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국내여행. 산행

가을 산천유람

백수.白水 2017. 11. 2. 08:30


상강(霜降)이 지나고 가을은 깊어 11월이 되었다.

시월하순에는 중국여행(10.18~ 10.23)을 다녀온 후 연이어 여러 일들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10.25수덕사 선미술관에서 여공스님의 와편각전시회 오픈세레머니가 있었고, 10.28일 서울에서 친구일행이 내려와 우리 집에서 일박한 후 다음날 오서산휴양림으로 들어가서 1박2일동안 주변산천과 바다를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리고 시월의 마지막날 체육행사를 치르며 무리했더니 몸살이 오고 말았다.

어제가 생일인데 꼼짝없이 누워 있다가 이제야 일어났다.



여공스님 와편각전시회

전시기간: 10.25~ 11.6일. 장소: 수덕미술관


수덕여관에 가을이 짙게 내려앉아 고즈넉하다.



쓸쓸히 뜨락을 지키고 있는 구절초



10.25일 오픈세레머니에 참석했고, 10.28()일 친구들이 오던 날 우리 집에 오셔서 식사를 같이 했다.














우리 집 뜨락의 국화


금년 봄 사진작가 함재호선생이 추사고택인근의 청화재(靑華齋)에서 분양받아 가꾸던 여러 종류의 국화(大菊)화분을 50개나 가지고와서 심었는데 많이 죽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품종은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목화에 솜꽃이 피었다.



친구들과 23


서울에 사는 고향친구들, 일 년에 두 번 봄가을에 만난다.



하루는 우리 집에서 자고 하루는 서해안으로 나가서 자고 쏘댄다.



친구들이 내려오는 날, 도착하자마자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 가마솥에 끓여 두부를 만들었다.



가야산정상에 올랐는데...



전망이 흐려 올라갔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도미부인 솔바람 길


8보령방조제 5해안경관전망대 도미부인사당 벚꽃 드라이브 길을 걸어 원점으로 돌아왔다.



보령방조제 수문



방조제 안쪽의 호수



방조제 바깥쪽의 오천항.


충청수영해양경관전망대



구절초



아래전망대



위전망대



오천항과 보령방조제



산부추





조밥나물



도미부인 사당









[삼국사기 도미부인열전]


도미는 가난한 평민이었으나 의리를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 아내는 아름답고 행실이 곧아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개루왕이 이를 듣고 도미의 아내를 탐냈다.

그는 도미를 불러다가 "부인의 덕은 정절이 제일이지만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좋은 말로 꾀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미는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지만 신의 아내 같은 사람은 죽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아내에 대해 확신을 보였다.

이를 시험하기 위해 개루왕은 도미를 잡아두고 가까운 신하를 왕으로 꾸민 후, 도미의 아내에게 보내 "도미와의 내기에서 이겨 너를 궁녀로 삼게 되었으니 너는 내 것이다"라고 속였다.  

이에 도미의 아내는 몸종을 자기처럼 단장시켜 들여보내 왕의 일방적인 횡포에 맞섰다.

그 뒤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 되자 화가 난 개루왕은 도미의 두 눈을 뺀 다음 멀리 보내버리고, 도미의 아내를 범하려 했다.

도미의 아내는 몸을 씻고 오겠다며 궁을 탈출했으나 강가에 이르러 더이상 갈 수가 없자 하늘을 우러러 크게 울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조각배 한 척이 밀려왔다.

올라타니 배가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렀는데, 눈먼 도미가 거기에 살아 있었다. 극적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갖은 어려움 끝에 고구려 땅에 도착해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都彌, 百濟人也. 雖編戶小民, 而頗知義理. 其妻美麗, 亦有節行, 爲時人所稱. 蓋婁王聞之, 召都彌與語曰: "凡婦人之德, 雖以貞潔爲先, 若在幽昏無人之處, 誘之以巧言, 則能不動心者, 鮮矣乎!" 對曰: "人之情, 不可測也, 而若臣之妻者, 雖死無貳者也." 王欲試之, 留都彌以事, 使一近臣, 假王衣服馬從, 夜抵其家, 使人先報王來. 謂其婦曰: "我久聞爾好, <都彌>博得之. 來日入爾爲宮人, 自此後, 爾身吾所有也."

遂將亂之. 婦曰: "國王無妄語, 吾敢不順? 請大王先人入室! 吾更衣乃進." 退而雜 一婢子薦之. 王後知見欺, 大怒, 誣都彌以罪,  其兩眸子, 使人牽出之, 置小船泛之河上. 遂引其婦, 强欲淫之. 婦曰: "今良人已失, 單獨一身, 不能自持. 況爲王御, 豈敢相違? 今以月經, 渾身汚穢, 請俟他日, 薰浴而後來." 王信而許之. 婦便逃至江口, 不能渡, 呼天慟哭, 忽見孤舟, 隨波而至, 乘至泉城島, 遇其夫, 未死掘草根以喫, 遂與同舟, 至高句麗 山之下. 麗人哀之,  以衣食. 遂苟活, 終於 羈旅. <삼국사기 권 제28 열전8>



















오서산(烏棲山)










오서산휴양림에서 보는 오서산정상







광성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자동차로 내원사를 거쳐 쉰질바위까지 올라가 주차를 하고 정상으로 걸어 올랐다. 쉰질바위까지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고 험준하여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아찔,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내려가고 싶은 길이었다.



광성주차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오서산







내원사에서 올려다본 쉰질바위





내원사(內院寺)


오서산(烏棲山)에 있는 사찰로 수덕사의 말사이다.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이를 고증할 만한 문헌이나 유물이 전하지 않는다.

1744(조선 영조 20)에 편찬된 홍주읍지(洪州邑誌)에 사찰 이름이 나오고,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태고사사법에는 내원암(內院庵)이라는 마곡사의 말사로 나온다.

이밖에 자세한 역사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현재는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과 요사채가 있다.





요사채



하늘과 맞닿은 험준한 절이라서 그런지 찾는 이가 적고 퇴락한 절이다.



극락보전











오서산으로 올라가면서 내려다본 광천읍 일원.

멀리 홍성시내와 내포신도시까지 그리고 왼쪽으로 천수만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은 청천(청라)저수지. 오른쪽은 성연저수지.














이곳에 서면 멀리 가운데로 청양시내가 보이고, 그 뒤로 칠갑산과 더 멀리로 아스라이 계룡산도 눈에 들어온다.

































광천새우젓시장 우리 단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