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온통 피투성이.

백수.白水 2013. 9. 5. 06:38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피'라는 식물을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겨 괄시하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피는 벼농사와는 상극으로 반드시 뽑아 없애버려야만 하는 잡초요, 박멸의 대상이었다.

 

옛날에 농부들이 김매기를 하면  웬만한 잡초가 다 제거되었지만,

피는 한 포기에서 벼와 같이 자라고 특히 생육초기에는 볏잎과 비슷해 식별이 어려우므로,

피모가지가 올라올 때 쯤 온 논을 헤집고 다니며 일일이  뽑아주어야만 했다.

 

요즘은 벼에 해를 입히지 않고 잡초만을 선택적으로 골라 죽이는 제초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문제는 피가 벼와 같은 科의 식물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최신농법을 사용하는 지금도 '피사리'만은 어쩔 수없이  손으로,

피이삭이 익어 논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세대에도 피죽(피로 쑨 죽)을 먹어봤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어릴 때  얼굴이 핼쑥하거나 기운이 없는 친구들을 보면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었느냐며 놀렸던 기억이 난다.

이로 미뤄보면 옛날 우리 선조들은 피로 죽을 쒀 먹는 등 식용으로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다섯 가지 주요곡물을 오곡(五穀)이라 한다.

그 종류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5곡으로 치고,

중국에서는 쌀 ·보리 ··참깨 ·5

혹은 쌀 ·보리 ··수수 ·5종을 5곡으로 친다고 하니,

 

피는 주요한 식량자원으로서 인류의 식생활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과 강 모두 쪽빛.

멀리 보이는 파평산. 강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있는 절벽은 조선 후기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임진적벽도(臨津赤壁圖)에 나오는 임진강 자장리현무암적벽이다.

석벽 중간쯤에 보이는 양수펌프장, 1980년대까지 만해도 나룻배가 연천군 원당리와 파주시 자장리를 오가던 재쟁이나루터였다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 금년여름 수마(水魔)로 온몸이 할퀴어 상처투성이로 뼈가 하얗게 드러났던 강가의 삭령바위, 자연은 상처를 치유하고 그 위에 푸르고 고운 옷을 입혔다.

 

 

푸른 잎과 조화를 이룬 싸리나무 꽃이 청초하다.

 

그래, 가을에 피는 꽃은 다 그래.  화려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논이 온통 피투성이, 주인이 바빠 미처 피사리를 못했네. 내년에 엄청 고생하게 생겼다.

 

 

 

 

 

 

 

 

피는 아시아 원산으로 예로부터 한국·인도·중국·일본·유럽 등지에서 재배되었으며,

현재는 미국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재배된다. 옛날에는 구황작물로서 많이 재배하여 왔다.

환경적응성이 커서 산지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디며 냉수답 또는 밭에서는 냉수가 솟는 저습지에 재배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의 재배되지 않고 있다. 벼와 비슷하다.

 

성질은 강건하고 생육기간이 짧아서 100120일이다. ·밭에서 모두 재배되며 파종기는 추운 지방에서는 4월 중순부터 5월 하순, 따뜻한 지방에서는 병충해를 피하기 위하여 좀더 늦어진다. 피는 보통 가볍게 쪄서 절구로 정백한다. 단백질·지방이 많으며, 영양분은 쌀·보리에 떨어지지 않으나 소화율이 나쁘다.

 

밥에 섞어 먹거나 제분해서 떡·엿을 만들며 밀가루와 섞어서 빵을 만들기도 한다. 또 된장의 원료로도 쓰고 소주의 양조에도 이용한다. 피짚은 부드럽고 영양가가 높아서 겨울에 가축사료로 중요하다. 특히 석회분이 많아서 말의 사료로 쓰면 연골증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말의 사료용으로 재배한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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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과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식물로 높이는 1m에 달하고 곧추 자란다. 원산지는 인도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거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함경북도 회령읍 오동의 유적에서 탄화된 피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농경의 초기부터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병지(兵志)에는 말의 사료로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빈민들의 식품재료 이외에 사료로도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피는 불량한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강하여서 주로 구황작물로 애용되어 왔다.

 

벼가 재배되기 힘든 산간지나 북부지방의 냉수답 또는 냉수가 들어오는 논의 입구나 샘 둘레에 재배된다. 재배의 적지는 사질양토 또는 식질양토의 약간 습한 토지이다. 성질이 강건하여 저온은 물론 생육 초기를 제외하고는 한발에도 강하며 과습(過濕)에도 지장이 없다. 표고 1,500m까지 재배가 가능하다.

