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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제주도

한라산과 영실

백수.白水 2015. 12. 26. 20:43

한라산은 예로부터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부악()ㆍ원산()ㆍ진산()ㆍ선산()ㆍ두무악()ㆍ영주산()ㆍ부라산()ㆍ혈망봉()ㆍ여장군() 등이 한라산을 두고 부르는 여러 이름들이다.
한라산은 예로부터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져 왔다.

 

한라산은 주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이다. ‘한라’라고 하는 것은 “이운한 가나인야(以雲漢 可拏引也)”(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두무악(頭無岳)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요, 혹은 원산(圓山)이라고 하니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영주산이라고 알려진 것은 중국의 『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바다 가운데, 봉래()ㆍ방장()ㆍ영주 등 삼신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로불사()의 약초가 있어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기원전 200년경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역사() 서불에게 그 약초를 구해 오라 명했다.

한라산을 ‘부악()’이라고도 부르는데, 부악은 한라산의 정상에 깊고 넓은 분화구가 연못으로 되어 있어 마치 솥에 물을 담아 놓은 것과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연못은 한라산의 신선들이 흰 사슴을 타고 노닐다가 물을 마시게 하던 곳이라 하여 백록담(鹿)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세조 10년인 1464년 2월에 백록담 인근에서 잡은 흰 사슴을 헌납[제주헌백록(鹿)]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라산(漢拏山)은 한 이름이 원산(圓山)이다. 제주에 있으며 봉우리 꼭대기가 모두 평평하기 때문에 원산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한라산 정상에 있는 분화구인 백록담은 동서 600미터, 둘레가 3킬로미터쯤 된다. 본래는 화산이 폭발한 분화구다.

 

그렇다면 현재 휴화산()인 한라산은 언제 폭발했을까?
“6월에 탐라의 네 곳에 구멍이 뚫리고 붉은 빛깔의 물이 닷새 동안 솟아나오다가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기와와 돌이 되었다.” 『고려사절요』 목종 5년인 1002년 6월의 기록이다. 용암이 제주의 여러 곳에서 솟구쳐 나왔음을 말하는 것인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007년에 탐라에서 다음과 같은 보고가 올라왔다. “상서()로운 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나왔습니다.” 그 보고를 접한 조정에서 대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가서 알아보게 했다.

 

이 『고려사절요』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때까지도 제주도 부근에서는 화산 운동이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지진과 화산으로 전 세계가 요즘도 깜짝깜짝 놀라는 것을 보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나 안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두 번의 화산 폭발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은 제주도를 떠나지 못했다. 화산 폭발이 있을 때마다 크고 작은 지역의 동굴로 몸을 피하거나 잠시 테우(제주의 배)를 타고 바다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영실()

한라산에서 백록담 다음으로 신령스럽게 생각하는 곳이 바로 영실()이다. 영실은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의 남서쪽 산허리에 위치한 골짜기로 약 1600미터에 펼쳐져 있다. 둘레가 약 2킬로미터, 계곡 깊이가 약 350미터, 그리고 5000개의 기암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로 한라산을 대표하는 절경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난 2000여 개의 돌기둥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 각종 새소리와 절벽의 허리를 두르고 있는 안개가 심산유곡의 극치를 이룬다. 웅장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 영실이다. 절벽의 동쪽에 500여 개가 넘는 형형색색의 모양을 한 돌기둥들이 울창한 수목 사이에 마치 장군들이 도열한 것 같기도 하고, 나한들이 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백나한(), 오백장군 또는 영실기암이라고도 부른다.

영실기암은 제주십이경에 손꼽히는 풍경으로, 한라산 정상의 남서쪽 산허리에 깎아지른 듯 서 있는 바위이다. 둘레가 약 2킬로미터, 계곡 깊이가 약 350미터, 그리고 5000개의 기암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로 한라산을 대표하는 절경이다.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과 흡사하다 하여 이곳의 석실을 영실이라고 일컫는다.

 

절벽의 서쪽에는 1200여 개의 바위기둥이 한데 붙어 있다. 그 모습이 장삼을 입은 불상들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병풍바위’라고 부른다. 골짜기의 웅장한 모습이 석가여래가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던 영산()과 닮았다고 해서 영실동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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