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勿(Ergune)都
多勿(Ergune)精神의 뿌리, Gooli Khan Tumen(東明) 석인상.
부이르(沸流)호반 할힝골(紇升骨: 忽本) 건너편 몽골스텝[몽골국]
숑크(紅) 타반(五) 톨로고이(頭)[五女山城=忽本城을 상기케 함] 소재.
<1992년 7월 29일 所撮>
(사진 위)
(사진 아래) 가셴둥(嘎仙洞) 단군신화의 무대로 추정되는 훌룬부이르시 오룬춘기(오倫春旗) 대흥안령분수령 바로 동쪽 嫩江(눈강) 최상류에 있다. 1980년 米文平의, '위서'의 탁발선비 선조 석실 석각축문(443년) 발견으로 확인, 조선 · 선비의 鮮(Soyan)족 조상제사터. 화강암 절벽의 석굴입구: 서남향, 20m(너비) ×12m(높이). 석굴내부: 최고치 90m(남북 길이) × 27m (너비) ×20m(높이). 석기시대 ∼ 철기시대 유물출토.
헤이룽장성 최북부에 위치하는 이레이후리산[伊勒呼里山; 主峰 大白山(1528.7m) 所在]에서 발원해 대싱안링[大興安嶺]과 샤오싱안링[小興安嶺]산맥에서 각각 흘러내리는 30여 개 하천이 합류하여 남쪽으로 향하면서 넌쟝(嫩江)을 이루는데, 백두산 호랑이로 상징되는 한국의 白頭山(2744m)과는 달리 이곳은 지하에 빙하가 흐르는 드넓은 “순록”-Chaabog 유목지대랍니다.
순록의 주식 선(蘚:Niokq)이 나는 선(鮮: Sopka, 小山)이 산 이름을 이루고 있지요. 바로 이 이레이후리산맥~대선비(大鮮卑: Sayan; 러시아어발음)산맥 중에 그 유서 깊은 鮮(Soyon)族의 조상제사동굴 가셴둥(嘎仙洞)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선(朝鮮)의 선(鮮: 공활한 툰드라 이끼밭)이 눈앞에 어른거리지 않나요?
호랑이의 생존생태 한계선이 이지대 이남이어서, 난 곧잘 수림툰드라지대에 자리 잡은 여기 이 가셴둥(嘎仙洞)을 곰녀와 범녀의 환웅(桓雄)을 둔 사랑겨루기 동굴자리로 상정해보곤 하지요. 그 서남향의, 최고로 저명한 드넓은 양목초지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을 지향해 에르구네(多勿)市도 있고 할힌골(忽本)도 있으며 유구한 계기적 전승유적 고올리칸(東明王) 석인상도 좌정해 있답니다.
이후에, 이런 나의 뜻밖의 특이한 행보에 관해서는 이듬해 봄 어느 목요일엔가 ‘김동길의 목요강좌’에서 더불어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담소 중에도 속으론 요동과 요서의 목초(牧草)가 어떻게 성격이 다르며, 대싱안링 남부 “홍산문화권”과 북부 “호눈선원(呼嫩鮮原)문화권”이 15,000년전 후기빙하기말 이래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어떠한 생태 변화와 차별성을 지니면서 각각 발전되어왔나를 생각해보았지요. 돌아오는 길에는, 삭풍(朔風)과 황해 및 동해의 바람길들이 상충하며 일으키는 미친 듯 한 거대돌풍과 요서 사해(査海) 용(龍)의 기원지 기괴한 초대형 광풍풍경도 상상해봤습니다.
몽골고원에는 담수호와 염수호가 대략 반반쯤 분포돼 있는데, 물론 담수(淡水) - 맑은 물(Ali水=阿里水)이어야 뭇생명이 마시고 살 수 있지요. 선족(鮮族=선비족)의 조상제사터 가셴둥(嘎仙洞) 앞을 흐르는 아리하(阿里河)의 원천을 지나 더 올라가노라면 넘어야하는 고개를 아리령(阿里嶺) 고개로 추정해보고는 근래에 이를 검증키 위한 답사를 추진해 감행하려 했으나, 당지의 당국이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간접적인 기별을 보내와서 접고 말았습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이행하는 순록치기 Chaatang조선의 기마 양치기화와 Ergune-Burqan구토회귀과정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조선민족 유목태반제국 창업사 상의 결정적인 일대의 역사적 사건이 빚어낸 노랫가락이어서 그 후 시공을 넘어서 모든 조선겨레에게 구석구석 빠짐없이 배어든 아리랑 타령일 수 있다는 생각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사뭇 내 뇌리에 감돌아오고 있지요.
이해 7~8월에 걸쳐 21일간 감행된 이 초유의 역사적인 몽·한합동동몽골대탐사기간 중인, 1992년 7월 28일에 부이르호반 원주민 잠수랑스렝(67세) 노인과의 회견에서 그이는 “몽골과 고올리(高句麗)인들이 서남과 동북으로 갈려 간 만남과 헤어짐의 아득한 옛적 오랜 추억을 기리는, 유서 깊은 부녀자들 간의 일정한 의례가 여기서는 상호간에 아직도 늘 베풀어지곤 한다”고 증언해주었습니다(『송년특집 다큐멘터리 유목민의 땅 몽골을 가다』제1~2부 SBS TV 홍성주 제작자 취재 보도. 1992).
박창범『하늘에 새긴 우리의 역사』(김영사 2002)에서 고구려 일식기록 분석 결과로, 그 관측지가 압록강지대가 아니고 바이칼호 우측 몽골지역이라고 해 이 근방을 지적하고 있음도 참으로 놀랍지요.
1993년 6월 중순, 바로 이 지역 울란우데 부리아드 코리(Qori) 동네에서 학술회의 뒤풀이 잔치자리 노래판이 벌어졌지요. 바이칼호반 원주민들과 이탈리아인들은 세계적으로 가창력을 인정받는 터라서 그렇지 않아도 음치 수준인 내가 기가 푹 죽어 있는 판에, 먼데서 온 코리(高麗: ‘활’) 부리아드 동포 교수라며 굳이 내게 막무가내로 한곡을 청해댔지요. 어쩔 수 없이 입을 떼긴 했는데 부르는 족족 “그만! 그만!”하며 사정없이 다 퇴짜를 놨습니다. “역시 난...!” 궁지에 몰려 난감해진 나는 마침내 비장의 무기 아리랑 타령을 되든 안 되든 한껏 신명나게 내뽑아댔습니다.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그건 당신네 가락이 아니고 우리네 가락이야 앙코르!” 역시 활겨레(弓族) 동포 코리족(高麗族)!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피는 못 속이는구나보다” 했지요.
비록 연구내용의 핵심에 유목성 본질이 깊이 각인돼 있는 본격적인 논저는아직 아니라지만, 그래서 박치정 교수님의 『고구려 아리랑』(도서출판 더씬 2012)은 코페르니쿠스적 역사생태인식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절체절명의 계제인 정보화혁명시대에 오랜 분단조국의 통일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겨야 할 지금의 우리가 문제제기 차원에서라도 눈여겨볼만 하다고 하겠습니다. <주채혁 전 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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