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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백수.白水 2018. 3. 10. 10:43

 

우수 경칩(3.6) 다 지나 얼었던 땅은 풀렸고, 두어 차례 내려준 봄비덕분에 촉촉하게 물오르는 산천초목은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내 마음속의 봄은 아직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내말인즉슨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아니한 추운날씨가 계속 이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미세먼지로 우중충한 날들이 계속되다보니 화창하고 청명한 날은 일주일에 한번 보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청정계곡 옹달샘에 부옇게 흙이 풀려 흙탕물이 되어 있다면 그 누가 기꺼이 들이킬 수 있겠는가.

미세먼지가 심한 날 마스크와 같은 여과장치 없이 이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셔도 될까 걱정하면서, 말 그대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숨을 죽이기도 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날씨가 이렇게 되었는지 딱 선을 그을 수 없지만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흉내 내자면 이게 무슨 봄이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무래도 나는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자욱한 날은 산과 들 바다로 휘젓고 다닐 용기를 낼 수 가없다.

조심조심 숨죽여 지내다가 좋은 날을 골라서 산과 들로 봄나들이를 한다.

 

엊그제 봄비가 내리던 날, 수덕산 정상에는 눈이 내렸다 <집에서 올려다보고 찍음>

 

 

 

 

 

 

 

홍성용봉산 중턱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용봉(둔리)저수지

 

 

 

용봉저수지북쪽<사진왼쪽> 가까이보이는 왼쪽봉우리가 수덕산. <우측>먼 산 중계탑이 희미하게 보이는 가야산. 그 오른쪽으로 삼각형을 이루는 원효봉.

가야산과 원효봉 사이의 고개를 회목고개라 하였는데 지금은 헬기장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45번도로 출발점(덕산대치리 계곡장)에서 천주교성지인 한티재를 향해 조금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회목고개로 갈 수 있다. 회목고개를 넘으면 덕산면 상가리에 천하명당이라는 남연군의 묘가 나온다.

그 자리는 원래 가야사라는 큰절이 있었는데 2대에 걸쳐서 왕손이 나온다는 명당으로 알려져 이를 믿은 흥선대원군이 1844년에 절을 불사르고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쓴 곳이다.

 

 

 

가야산에 명당자리가 많다고 알려졌기 때문일까. 가야산 북쪽기슭에 남연군묘가 있다면 남쪽 기슭에는 교보문고 창업자인 대산 신용호(1,9172,003)선생의 묘가 있어 풍수지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가끔씩 찾는다.

묘소에서 가야산과 원효봉이 올려다 보이고, 앞으로는 수덕산이 눈에 들어온다.

 

 

 

 

선대 조상들의 묘도 함께 이장되었다.

 

 

 

묘소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수덕산

 

 

 

남연군묘(가야사지)에서 대문동고개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서원산이다.

 

가볍게 걸으며 봄을 느끼기에는 숲길이 최고다. 배낭도 없이 맨몸으로 선인들의 자취서린 옛길을 따라백제의 미소길을 걸으며 성큼 다가선 봄을 맞았다.

 

백제의 미소길은 내포문화숲길, 원효의 깨달음 길의 일부구간으로 가야사지(현 남연군묘)에서 가야산을 넘어 서산의 보원사지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옛 스님들이 보원사와 가야사를 오가며 수행을 해왔고 중국과 교역하던 상인들이 해상과 내륙을 연결해왔던 옛길을 되살린 길이다.

 

 

 

대문동고개

 

 

대문동고개쉼터. 정자 앞으로 난 길로 오르면 서원산으로 간다.

 

 

 

걸어 올라온 길을 따라 그대로 쭉 직진하면 백제의 미소길이다.

 

 

 

대문동쉼터 고개에서 가운데로 멀리 원효봉이 보인다.

 

 

 

산기슭을 절개하여 새로 낸 반듯하고 평탄한 지금의백제의 미소길은 아무래도 관광편의의 위해서 최근에 새로 낸 길인 듯 옛길의 정취는 덜하다.

노상 포장길로 걸었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장승이 서있는 곳에서 계곡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산분수합(山分水合)이다. 산이 높으니 골도 깊고,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물이 모여 계곡이 되고,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모인다.

 

 

 

예부터 계곡과 시내와 강물 곧 물길을 따라서 사람이 다니는 길이 많이 열렸다. 왜냐하면 물길이 만들어놓은 계곡이나 하천의 양쪽기슭이 대체로 낮고 편평하므로 길 내기가 쉽고 적합했을 것이다.

 

 

 

옛길은 산중턱을 깎아서 잘 다듬어놓은 지금의 백제의 미소길이 아니라 계곡을 따라서 나란히 난 이 산길이었을 것이고, 옛사람들은 이 산길을 통해서 대문동고개로 넘어 다녔을 것이다.

 

 

 

계곡은 아늑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제법 넓은 평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황폐해진 묵정밭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논은 누가 농사를 짓나보다. 온 논에서 개구리들이 악을 쓰는 것처럼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경칩이 지나니 제 세상을 만난 개구리들의 아우성! 와성(蛙聲)이 계곡가득하다.

 

 

 

논 여기저기 부화를 앞둔 개구리 알 덩어리들이 둥둥 떠 있다.

 

 

 

 

 

 

갯버들(버들강아지)

 

 

 

되돌아올 때는 백제의 미소길을 택했다.

 

 

 

 

 

 

대문동(大門洞) 고개께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폐가 한 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