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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골에서 무건리고개 잣나무숲길로...

백수.白水 2015. 12. 5. 20:34

神巖里의 지명유래

 

 

신암리(神巖里)는 신암골 신앙골 시낭골로 변음(變音)되어 서로 넘나들면서 여러 갈래의 지명유래로 가지를 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감악산에 신암사(神岩寺)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선행지명은 "신암골"로 생각된다. 전래되고 있는 몇 가지 설을 검토해 보자.

 

1) 山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감악산의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시대에 신을 모신 바위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호구총수(戶口總數, 1789)에는 신암리(新巖里)로 기록되어 있다.

 

2) 남선굴(南仙窟)로 불리는 신선바위가 있어 신선바윗골 신암골 신앙골 신암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남을진(南乙珍, 고려말의 문신)이 감악산으로 들어오면서 귀신바위를 붙들고 울었다고 하여 ()’자와 ()’자를 따서 신암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상통한다.

 

3) 이곳에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골시낭골(--)’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사연도 그럴듯하게 붙이기 나름이다. 적성에서 감악산 설마치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으로 감골(무건리)’이 나온다. 신암골은 감골의 아래인 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감골의 남쪽이라는 의미로 시남골(枾南-)이라고 했다고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는 않다.

시남골은 자연스레 시낭골로 변음된다.

 

4) 신앙골에 대하여...

이번에 처음으로 신암2리에 들어갔는데 조그마한 산골마을에 근사한 성당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알고 보니 이곳은 가톨릭의 본당이 있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명의 신비와 숙명을 느끼게 된다.

 

『신암리에 천주교 신앙이 언제, 어떠한 과정으로 전파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1909년 신암리에 공소가 설립되었고, 1927년에 신암리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여기서 공소(公所)란 본당보다 작은 단위로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소나 그 구역을 이른다.

 

본당으로 있을 때 관할 공소는 본당 설립 당시에는 양주의 우고리(가라비) · 기산리 · 송굴암 · 자일리 · 남방리, 파주의 갈곡리 · 노파 · 쇠골 · 가목리 · 오미 등이었다1930년대 초에 접어들어 관할 구역이 포천과 가평 지역까지 확대되어 포천의 송우리 · 설운리 · 정교리 · 신팔리 · 화대리 · 오가리, 가평의 현리 · 신상리 등의 공소도 관할하였다.

 

그러나 신암리 본당은 신자들의 곤궁함으로 인해 본당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불과 5년 만인 19329월경에 본당이 폐지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신암리가 폭격을 받아 초토화되면서 커다란 피해를 입었지만 1953년과 1955년 사이에 신암리 신자들의 노력과 영국 군인들의 도움으로 공소가 곧 재건되었다고 한다.

 

2008912일자로 신암리 공소를 준본당으로 승격시켰다. 또한 2008105일에는 성당을 건립하여 현재 신암리 준본당은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한국 교회의 사적지 / 역사적 가치 재조명 받는 신암리 성당 / 양인성 에서 발췌]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신암골'을 '신앙골'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지명이다.

 

 

 

지도에서 감악산의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청색線)를 경계로 오른쪽이 양주시 동면의 신암리·매곡리이고, 재 너머 왼쪽이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법원읍 직천리이다. '무건리·직천리·오현리 일원'에는 한국군 1군단 제병합동훈련장인 소위 "무건리훈련장"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550만평으로 미군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1,100만평 규모로 확장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간 두어 차례 감골에서 경계지역까지 오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감골보다 남쪽인 신암2리 신앙골에서 성모성심성당, 연민목장을 지나 고개로 올랐다.

 

 

 

호수 빛 하늘, 이보다 더 파랄 수는 없다.

 

 

 

멀리 감악산 임꺽정봉이 보인다.

 

 

 

이 곳이 재 곧 고개다. 오른쪽 포장길로 가면 중계소이고 직진하면 사격장인데 출입금지지역이다.

 

 

 

1982년도에 대규모군사훈련장이 들어서면서 주민은 전부 이주하였다. 덕분에 숲은 잘 보존되어 울창하다.

 

 

 

고개에서 감골로 가는 산길이 있다. 산길 계곡에 3가구가 살고 있다. 행적구역상으로는 적성면 무건리다.

 

 

 

 

훈련장에서 포사격훈련을 할 때면 전쟁이 일어난 듯 경천동지(驚天動地)다. 포소리가 우리동네까지 들린다.

 

 

 

울창하다. 계곡으로 올라오는 바람에 '쏴아 쏴아' 잣나무숲이 운다. 상큼한 솔향기에  콧속이 싸하다.

 

 

 

 

무건리(감골)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계신다는 75세 되신 할아버지로 부터 전해들은 바로는, 

잣나무가 심어진 이 일대 200여 정보(60만평)의 임야는  통일교의 소유라고 한다. 잣나무가  많이 자랐지만 간벌을 제대로 하지 않아 너무 조밀해서 잣이 잘 열리지가 않는다고...

그리고 잣나무는 뿌리가 약해서 비바람에 가지가 잘리고 통째로 뽑혀 잘 넘어진다고 한다

 

 

 

 

혼자 걷는 길,  심심산골 후미지고 으슥한 숲속에서 묘지를 만나니 사람 본 듯 반갑다.

 

 

 

뉘신고? 200여년전의 인물이다. 부부가 한방에 누워계시니 그래도 덜 외로우시겠다.

 

 

 

 

 

 

 

 

 

효촌저수지 (孝村)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와 남면 두곡리·구암리에 있다.

 

 

 

 

 

 

느티나무! 모진 세월을 잘도 견뎌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