠일(三七日)37일이 아니라 3×7일 곧 세이레(21)를 일컫는 말이며, 내용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듣고 배워서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고,

내가 주목하는 것은  첫째, 삼칠일 동안 금기(禁忌)하고 근신(謹身)하였다는 '忌三七日'과, 다른 하나는 고기록에 '구구단'식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로보아 고대에도 삼칠일 금기풍습이 있었고 구구단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시기는 단군조선(기원전2,333년 건국)시절에는 모르겠으나 늦어도 삼국유사가 편찬된 고려후기에는 보편화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구구단의 역사


한국문화재재단이 지난 2011년에 백제사비성터유적지에서 발굴한 목간(木簡: 종이가 발명되기 전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나무판)에서 67세기에 작성된 구구단표를 발굴하였다,

 

목간 전면을 살펴보면 희미하게나마 먹 글씨로 ()()十二(십이)’ 와 같이 구구단 공식이 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나머지 글자들은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데, 이들도 적외선 촬영으로 관찰하면 칠구 육십삼이나 육팔 사십팔’, 그리고 육칠 사십이와 같은 구구단 공식들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목간이 기존의 중국과 일본에서 발견된 것과는 달리 매우 체계적이면서도 실용적으로 작성됐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2단부터 9단까지 칸을 나누어 구구법을 기록한 것이나, 각 단 사이에 가로 선을 그어 구분을 명확히 한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해 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광개토대왕릉비와 삼국사기 등에 관련 기록이 있었을 뿐, 실제로 구구단표가 적힌 유물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유물은 백제 시대에 이미 수리 체계가 정립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우선 구구단표가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 중국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간에 이견(異見)이 없다. 중국은 기원전 3세기쯤 리야유적에서 구구단이 적힌 목간표를 출토한 바 있고, ‘관자순자와 같은 책에도 구구단 외우는 방법이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원(KISTI) 과학향기 칼럼에서 발췌]


7은 근원의 수이며 신성한 수


이밖에 7이라는 수는 동서양에서 모두 근원의 수, 신성한 수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은 북두칠성이 곧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 섬기면서 점차 칠성신앙(七星信仰)으로 발전하였다.

▶인간은 하늘에서 별과 지구를 제외하고 해((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라는 7개의 천체가 있다고 보아 이를 주일의 기준으로 삼고 각 천체의 이름을 대입하였다.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은 음양(日月)과 오행(火水木金土)으로 구성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7이라는 주기성이 여성과 깊이 관련되어 열네살(2×7)에 초경을 시작해 여성으로 거듭나며, 마흔아홉살(7×7)에 폐경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주기가 일치하듯이 음의 원리를 지닌 달과 여성이 7의 배수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과도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