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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제주도

혼인지(婚姻池)와 신방굴

백수.白水 2016. 1. 30. 22:42

2016. 01. 29(금) - 제주도 26일째

혼인지(婚姻池)

 

혼인지는 삼성혈에서 태어난 탐라의 시조 고((() 3신인(神人)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온 함 속에서 나온 벽랑국(碧浪國) 세 공주를 맞이하여 각각 배필을 삼아 이들과 혼례를 올렸다는 곳으로,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마을 서쪽 지경의 숲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약 500평 정도의 큰 연못이다.

연못 남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된 현무암 비()가 세워져 있다.

 

아득한 옛날 모흥(毛興)이라는 곳에서 고을나(高乙那양을나(梁乙那부을나(夫乙那)라는 3신인(神人)이 솟아 나왔다. 이들은 수렵과 어로를 하며 생활 하였다. 하루는 이들이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 위에서 오색찬란한 나무상자가 떠내려와 해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3신인이 내려가서 목함을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玉函)이 있고 관대(冠帶)를 하고 자의(紫衣)를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나와 옥함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1516세 가량의 3공주와 우마(牛馬) 및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사자가 3신인에게 말하기를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요. 우리 임금께서 이 세 분 공주를 두셨는데, 혼기가 차도록 배필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소. 그러던 중 서해 높은 산에 3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다는 걸 아시고, ()에게 명하여 3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3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3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이들을 맞아 이 연못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다. 이로부터 제주도에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3공주가 들어 있던 목함이 발견된 곳은 속칭 '쾌성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이것이 도착한 해안은 '황루알'이라고 불린다. 지금도 여기에는 3신인이 바닷가에서 처음 디딘 발자국이 암반에 남아 있다고 한다.

 

 

 

 

 

 

 

 

 

 

 

 

 

 

 

 

 

 

 

 

 

 

 

 

 

 

 

 

 

 

 

 

 

 

 

 

 

 

 

 

 

 

 

 

 

 

 

 

 

 

 

 

 

 

 

 

 

 

 

 

 

 

 

 

삼공주추원사(三公主追遠祀)는지금부터 4300여 년 전 탐라(耽羅)를 창시한 삼을라비벽랑공주(三乙那妃碧浪國三公主)의 위패가 봉안된 묘사(廟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