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 묘지 앞에서 /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6년부터 한국전쟁 당시 남한 땅에서 사망한 북한과 중국 군인들의 유해를 북녘땅에 가까운,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5㎞ 떨어진 적군묘지에 안장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1·21사태, 즉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김신조와 함께 내려왔다 사살된 무장공비 30명과 87년 김현희와 함께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하고 자살한 김승일, 98년 남해안 반잠수정 침투사건 때 사망한 공작원 6명 등의 유해도 이곳에 묻혀 있다. 얼마 전에는 전국 주요 격전지에서 발굴한 북한군인 유해 48구를 안장하기도 했다.
이 묘지가 들어선 것은 '교전 중 사망한 적군의 유해도 존중해야 한다'는 제네바협정 추가의정서 제34조에 따라서다. 축구장 두 개에 해당하는 면적에 북한군 유해 700여 구와 중국군 유해 420여 구 등 최대 1400여 구의 유해가 안장됐다. 무덤마다에는 각목으로 묘비도 만들어 세웠는데, 간혹 이름이나 계급 등이 적힌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무명인'이라 적혀 있다.
과연 이 유해들은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일단 중국군 유해는 한중 간의 협의에 따라 조만간 송환할 예정이다. 그러나 북한군 유해에 대해서는 기약이 없다. 반대로 북한땅 전역에 산재해 있을 한국군의 유해는 그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올해는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자그마치 61년째다. 적군묘지의 무덤들을 망자들의 고향인 북쪽을 향하도록 배려해 그나마 북향으로 배치한 데에서 작은 희망이 엿보이기는 하나, 남과 북 사이에는 더 큰 배려의 정신이 필요해 보인다. <권기봉의 도시산책>
'역사.유적.유물.지리.지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두산성(烏頭山城) (0) | 2014.03.02 |
---|---|
파주 성동리고분군(坡州 城東里古墳群) (0) | 2014.03.02 |
[겨울] 아름다운 임진적벽 (0) | 2014.02.18 |
<6> 고구려가 수-당과 벌인 90년 전쟁이 자기네 국내전쟁이라는 중국의 궤변 (0) | 2014.02.18 |
조국통일의 역사 주축, “多勿(Ergune)都” (0) | 2014.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