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겨울이나 봄보다 (초)미세먼지상태가 훨씬 좋아졌고,
작년보다 봄 가뭄현상이 완화되어 아직까지는 농사를 짓는데 크게 애를 먹지 않고 있다.
그러나 농사란 사람의 일이라기보다는 하늘의 일인지라
한 뙈기텃밭농사일지라도 내 마음과 바람대로 그렇게 만만하게 굴러가는 것도 아니다.
대략3월부터 서서히 농사준비를 시작하여, 4월하순경부터 각종작물을 심게 되는데, 금년에는 5월15일경에 각종작물심기를 모두 끝냈다.
부추, 상추, 시금치, 아욱, 도라지, 대파, 오이, 참외, 토마토, 호박, 가지, 고추, 땅콩, 고구마 등등 가짓수가 꽤 많다.
5.21일(소만) 모든 작물이 땅내를 맡고 새파랗게 기세를 올리며 잘 크고 있다고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5.1일 심은 고추(100포기)전체에 탈이 났다.
병원체(바이러스)가 침입하여 잎과 줄기가 오그라들어 약해지는 오갈병이 온 것,
치료가 되지 않으면 나중에 고추가 열려도 오그라들어 먹지 못하게 된다.
날이 더 따뜻해지고 시일이 지나면 혹시나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5.21일부터 주기적으로 치료약을 살포했지만,
심은 지 한 달이 되는 5월말이 되니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가망이 없어 보였다.
미우새에 출연하는 가수 홍진영 어머니‘말대로 어쩌야 쓰까?’고민을 많이 했다.
전부 뽑아 내버리고 대신 콩을 심어 버릴까?
작은 일인데도 송나라 야부도천(冶父道川)선사의 거창한 게송(偈頌)을 떠올린다.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건 기특할 게 못된다.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 깎아지른 절벽에서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다.
아니면 뽑아 내버리고 다시 고추를 심어 볼까?
어린 시절 친구들과 도랑에 나가서 고기를 잡을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흙을 퍼다가 도랑상류에 둑을 쌓아 물을 막은 후,
둑 하류에 생기는 웅덩이의 물을 양동이로 퍼내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을 우리는 “막고 품는다.”고 했다.
지금도 우리 친구들끼리는 어떠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막고 품자’고 한다.
한 사날 고심하다가 ‘막고 품기’로 했다.
6.4일 덕산 장날 나가보니 시기가 지나서 고추모종이 거의 없다.
처음 심을 때 100포기한판에 25,000원을 주고 샀는데, 모종이 귀해 졌으니 50,000원을 내란다.
그보다 못한 것은 40,000원, 흥정 끝에 35,000원에 구입했다.
35일 만에 다시 심었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런 때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먹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일 년에 고추를 5번 딴다면 우리는 3번 정도 따게 될 것이다.
농사꾼인지라 자연현상에 민감한 것은 인지상정이고, 도덕경81장 중 5장의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라는 구절은 일이 생길 때마다 잊히지 않고 떠오른다.
직역하면 천지는 인자하지 않아 만물을 제사상의 풀 강아지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다.
자연은 사람을 비롯한 만물에 대하여 특별히 인자하지도 않고, 불쌍히 여겨 기분을 착착 맞춰 줄 리도 만무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無爲自然이요 無心이다.
만물 중 어느쪽이 특별히 미워서가 아니라 자연 스스로의 이치와 법칙에 따라 그저 저절로 그러할 뿐인 것이다.
또 한 가지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체득한 것은 씨 뿌려 가꾸고 거두는 모든 일은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예로부터 농사의 7분은 하늘이 짓고 3분은 사람이 짓는다고 한 것이다.
모종 값 농약 값에 나의 노동력까지 계산한다면 고춧가루를 사먹는 게 더 이득일수도 있겠지만
농사꾼으로서 나의 몫 3분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요렇게 오글오글 오갈병이 들었다.
4종류의 바이러스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전문용어로는 고추모자이크병이라 한다. 모종자체가 감염되었는지.. 아니면 진딧물이나 총채벌레에 의한 감염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새로 사온 모종.
6.4일 다시 심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35일이나 늦은 셈이다.
남들 것은 벌써 이렇게 커서 세력이 왕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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