 

완숙되면 떨어지기 쉬우므로 경엽(莖葉)이 누렇게 변하고 열매가 80정도 성숙되었을 때 수확한다. 단백질·지방질·비타민 B1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영양가는 쌀이나 보리에 떨어지지 않지만 맛은 못하다. 장기간 저장하여도 맛이 변하지 않고, 또 비타민 B1의 함량에 변화가 없는 장점이 있다. 쌀과의 혼식 이외에 떡·엿 등을 만들고 된장·간장·술의 원료가 된다. , 겨 부분에는 기름이 많으므로 착유용·사료용으로도 쓰인다. 줄기와 잎은 작물의 줄기 중에서도 가장 연해서 가축의 사료에 적합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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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죽 한 그릇에 허리 졸라매고 초근목피로 허기진 배 채우던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는 속담도 있듯이.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다. 전쟁은 농사를 짓던 사람을 죽게 했고 땅은 초토화되었다. 비축해 둔 식량은 동강이 났다. 전쟁이 끝나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다. 전쟁은 또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래서 전쟁의 후유증은 상당기간 지속된다. 땅이 회복되어 곡식이 자라 수확하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전후의 사람들은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기도 하고, 척박한 땅에서 나오는 잡초를 뜯어서 끼니를 이어간다.

 

며칠을 굶주리면 평소에 먹지 않던 풀도 입에 가져가게 마련이다. 보이는 푸릇한 것들은 독이 없는 한 모두 먹을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구황(救荒)식물'이다. 피는 그런 구황식물의 상징이다. 피는 논과 밭에서 자라는 잡초다. 나락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벼보다 껑충 커버린 피를 적으로 간주한다.

 

벼가 먹을 영양분을 피가 다 빼앗아 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월 뙤약볕 아래서 여름 농활을 하는 동안 논에 들어가 내내 피를 뽑았다. 내가 피를 뽑는 동안, 내 다리에 붙은 거머리는 내 피를 뽑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피가 더 맛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농부의 극진한 사랑을 받는 벼보다 '망할 놈의 피'라고 외면당하는 잡초에게 더 많은 애정이 갔다.

 

피는 오곡(五穀) 중 하나로 식용이다. 조선시대 재배면적이 10ha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대표적 구황작물이지만 산업화와 녹색혁명을 통하는 동안 쌀 자급으로 급격히 자취를 감췄다.

지리산의 '피아골'이라는 지명도 식용피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 그만큼 피는 한반도에서 대중적인 작물이었다. 1965년까지만 해도 가축의 사료로 1000ha 정도 재배했지만 지금은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 현재는 미국이나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며 논과 밭의 잡초로 남아 있다. 피는 중국이 기원지이며, 고대로부터 인도,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서 재배되었다.

 

논과 밭에서 자라는 것은 돌피다. 잡초로 알려진 돌피는 대체로 밭에서 자라고 1~2미터 키에 꽃은 8~9월에 피며, 까락은 있거나 거의 없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생육일수도 100~120일로 짧다. 이 조건이 구황작물로 재배되었던 이유이다. 완숙되면 씨가 땅에 떨어져 저절로 군락을 형성한다. 수확은 80퍼센트 정도 성숙했을 때 한다. 그때 수확해야 씨앗 낭비가 없다. 완전히 익은 뒤에 수확을 하면 움직임으로 인해 씨앗이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벼와 마찬가지로 피의 주성분은 당질이지만 단백질과 지질의 함량이 쌀보다 높다. 잡곡 중 모양새가 좁쌀과 비슷한 피는 아미노산의 함량이 많아 맛이 구수하고 무기 영양소인 칼륨과 칼슘의 함량이 다른 화본과 작물보다 많다. 말의 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농진청에서는 벼에 밀려난 피를 대량으로 재배할 계획을 세웠다. 영양이 뛰어날 뿐 아니라, 항암과 미백, 항산화 작용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특히 기능성 생리활성물질인 '루테오린''N-세로토닌', '트리신' 등이 함유되어 화장품이나 기타 다른 기능성 신소재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해 농진청 유전자원센터에서는 일제 때 빼앗겼던 한반도 원산 토종유전자원 1500여 점을 반환받았다. 그중 식용이 가능한 피 품종인 '수레첨'을 올해 100m2의 면적에서 시험 재배한 농진청은 채종포에서 수확한 씨로 논에 섞여 있는 잡초가 아닌 식용이 가능한 '' 품종의 대량재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피의 생육기간이 3개월 정도로 벼보다 짧으며 간척지 등 척박하고 염분이 많은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생육에 필요한 물 요구량도 적으며 그 사용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제 피가 재배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날이 오나보다. 식용피를 재배한다고 하니, 잡초 피는 잡초대로 살아가겠지. 같은 피인데도 어떤 피는 인간에게 선택되어 작물이 되고, 야생으로 남아 있는 피는 여전히 야생으로 떠돌며 길러진 피보다 더한 향과 맛을 내게 될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우르르 자연산을 찾아나서는 바람에 야생피가 말살되지나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렇게 먹자] 피는 살짝 쪄서 절구로 빻는다. 단백질과 지방이 많아 영양은 높으나 소화율이 나쁜 것이 흠이다. 피는 쌀과 함께 밥을 짓거나 가루로 만들어 떡, 엿을 만든다. 미국, 일본에서는 밀가루와 섞어 빵을 만들기도 한다. 또 된장이나 소주의 원료로도 이용한다. 피의 질이 부드럽고 영양가가 높은 편이어서 일본에서는 피로 빵과 밥, 그리고 국수를 만들어 파는 식당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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