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방 불을 다 끄고 아내와 둘이서 누워 TV를 보는데, 누가 왼쪽 귓불을 가시로 찌르는 듯 따끔하다. 반사적으로 손이 올라갔는데 딱 잡히는 감촉으로 보아 딱 벌이다. 순간적으로 움켜잡아 홱 내팽개치고 불을 켰더니 새끼손가락 끝마디만큼이나 큰 벌이 전등불 주위로 날아오르더니 금세 자취를 감춰버린다. 며칠 전 도어용 롤스크린 방충망을 설치했는데 아마도 낮에 드나들 때 따라 들어왔던 모양이다.
통증은 심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부어오르니 졸지에 부처님귀가 되었지만 비대칭 짝귀인지라 고개가 한쪽으로 기우는 느낌, 빨리 약을 찾아내라며 재촉했지만 아내는 그 경황 중에도, 자기는 작년에 팔다리에 여러 방 쏘여 이렇게 흔적이 있지 않느냐며 허벅지를 내보인다. 며칠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니 약 바르고 참으라며 여유를 부린다.
가뭄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 건지 요즘에 유난히 벌이 많아졌다. 복수를 해야 한다. 근원을 일망타진해야 후환이 없다. 오늘 아침부터 집 주위를 돌며 벌집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창고처마에 있는 벌집을 찾아냈다. 작심하고 있다가 해가 진후 에프킬러를 들고 가서 연막작전으로 완전 소탕했다.
사실은 어제 낮, 벌들이 창문방충망으로 엉겨 붙기에 내가 요리저리 쫓아다니며 에프킬러를 쏘아 쫓아버렸었다. 그래서 영악스러운 저격병 한 마리가 낮에 숨어들어 매복하고 있다가 나란히 누워있는 두 사람 중 해코지의 원흉인 나를 정조준해서 정확하게 저격을 한 것이다.
벌은 본래 자기 집을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사람을 쏘지 않는다. 말로는 자연과 더불어 공생과 공존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혹시나 내가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보호본능이 발동했던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으뜸이라는 우월감과 이기심에 애초부터 공격의지가 없었던 죄 없는 많은 벌들이 꽃잎이 지듯 우수수 스러져갔다. 사람 몸에 그리도 좋다는 蜂針 한방을 놔주고서 말이다.
무고한 살생. 아! 이 오만함이여...
104년만의 가뭄을 견디며 능소화와 접시꽃이 고운자태를 뽐낸다.
바람이 동쪽하늘의 비를 품은 구름을 서쪽으로 밀어낸다.
이곳에서 몇 년을 살아보니 서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와야 비가 내린다.
밤이 되니 서쪽 창으로 찾아든 초여드래 상현달이 새색시처럼 참 곱다.
초토화된 벌집 잔해
능소화
접기꽃. 당신?
서쪽 하늘
동쪽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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