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가을이 마을로 찾아 내려왔다.
추수도 막바지, 들판은 황량하고 요란스레 흩날리는 가을비에 한기가 느껴지는 스산한 날이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속담이 있는데 가을걷이가 한창인 요즘 농촌에서는 일손부족으로 동동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고작 500여 평의 밭농사를 짓고 있는 나로서는 날이 궂어도 순차적으로 거두어드리기에 무리가 없다. 밭에 베어 널은 노란콩(백태)과 팥은 날이 좋은날 며칠간 바싹 말렸다가 도리께로 털면 되고, 나머지 서리태와 쥐눈이콩은 서리를 맞고서 잎이 모두 떨어진 후에 꺾어뒀다가 말려서 털면 밭일은 모두 끝난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아니라 가까이 지내는 노부부가 힘에 부치는 많은 농사를 지으며 헉헉대는 모습을 볼 때 못 본 척 그냥 넘길 수가 없다는 사실.
내가 전에 살던 감악산 산촌마을, 지금도 자주 왕래하는 68세의 박사장부부.
50여 마리의 한우를 기르면서 밭농사도 많이 짓고 있으니 제대로 감당을 하지 못한다.
500여 평의 밭에 고구마를 5,500포기나 심었는데 일손이 달려서 캘 시기가 지났는데도 엄두를 못 내다가 지지난주 금요일 날은 고구마를 캐기로 한날.
그 동네의 아는 한우목장에서 세 사람, 그 아랫집에서 세 사람이 지원을 나왔고 그날은 아내만 도와주러 갔다. 그 집 부부까지 합해서 모두 9명이서 종일 캤지만 절반밖에 캐지 못했다고..
그 다음날은 나까지 합세해서 10명이서 작업을 했다.
무성하게 우거진 고구마줄기 걷어내는 일도 힘들고, 곡괭이로 땅을 찍어서 캐내는 일도 숨차다. 여자들은 다듬어서 박스에 담는 일을 담당했는데 나는 탄광에서 석탄 캐내듯 종일 곡괭이질을 맡았다. 짧은 가을해가 넘어가기 전에 작업을 마치고 경운기에 모두 실어주고 왔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찾아가 보니 고구마 판매가 문제다. 밭 옆의 감악산임실치즈학교에서 팔아주겠다고 해서 심었다는데 10kg상자에 선별해 담아서 쌓아놓은 채로 그대로 있다.
부부가 판매가격을 정하지도 못하고, 남편은 자기가 고구마 팔아 본적도 없고 캐주는 것으로 일은 끝났으니 자기는 모른다며 발을 빼버리니 부인은 어찌해야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별수 없이 내가 앞장서 나서며 얘기는 내가 할 테니 박사장님은 따라와서 옆에만 있으라고 안심시키고 학교 측 사장을 만났다.
고구마 70박스 담아놨는데 가져다 줄 테니 팔아달라고, 시세는 상품이 3만원 중품이 25,000원인데 25,000원에 하자고...그랬더니 마음씨여린 박사장 그 양반 옆에서 23,000원에 하잖다. 그럼 판매가격은 더 알아봐서 학교 측에서 정하고 대금은 23,000원씩 계산해서 달라고 타협한 후 전부 실어다주고 홀가분하게 끝냈다.
그렇지만 이거 완전히 밑지는 장사를 한 거다. 판매총액이 160만원밖에 더 되나?
그런데 심을 때 밭가는 싻이 25만원, 고구마순 값 45만원, 박스 값 14만원. 캘 때 여러 사람이 도와줘서 그렇지 10명이 이틀간 일한 인건비를 계산한다면 최소한 60만원, 심을 때 비닐 값, 심을 때 인건비를 계산하면 이게 뭐야! 고생만 죽도록 했지 완전히 적자다.
차라리 콩이나 들깨를 심는 게 낫다고 얘기해줬다.
그 후 나는 별일 없었지만 아내는 이틀간 몸살로 앓아눕고 말았다.
이름을 모른다. 야생화 화원에서
담쟁이
길이가 장장 60m
우리 동네 우진네 할아버지부부. 논밭 합해서 8,500평에 농사를 짓는다.
한마디로 뼈 빠지게 일만하고 사는 사람들, 밭에 온갖 것 다 심었고 돈이 마르는 철에 그나마 현찰을 만질 수 있는 농사는 고추라며 3,200포기나 심었다. 고추 한차례 따려면 두부부가 이틀은 꼬박 걸리는데 그 뜨거운 여름부터 그동안 몇 차례나 고추를 따서 물고추로도 팔고 때로는 말려서 건고추로 팔았다.
지난주 토요일, 전날부터 끝물고추를 따고 있는데 나머지를 딴다기에 도와주러 나갔다.
만주벌판에서는 밭고랑이 하도 길어서 아침에 도시락 메고 김을 매며 끝에 가서 점심을 먹고 되돌아오면 하루해가 진다더니만 고추 골이 뭐 이리도 긴지?
10시부터 쉬지 않고 땄는데 점심 먹을 때까지 반골밖에 못 따고, 점심 먹고 나서 오후 4시쯤에야 마저 한골을 다 땄다. 우리부부 아니었으면 그 다음날 하루를 더 따야하는데 고맙다며 추어탕을 끓여준다.
그리도 힘들게 그 많은 농사를 지으면 일 년에 고작 2,4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고...
내가 따져보니 부부 두 사람 인건비나 따먹는 거다. 그마저 하지 않으면 돈 나오는 구멍이 없으니 별수 없이 기력이 있을 때까지는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네..
집에 돌아와 피곤해서 자고 있는데 비가 온다고 아내가 깨운다. 마당에다가 들깨, 수세미, 엿기름 등을 널어놓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것. 비를 맞으며 퍼 담아 옮기고 나니 한기가 몰려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심한 몸살을 앓았다.
우진네, 벼를 수확해서 대부분은 물벼로 농협수매에 넘겼고 집에서 먹을 아끼바리 10여가마를 길가 아스팔트에 널어 말리고 있다. 이집도 토요일 날 비를 맞혔는데, 어제 동생 회갑잔치 때문에 일산에 나간다기에 내가 고무래질을 해서 펴 널어줬고, 그 집 부부는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내일 비가 온다하니 담아야 할 거 아니냐고,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작업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냥 놔두겠다며 벼를 가운데로 몰아놓고 들어갔다.
아침에 나가보니 벼는 그대로 비를 맞고 바닥이 질퍽하다.
배고픔을 참아내며 등짐지고 땅 파먄가며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희생했던 우리의 조상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땅에 의지해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에서 부모님의 고단했던 모습을 떠올린다.
이제 날이 개고 해가 난다. 요 며칠간 내가 고단해야 남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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