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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베찌르개 나온 수양개유적은 구석기 테크노폴리스”

백수.白水 2023. 3. 9. 17:53
 

충주댐 수몰지 수자公 설득해 발굴

석기 제작소만 49곳, 대량생산 추정

“中-日 등으로 퍼진 경로 파악해 슴베찌르개 로드 그리는 게 목표”

 

충북 청주시 충북대 박물관 전시실에서 6일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가 40년 전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가리키고 있다

 

“규격화된 슴베찌르개가 서로 다른 문화층에서 110점 가까이 나왔어요. 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 집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존재했다는 얘기입니다. 수양개 유적은 구석기 시대의 테크노폴리스였습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4만6000년 전 제작된 세계 최고(最古) 슴베찌르개(사진)를 비롯해 10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된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은 1980년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82·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가 이끄는 충북대 박물관팀에 의해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해 7월 21일 충주댐 수몰 예정지역 지표조사 중이던 조사팀이 이틀째 쏟아진 기록적 폭우를 뚫고 극적으로 발견했던 것. 충북 청주시 충북대 박물관에서 6일 만난 이 교수는 “배를 타러 가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돌아가려는데, 제자들이 ‘계속 가보자’고 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유적을 발굴해 후대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발견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 구석기 연구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수양개 유적이 올해 발굴 40주년을 맞는다. 1980년 발견돼 3년 뒤 발굴한 수양개 유적은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구석기 유적으로 꼽힌다. 나머지 두 유적이 미국인에 의해 발견된 데 비해 수양개 유적은 처음부터 우리 발굴팀이 발견해 의미가 더욱 크다.

 

그러나 첫 발견 뒤에도 한동안 충북대 박물관의 잠정 발굴 대상 목록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 교수는 1983년 3월 박물관장을 맡자마자 가장 먼저 수몰 위기에 놓인 수양개 유적 발굴을 추진했다. 그리고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를 지원하는 한국수자원공사를 4개월 동안 설득해 그해 7월 첫 발굴에 나섰다. 이 교수가 “수몰 전 반드시 발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충주댐 건설로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를 유적이다.

이 교수는 74세가 된 2015년까지 13차례 수양개 발굴을 이어갔다. 수양개 유적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됐지만 댐 수위가 낮아지면 발굴을 계속한 것. 그렇게 수양개에서 출토된 유물은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는 식민사관을 뒤엎었을 뿐 아니라 ‘미개하다’고 여겨졌던 구석기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이 교수는 “수양개 1지구에서는 석기 제작소만 49곳이 나왔다”며 “정교하게 정형화된 석기의 형태로 미뤄 대량 석기 생산 체계가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양개 유적의 가치를 해외에 알리는 일에도 힘써 왔다. 1996년부터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까지 ‘수양개와 그 이웃들’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25차례 개최했다. 미국과 러시아, 폴란드 등 해외 대학과 기관에서 연 것만도 16차례다. 그동안 181개국에서 학자 486명이 참여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일까. 일본 국립후쿠오카박물관은 전시물 설명에서 ‘수양개 슴베찌르개가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 구석기 사냥 도구의 기원이 수양개 유적에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나아가 ‘슴베찌르개 한반도 기원설’도 세계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40년을 수양개 유적에 바쳤지만 그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고 했다. 수양개 유적에서 제작된 슴베찌르개가 일본과 중국 등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간 경로를 파악하는 ‘슴베찌르개 로드’를 그리는 일이다. 이 교수는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아직도 현역”이라며 “유적의 가치를 밝히는 데 힘을 쏟고 싶다”고 했다.


슴베찌르개
날 부분을 찌를 수 있게 가공한 마름모꼴 석기로 한반도 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도구. 자루에 꽂기 위한 뾰족한 부분을 일컫는 ‘슴베’와 ‘찌르개’를 합쳐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가 만든 학술용어다. 나무나 짐승 뼈로 만든 자루에 달아 사냥용 창 등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2023. 03. 09일자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