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나의 이야기

싸늘한 가을 들녘에서

백수.白水 2012. 10. 11. 14:05

단풍놀이 손짓하는 가을 / 김화성

 

산기슭 덜퍽지게 핀 노란 감국.

남새밭 끌밋하고 미끈하게 솟은 무.

푸른 하늘 다붓다붓 날아가는 기러기 떼.

고개티 봄꽃보다 더 붉고 고운 단풍.

뒤란 흐벅지게 매달린 대추알.

앞동산 그윽하고 자차분한 다복솔밭.

안마당 꼬리치며 뱅뱅, 털 함함한 복슬강아지.

강물둔치 겅중겅중 뛰노는 부룩송아지.

모과 빛 장지문 너머, 밤늦도록 틀수한 얘기꽃 피우는,

늙은 어머니와 중년아들.

 

 

108일이 찬이슬 내린다는 한로(寒露),

한로에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1023)까지의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로 나누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와서 머물고, 중후(中候)에는 참새가 줄며, 말후(末候)에는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으나 이곳 경기북부지역에서는

24절기표가 벽시계처럼 잘도 들어맞는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세상사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나 농사는 때가 있다.

때맞춰 심고 때맞춰 거둬야 한다.

그래서 계절과 24절기의 기후변화추이를 정확히 알아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으니

철을 안다, 철이 났다, 철이 들다는 말이 모두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엊저녁 쌀쌀한 가을바람 불더니 오늘 아침에는 기온이 5도로 뚝 떨어졌고 새벽안개 이슬 되어 줄줄 흘러내린다. 찬이슬을 먹고 자라는 김장무의 하얀 몸통이 통통하게 굵어지며 땅위로 밀려 올라오고, 배추는 아삭거리는 속살을 채우는 계절이다.

 

무성했던 산야의 초목들이 찬바람 맞으며 바야흐로 조락(凋落)의 길로 접어들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더니 산책길 형형색색 우아한 자태로 눈길을 잡아끌던 고운 꽃들이 이제 거의 다 사라지고, 하찮은 잡풀로만 여겼던 개망초가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냈고,

밤새워 추석보름달을 맞던 야리향이 사라진 자리에 흔하디흔한 쑥으로만 알았던 황국(黃菊)이 제철을 만나 노란 향기를 품어낸다.

 

골목길 편백나무를 타고 기세 좋게 하늘을 오르던 담쟁이넝쿨은 마저 꼭대기에 이르지 못하고 기진한 채로 붉게 물들어 간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던 들판에서는 벼 베기가 한창이다. 낫으로 벼 베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전부 트랙터로 밀어버린다. 기계가 지나간 자리에 볏짚이 가지런히 깔리고 자동으로 털린 벼는 금세 트럭에 실린다. 추수가 끝난 논은 숙련된 이발사가 전자동이발기계로 민 머리통처럼 얼마나 말끔한지...옛날엔 쥐가 뜯어먹은 것처럼 더벅머리를 가위로 깍은 격이니 금석지감.

 

종족번식의 신성한 산고를 치른 들깨는 씨방에 회색의 오동통한 알갱이를 품었지만 잎이 누렇게 변하며 주접을 떨더니 이제는 낙엽 되어 하나둘씩 바람에 떨어지고,

봄철에 식욕을 돋우던 참비름은 잡풀을 비집고 끈질기게 키를 키우더니만 이 가을 맨드라미처럼 발갛게 꽃을 피우고 이내 까만 씨앗을 품었다.

 

풀씨와 곡식이 지천으로 널브러진 들판에 제 세상을 만난 까치와 비둘기, 참새가 떼지어 날아들고, 기러기 떼 간간히 푸른 하늘을 줄지어난다.

 

세상만물은 이렇게 철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제 존재의 이유로 살아간다. 지난 일에 머물지 마라. 순간순간 존재 그 자체에 행복을 느끼며 살 일이다.

 

참비름나물에 붉은꽃 피더니 까만 씨가 맺혔다.

요즘 6년생 인삼을 캐고 있다.

주상절리 장단석벽아래로 흐르는 임진강 푸른물

벼베기는 시월이 가기전에 모두 마무리된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보드러운 하얀꽃

멀리 보이는 산이 개성의 송악산 인듯...

하얀 개망초꽃

노란 황국(黃菊), 감국(甘菊)이라 부르기도 한다.

편백나무를 타고 오른 담쟁이,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고 있다.

어느 집 마당에서 잠자고 있는 곰돌이. 여름부터 저렇게 우산을 받혀 놓았다.

두부콩 타는 기계. 맷돌을 사용하는 집은 거의 없다.

우진 할아버지가 두부를 만들 콩물을 끓이고 있다.

들깨

다 베어 널었다. 일주일 쯤 말렸다가 털어야 한다.

밭에 빈 공간이 점차 늘어난다.

메주와 두부를 만들 때 쓰는 노란콩.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벨 계획이다.

 

 

24절기표

 

24절기표가 바로 벽시계요, 우리 앞에 세워진 삶의 이정표(里程標) 아니겠는가?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것이다.

해는 떠나지 않고 하늘 가운데에서 저렇게 제자리에 그대로이고, 지구가 시계바늘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時針보다 빨리 돌아가는 分針과 秒針처럼 달도 사람도 덩달아 분주히 시계판위를 도는 거고...

 

세월이라는 말에서 는 해()를 말하지만 세월이 간다는 것은 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절기표를 따라서 이정표 저 길을 지구도가고 달도가고 우리 사람도 따라서 걸어 간다는 말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하지 않았는가?

사람이 24시간이 표시된 벽시계를 하루에 한 바퀴씩 걸어가는 것이고,

우리가 24절기로 표시된 세월이라는 저 이정표를 걸어서 일 년에 한 바퀴씩 도는 것이다.

 

옛날에 충무로에서 어느 사진작가의 작품화보집을 받았는데 인사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강물이 흐르고 세월이 간다고 하지만,

정작 흐르고 가는 것은 세월과 강물이 아니라 강둑에 서있는 우리 자신이 아니겠느냐...

 

그렇다. 우리가 세월의 강둑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해가 지나면 다시 또 시작해서 걷지만, 예전의 족적을 따라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발걸음 할 때마다 매번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 그러다가 때로는 엉뚱한 길로 잘못 들어 헤매고,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고, 질퍽거리는 길에 빠져 엎어지고, 코가 깨져 망신도 당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

 

그렇게 어찌어찌 하다보면 금세 이정표대로 한 바퀴를 다 돌아 일 년이 되고, 뱅뱅 돌며 계속 달리고 걷다보면 나이는 지긋해지고, 어느새 근력이 떨어져 몸은 강하구까지 밀려와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니겠는가? 우리는 세월의 강둑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허허당스님의 한마디 오늘은 오늘을 살고 내일은 내일을 살자. 바람 불 땐 바람소리 듣고 비올 땐 빗소리 듣자. 삶을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몰입하면 모든 것이 축복이다.

인생의 목표를 지금 살아있는 그 순간에 두어라. 순간이 영원이 되게 하라.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 행복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