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두레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새기다.

백수.白水 2012. 6. 28. 12:52

두레는 공동노동체 조직이며 농촌 사회의 상호 협력, 감찰을 목적으로 조직된 촌락 단위다. 공동노동의 형태는 모내기·물대기·김매기·벼베기·타작 등 논농사의 전 과정에 적용이 되었으며, 특히 많은 인력이 합심하여 일을 해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반드시 두레가 동원되었다. 또한 마을의 공동 잔치로 풋굿이나 호미씻이와 같은 논농사 이후의 놀이도 함께하였다. 대체로 모내기나 추수를 마친 뒤 공동작업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음식과 술을 먹고 농악에 맞추어 여러 가지 연희를 곁들여 뛰고 놀면서 농사로 인한 노고를 잊고 결속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네이버 백과사전>

 

 

지금은 두레의 효용성이 떨어져 그 유풍이 거의 사라졌지만  마을의 편익을 위한 공동작업의 형태로 그 전통이 일부 이어내리고 있다. 며칠 전부터 오늘 도로변 돼지풀과 잡초제거작업을 한다는 이장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아침 530, 마을회관 앞으로 나가니 마을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남자들만 참여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트랙터를 끌고 온 사람, 트럭을 몰고 온 사람, 예초기를 메고 나온 사람, 낫과 갈쿠리를 들고 온 사람 등 스스로 편한 기계와 연장을 들고 모여든다.

 

! 이제 작업을 시작 합시다.이장이 작업시작을 선언했지만 그걸로 전부, 구체적인 역할분담이나 작업지시가 없다. 적어도 반별로 작업구역은 할당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그냥 알아서 흩어진다. 조직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렇게 해서 일이 제대로 될 것인가 우려를 했는데, 걱정도 팔자라 괜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를 따르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는데도 방향별로 사람이 나눠지고 스스로 알아서 자기가 해야 힐 일을 해나가는 것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자연스레 빠져나와 적은 곳으로 합류하고, 늦게 온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자기가 가야할 곳으로 찾아든다. 나중에 둘러보니 60여명의 사람들이 드넓은 벌판길에 골고루 퍼져 방향을 잡고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 편평하게 수평을 맞추고 고루 펴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개미의 활동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대장개미가 따로 있어서 진두에서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제와 감찰이 없고, 불만이나 투정도 없이 흐트러진 듯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로 일을 하는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말이다. 공동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라는 공동체 의식. 강요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이 앞장서는 모습에서 나는 두레의 한 단면을 보았고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된 매우 뜻 깊은 날이었다.

 

두 어시간만에 일을 마치고 회관 앞에서 끼리끼리 모여 음료수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헤어졌는데, 점심때가 되니 다시 방송이 나온다. 적성에서 돼지갈비를 먹을 것이니 빨리들 모이라고, 차가 대기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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