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머리앞뒤꼭지가 심하게 튀어나온 친구를 ‘남봉내미’라고 부르면서 놀렸던 기억이 난다.
다른 애들이 그렇게 놀리니까 나 역시 뜻도 모르면서 덩달아 그리 했던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따져보니 비슷한 말인 난봉(亂峯: 높이나 모양새가 고르지 아니하게 여기저기 솟은 산봉우리)과
관련이 있을듯하다.
앞뒤꼭지가 툭툭 튀어나온 사내아이, 원래 난봉남(亂峯男)이 맞는데... 남봉남> 남봉남이> 남봉나미> 남봉내미로, 변음이 되고 ㅣ음이 첨가되면서 그리 불리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놀리는 방법은 짱구송, “앞뒤꼭지 삼천리! 왔다갔다 육천리!! 삥 돌아 간다 구천리!!!”
따라다니면서 반복을 하면 씩씩거리며 되게 약 올라 했다.
맞다. 직진하면 삼천리인데 삥 돌아서 가면 구천리가 된다.
그러나 도는 것도 돌기 나름, 잘못하면 수만리가 된다.
자장리에 있는 임진적벽! 아름다운 모습을 겸재 정선은 ‘임진적벽도’에 담아냈다.
가히 절경이다. 나는 수시로 철따라 세월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본다.
北岸에 서면 지척이지만 줌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담아내기에는 거리가 멀다.
법정스님은 ‘매화는 반만 피어야 아름답고,
목련은 활짝 피어야 아름다움을 느낀다.
복사꽃은 멀리서 봐야 은은한 분홍의 빛깔을 느낄 수 있고,
배꽃은 가까이서 봐야 참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의 일 또한 그러한 것이라, 정들면 가까이 끌어당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차라리 멀리서 서로 그리워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내가 한탄강과 임진강의 현무암주상절리를 찾아다니면서,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데
가까이 다가섰을 때 허망하게 환상이 깨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깨질 때 깨지더라도...
관음증!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룻배가 없으니 산길을 돌고 강 길을 돌아서 가야 한다.
강을 건너자면 넓어봐야 200m인데 걸어서 돌아가려니 6km쯤 된다.
10시 30분에 출발해서 강 길과 산길을 오가는데 3시간 반 조금 더 걸렸다.
역시 가길 잘 했다.
임진적벽!
멀리서 보나 가까이에서 보나,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보고 또 봐도 싫증나지 않고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의 임진적벽도(臨津赤壁圖)
임진적벽(臨津赤壁)의 봄 ☞ http://blog.daum.net/ybm0913/1981
임진적벽(臨津赤壁)의 여름 ☞ http://blog.daum.net/ybm0913/2158
임진적벽(臨津赤壁)의 가을 ☞ http://blog.daum.net/ybm0913/2396
적성면 자장리
물오리떼
강가로 밀려난 얼음의 두께가 50cm로 무릎까지 올라온다. 강 건너 삭령바위(고층바위)
자갈밭 뒤로 보이는 괘암(卦嵒)
강 건너 봉곳이 솟아 오른 곳에서 구석기유적이 발굴되었다.
주상절리(柱狀節理) 아래에 판상절리(板狀節理)층
청단색(靑丹色)! 청회색바위에서 붉은 빛이 돋는다. 그래서 적벽(赤壁)이라 부른다.
판상절리 아래 베개용암이 있고, 그 아래에 있는 자갈층은 용암이 덮기 전에 있었던
옛 임진강바닥으로 이를 백의리층이라고 한다.
강 건너에서 보면 큰 굴로 보인다. 그래서 6.25때 동네사람들의 피난처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막상 가까이 가보면 그런 규모의 굴이 아니다.
적벽은 바닥에서부터 - 백의리층 - 베개용암 - 판상절리 - 주상절리 - 퇴적층(경작지)으로 구별된다.
용암대지는 강바닥보다 높아 용암폭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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