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1월27일] 밤에 방콕에 도착했다.
[둘째 날; 1월28일] 오전에 걸어서‘파쑤멘 요새’를 구경한 후 짜오프라야江의 선착장 ‘타 파앗팃’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타 띠안’으로 내려가 주변에 있는 ‘왓 아룬’과 ‘왓 포’를 관람했다. 오후에는 카오산로드와 방람푸시장을 구경하며 먹고 마시고...그리곤 1.29일자 치앙마이행 침대열차표를 예매했다. 방콕은 태국북부지역과 라오스여행을 마친 후 돌아와서 남는 시간에 다시 보자고, 마지막 방문지로 미뤄놓았다.
[셋째 날; 1월29일] 태국에 살고 있는 아내의 친구 명희씨를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애들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으니 30년도 더되었다. 딸이 우리 큰 아들과, 아들은 우리 작은 아들과 초등학교동기생으로 온 가족이 서로 가깝게 지냈던...딸은 10여 년간 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몇 달 전에 자기 사업을 위해 그만뒀다. 사위와 딸과 아들이 모두 자기사업을 한다. 명희씨는 손자들 뒷바라지를 위해 10여 년 전에 태국으로 들어왔고 이번에 남편까지 들어와 온 가족이 태국에서 살고 있다.
바쁜 것 뻔히 알기에 점심이나 먹겠다고 했으나, 우리숙소까지 찾아와서 점심을 사주고는 막무가내로... 방콕에 도착하던 날 공항열차에서 만난 소영씨까지 같이 호텔, 쇼핑, 유흥업소와 각국의 대사관 등이 몰려있는 방콕의 번화가 쑤꿈잇구역으로 날아갔다.
쑤꿈윗지역이 명희씨의 활동무대인 듯, 본인이 멤버십을 갖고 있는 정통태국마사지업소에서 2시간동안 얼굴을 포함한 전신마사지를 받고, 아직 태국음식에 적응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인업소에서 거하게 저녁식사를 한 후야 시간에 쫓겨 급히 헤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명희씨가 여행경비로 쓰라며 수(?)만밧을 봉투에 담아 아내에게 전해줬단다.)
그날 밤에 우리는 치앙마이로 가는 열차가, 소영씨는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가는 버스 편이 예매되어 있었다. 우리는 쑤쿰윗역에서 지상철(BTS)을 타고 후알암퐁역으로, 소영씨는 북부버스터미널이 있는 짜뚜짝시장 모칫(CHIT)역으로 각기 갈라지게 되었다.
휠람퐁 기차역
쑤쿰잇역 승차권자동발매기에서 우리가 가야 할 후알람퐁역표를 자기가 뽑아주겠다던 소영씨, 영어를 잘 하는데 웬일인지 표를 제대로 뽑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점차 길어지고, 시간이 급한데...내가 쫓아가보니 발매기에서 ‘후알람퐁’이라는 역 이름을 제대로 못 찾고 있었던 것, 뒷사람들에게 후알람퐁! 후알람퐁! 하며 물어도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르겠다는 눈치, 그때 퍼뜩 떠오른 생각, 명희씨는 우리와 대화를 할 때 꼭 ‘휠람퐁’이라고 했다.
내가 나서서 휠람퐁! 이라고 하니 그때서야 현지인들이 휠람퐁역을 지목해줬다. 우리나라의 서울역처럼 방콕에서 각지로 가는 거의 모든 기차가 출발하는 곳, hualamphong! 관광가이드북에도 한글판 태국지도에도 모두 ‘후알람퐁’으로 표기되었으나 현지에서는 ‘휠람퐁’이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기차는 저녁 18시 10분에 방콕을 출발해서, 장장 756km의 거리를 14시간 동안 달려 다음날 08시 15분에 치앙마이에 도착한다. 참고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441km이고, 서울에서 신의주 까지는 496km이다. 따라서 부산에서 평양(701km)까지 보다 55km를 더 달려야 한다. 2등석 에어컨침대열차로 2층보다 아래층이 더 쾌적하고 비싼데 요금은 881밧(대략30,000원정도)으로 vip버스보다 오히려 비싸다. vip버스를 이용하면 9시간으로 단축되지만 열차가 더 안전하고 잠자리가 편할 것으로 생각했다.
열차가 출발하고 나면 승무원이 금방 침대로 변신시켜준다.
기차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난 운하 (짜오프라야강의 파하팃 선착장부근으로 연결된다)
치앙마이는 란나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태국의 정통왕조와는 궤를 달리한다. 우리나라의 南北朝시대에 북쪽의 발해와 남쪽에 있던 통일신라를 상정하면 이해가 빠를지 모르겠다. 다르다면 신라는 북쪽의 발해땅을 통합하지 못했던 반면에, 태국은 훗날 란나왕국을 편입하여 지금의 영토를 확정지었다. 먼저 란나왕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답사에 큰 도움이 된다.
란나 왕국(1259-1558)
란나 왕국은 수코타이왕조에 비슷한 시기에 태국북부지역에 성립되어 20세기 초 태국에 완전히 합병될 때까지 약 600여 년간 실존했던 왕국이다.
정치적 연합체의 성격을 갖는데 치앙마이, 람푼, 람팡, 프래, 난, 파야오, 치앙라이, 치앙센 등이 여기에 속하며 치앙마이가 그 중심이었다.
