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는 것은 좋다.
분별에 시비걸리지 않고 허리 굽은 나무처럼 비틀려 사는 것도 좋다.
멀리 간 자식 걱정하듯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어찌 어버이 뿐이겠는가.
말도 어눌하고 걷는 것도 굼뜨고 눈꼽 낀 눈으로 아침을 맞이해도 날마다 새 아침이다.
어제 아침이 그러했고 오늘 아침도 그러했으니 내일 아침도 그러하리.
저녁이면 차 한 잔에 침잠하여 아침에 얻은 해를 뜨겁게 녹이고 있으니 내일 얻을 해는 내일 걱정하라.
행복하시라 행복하시라.
퇴수기* 에서도 차가 우러난다.
세상 등진 늙은 중이 진리다.
바보는 일찌기 스승이고 묵은지라야 게미* 있다.
즐거운 이에게 단풍은 더욱 붉고 벙어리에게 자식은 더욱 사랑스럽다.
어눌한 입으로 그대를 위무한다.
돌아가 편히 누우시라.
긴 꿈꾸시라.
별 아직 총총하지 않은가.
눈으로 가슴으로 별이 쏟아지거든 일어나 차나 한 잔 하시라.
새벽을 뜸들이시라.
그 때 해가 떠오른다.
잘 품어 녹여내시라.
남긴다고 저축될 해가 아니다.
마음은 쓸수록 선한 종자가 되느니 악업종자와 싸워 이기려면 부처종자가 제일 아닌가.
장작개비 뜨겁게 불타오를 때 마음을 다비하라.
불땀 사그라질 때는 설령 장작더미 위로 걸어 들어가더라도 다비되기 쉽지 않다.
덜 탄 뼈마디 어쩔 것이며 다 하지 못한 말은 어찌 전할 것인가.
곤두선 사랑은 누구에게 전수한단 말인가.
타오르다 불 꺼지면 누구라도 등 돌린다.
부디 마음 안의 다비장 없애지 마시라.
타오르는 불꽃이라야 언 손이고 가슴이고 눈물겹게 녹여줄 것 아닌가.
그래, 늘상 다비하는 사람이라야 스스로 방광* 하는 법 터득하거늘
<2016.11.03. 금산 진악산아래 여공스님>
*퇴수기(退水器): 개수통(改水筒)이라고도 하는데, 찻잔을 씻은 물이나 차 찌꺼기 등을 담는 그릇이다.
*게미: 씹을수록 고소한 맛, 그 음식 속에 녹아 있는 독특한 맛’의 전라도 방언.
*방광(放光): 부처가 빛을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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