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유물.지리.지질

적군묘지 앞에서

백수.白水 2014. 3. 2. 15:09

 

적군 묘지 앞에서 /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리 정부는 지난 1996년부터 한국전쟁 당시 남한 땅에서 사망한 북한과 중국 군인들의 유해를 북녘땅에 가까운,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5떨어진 적군묘지에 안장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1·21사태,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김신조와 함께 내려왔다 사살된 무장공비 30명과 87년 김현희와 함께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하고 자살한 김승일, 98년 남해안 반잠수정 침투사건 때 사망한 공작원 6명 등의 유해도 이곳에 묻혀 있다. 얼마 전에는 전국 주요 격전지에서 발굴한 북한군인 유해 48구를 안장하기도 했다.

 

 

이 묘지가 들어선 것은 '교전 중 사망한 적군의 유해도 존중해야 한다'는 제네바협정 추가의정서 제34조에 따라서다. 축구장 두 개에 해당하는 면적에 북한군 유해 700여 구와 중국군 유해 420여 구 등 최대 1400여 구의 유해가 안장됐다. 무덤마다에는 각목으로 묘비도 만들어 세웠는데, 간혹 이름이나 계급 등이 적힌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무명인'이라 적혀 있다.

 

 

과연 이 유해들은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일단 중국군 유해는 한중 간의 협의에 따라 조만간 송환할 예정이다. 그러나 북한군 유해에 대해서는 기약이 없다. 반대로 북한땅 전역에 산재해 있을 한국군의 유해는 그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올해는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자그마치 61년째다. 적군묘지의 무덤들을 망자들의 고향인 북쪽을 향하도록 배려해 그나마 북향으로 배치한 데에서 작은 희망이 엿보이기는 하나, 남과 북 사이에는 더 큰 배려의 정신이 필요해 보인다.  <권기봉의 도시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