란나왕국은 13세기에 ‘멩라이’(재위1259-1317)왕이 수립하였다. 그는 1262년도에 자기이름을 딴 치앙라이(Chiang Rai)를 건설하여 수도를 이전하였고, 1281년에는 남부의 몬족국가인 하리푼차이(오늘날의 람푼)를 정복하고, 1296년에는 치앙마이와 람팡 및 파야오를 그의 영토에 포함시켰다.
란나왕국은 1558년에 버마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독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1558년에 란나 점령을 통해 전초기지를 확보한 버마군은 마침내 1569년경 아유타야를 함락시킨다.
1558년부터 란나왕국에 대한 버마인들에 의한 직접 통치가 시작됨으로써 버마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란나왕국은 버마와 아유타야 사이에서 약 200년 동안 양국간 세력다툼의 볼모가 되었다.
1767년에 아유타야가 멸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유타야의 남은 세력들이 버마를 태국으로부터 완전히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톤부리, 이후 차크리)를 수립하였다. 이 시기에 버마와 갈등을 빗던 란나지역의 통치자들이 버마로부터 등을 돌려 태국과 힘을 합쳐 버마를 몰아내는데 성공하고 태국으로부터 정치적인 자치권을 부여 받게 된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버마와 라오스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태국은 란나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1939년 마지막 통치왕자가 죽자 중앙정부에서 주지사를 파견함으로써 마침내 란나는 태국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수도 변천>
1,259년; 발상지 - 치앙쎈
1,262년; 치앙라이
1,286년; 위앙꿈깜 - 치앙마이 남쪽 5km
1,296년; 치앙마이
태국의 역사는 현재 태국을 구성하는 주민족인 ‘타이(Thai)’에 대한 역사기록이 시작된 13세기로부터 시작되는데, 타이족은 5세기경부터 중국 운남성에서 이주해온 ‘따이(Tai)족’으로부터 파생되었다. 따이(Tai)족에서 지금의 태국민족인 타이족, 버마의 샨족과 몬족, 북베트남의 능족, 라오스의 라오(Rao)족이 파생되어 나갔다.
따이족들은 본시 현재의 중국남부는 물론 貴州, 四川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었으며, 주로 운남 大理근처에서 東南쪽방향으로 베트남북부를 향해 거의 수직으로 흘러들어가는 紅江과 黑江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은 5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는 동안 서쪽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며 라오스북부와 가까운 베트남의 ‘디엔 비엔 푸’분지로 이동하였다.
이들 따이족들이 주로 북부산악지대에 자리하게 된 것은 홍강과 흑강유역의 평야지대에는 이미 베트남족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이족들은 동남아시아지역에 늦게 도착한 민족으로 이미 이곳에는 베트남인, 참파인, 푸안인, 크메르인들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북부외곽지대를 따라 서쪽방향으로 수 세기동안 퍼져나가면서 야금야금 정착을 해나갔다.
따이족의 정착과정에서 각 부족들 간의 경쟁과 통합 속에 무앙(Muang)이라 부르는 小公國이 생겨났으며, 세습적 지배자를 짜오(Chao)라고 불렀다.
현재 태국의 북부지역은 이러한 소공국들이 있었고, 버마의 몬족(Mon)이 세운 하리푼짜이(Haripunchai)가 버마국경 근처에서부터 람푼에 걸쳐 차지하고 있었다.
‘백만 논(畓)의 왕국’이란 뜻의 란나왕국을 건설한 멩라이왕(Mengrai, 1239-1317)은 중국위안족인 따이 위안(Tai Yuan)에 의하여 지금의 치앙쎈지역(치앙센 근처라고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에 세워진 녹양((Ngon Yang)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22세에 부왕의 뒤를 이었고, 1262년에 치앙라이에 도시를 건설하여 치앙콘, 판 등 북부타이의 분지와 작은 평야에 흩어져있던 작은 토후국가들을 통합하여 왕국의 영토를 넓혀나갔다.
1287년 이곳 치앙마이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멩라이왕(King Mengrai)은 같은 타이족인 쑤코타이왕국의 3대왕인 람캄행왕(1277-1298), 파야오왕국의 응암무앙과 민족동맹을 맺고, 하리분짜야(현재의 람푼)지역에 있는 버마 몬족을 1291년부터 1292년까지 공격하여 하이푼차이를 멸망시켰다.
이 민족동맹은 태국역사에서 매우 중요한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는1238년 크메르제국(Empire of Kmer)의 지배하에 있던 수코타이에서 타이족장들이 크메르를 타도하고 세운 타이(Thai)족의 왕국으로부터 시작되는 태국의 역사를, 북부의 따이(Tai)족의 역사까지 포함하여 중국 운남성시절의 7세기경까지 소급시키며, 또한 북부의 영토도 원래의 영토로 포함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란나왕국은 1556년에 버마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독립성을 상실하고 버마의 속국으로 전락하여 버마와 아유타야 사이에서 약 200년 동안 양국 간 세력다툼의 볼모가 되었다.
그 후 1774년 탁신왕이 흩어진 타이족들을 모아 태국에서 버마를 몰아냄으로서 란나왕국은 자치권을 인정받게 되지만 1939년 마지막 통치왕자가 죽자 중앙정부에서 주지사를 파견함으로써 마침내 란나는 태국에 완전히 편입되었다. 란나지역이라고 할 때는 치앙마이주와 치앙라이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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