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마지막 날인 2016.02.10일(水)
민통선 안에 있는 ‘살울이’마을을 가까이에서 조망하고 왔다.
내가 ‘살울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마을이름이 우리말‘샅(間)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마을이 어떻게 생겼기에 그러한 이름을 붙였을까 매우 궁금했었는데...
그동안 두어 차례 올렸지만 다시 한 번 ‘샅’에 대해서 알아보자.
‘샅’은 ‘두 다리의 사이, 두 물건의 틈’을 이르는 우리말로 ‘사이, 틈’과 같은 말이다.
옛말은‘삿ㅎ’이다. ‘좁은 골짜기의 사이,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 또는 골목 사이’가 ‘고샅’이며, '사타구니'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사태'라는 말도 원래 '샅의 고기'라 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사태고기'가 되어 나온 순수한 우리말로, 소다리의 ‘샅’에 붙은 고기를 ‘사태’라 하였다.
사미천(沙彌川)은 개성직할시 장풍군의 자라봉(624m) 동쪽기슭에서 발원하여 지곳천과 신천 등의 지류를 모으고, 남측으로 내려와 비무장지대인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에서 봉내천(鳳川)의 물을 받아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길이62.4km의 하천이다. 모래가 많이 밀려든다 하여 사미천이라 하였다.
봉내천(鳳川)은 군사분계선 북쪽지역인 개성직할시 장풍군의 항동리에서 발원하여 매현리를 거쳐, 경순왕릉(자작리)의 북쪽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판부리에서 사미천을 만나는 하천이다.
1.조망처 2.봉내천과 사미천의 합류점 3.사미천교 4.사미천과 석장천이 임진강과 합류하는 세물머리
‘살울이’에서‘살울’은 지명(地名)이며‘이(里)’는 행정단위이다.
지금은 地名의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있거나 없거나를 막론하고 모두‘리’를 쓰고 있지만,
예전에는 받침이 있으면‘이’로 썼다. 곧‘살울리’가 아니라‘살울이’로 썼다는 말이다.
살울이에 대한 지명유래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은 한곳이지만
행정경계가 자주 변경됨에 따라 이웃한 면(面) 또는 마을끼리 서로 달리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즉 살울이는 현재 장남면 자작리에 속하고, 경계를 맞댄 백학면 전동리는 그 이름이 살울이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1] 백학면 전동리(箭洞里)리‘살울'의 지명유래
살울은 장대부리 북쪽골짜기 안에 있던 마을로‘장단군과 적성현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문화 류씨, 남양 홍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던 마을이다.
실제로 이 마을은 장단군과 적성현의 사이에 있어 사이(間)의 어근인‘샅(間)'과 골짜기나 마을의 뜻으로 쓰이는‘울(洞)이 합쳐 ‘샅울'이라 하였으나 차츰 ‘삳울 - 살울'로 변음(變音)되면서 한자로 箭洞(전동)이라 표기하게 되었다. ※지명 본래의 의미를 잃고 엉뚱하게도‘화살마을’이 되어 버렸다.
[2] 장남면 자작리‘살울이’의 지명유래
살울이는 꽃밭모루 북쪽에 있던 큰 마을로 샛말(間村)이라는 뜻의‘샅울'이 ‘살울'로 음이 옮겨진 예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전주이씨 화의군파 후손들이 40여 호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요약비교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백학면 전동리 살울 |
장남면 자작리 살울이 |
장대부리 북쪽골짜기에 위치 |
꽃밭모루 북쪽에 위치 |
문화유씨와 남양홍씨 집성촌 |
전주이씨 화의군파 집성촌 |
○꽃밭모루는 오리골 서쪽에 있는 모퉁이로 이 곳으로 길게 뻗어 나온 산의 모양이 새의 주둥이같이 생겼다 하여 꽃밭모루가 된 것이며 장대부리는 살울 남쪽의 길게 뻗어 나온 산부리라고 하는데, 여기서 장대는 긴 막대기인 것이니 곶밖모루와 장대부리는 서로 같은 말이다.
○그러나 집성촌을 구성하는 성씨가 서로 다르므로 정확한 사실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민간인통제(민통선)초소에서 영농출입을 허가받고 들어가, 남방한계선철책 앞에서 다 같이 애틋한 마음으로 살울이를 바라보았다. 철책에서부터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저 앞의 맨 뒷산까지가 고향마을이란다.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은 꽤 넓고, 마을의 남쪽으로 봉내천(鳳川)이 흐르니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마을을 이루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40여 농가가 옹기종기 취락을 이뤘던 한국동란 전의 평화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동행한 이사장님, 1.4후퇴 무렵 여섯 살배기 코흘리개가 엄마 손에 이끌려 남쪽마을로 온지 어언 65년의 세월이 흘러갔노라고 비감에 젖는다.
가까이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철책에 가로막혀 오가지 못하는 실향민이기는 그 역시 매한가지다.
봉내천(鳳川)은 사진오른쪽, 멀리로 까만 산이 보이는 낮은 곳으로 흘러가다가 사미천을 만난다.
봉내천과 사미천의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서 ‘샅울’‘살울이’로 불렸을 것이다.
절토한 경사지의 지층이 아름답다.
사미천교 북쪽 풍경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 이곳은 철새들의 천국이다.
고능동
지도에서 만리포로 나오는 곳.
사미천의 제방을 축조하기 전에는 이곳까지 물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이 논에 동산처럼 말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이사장댁에서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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