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원섭섭. 대숲을 추억하며...

백수.白水 2018. 3. 25. 22:21


우리 집 앞으로 쭉 펼쳐진 대밭이 있어 속속들이 드러내면 추한 것들을 모두 가리고 눈 높여 저 위 수덕산정상의 서기(瑞氣)어린 모습만을 보여주었는데...

사시사철 靑靑하게, 때에 따라 다른 몸짓과 곡조로 흔들리며 다가오는 대나무와의 마주침이 일상이었는데... 그 대숲이 사라져버렸다.

 


"대나무의 곧고 푸름은 절개(節槪)를 상징한다.

왜 마디 절()자를 썼을까.

아마도 마디가 있기에 대나무의 곧음이 유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텅 빈속이 아무 쓸모없는 허()함은 아니다.

속을 비워냄으로 힘의 근원인 기운이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뜰 앞의 靑靑한 대밭 덕분에 우리 집 풍경은 사시사철 싱그럽다.

세찬바람에 댓잎우는소리가 얼마나 청량한지 모른다.

 

그러나 맑고 조용한 곳에서 산다하여 마음이 늘 고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슴속에서 평지풍파가 일기도 한다.

부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기도 하지만, 제 스스로의 흔들림이 바람이 되기도 한다.

 

이 흔들림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비바람 치는 날의 대밭풍경을 본적이 있는가?

대나무는 절대로 바람에 맞서지 않는다.

바람의 세기에 비례해 땅바닥에 쫙 깔릴 정도로 제 몸을 낮춘다.

그러다가 바람이 자고나면 꼿꼿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절개가 곧지 않아서 그리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대나무의 흔들림에서 올곧지만 부드러워야 강하다는 자연의 이치를 배운다.'

<백수(白首, 白鬚)  2016년 세모에 쓴 글>

 


"마당 앞에 대밭이 있는데 지대가 낮아 대나무 우듬지가 눈 높이에 서서 댓바람이 불어와 가슴을 적신다.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대나무 끝이 흔들려 눈을 청초하게 자극한다

 

月作雲間鏡 달이 그름사이로 떠오르니 면경처럼 드러나 보이고

風爲竹裡琴 바람이 대나무숲에 불어오니 거문고 타는 소리가 난다.

 

옛 시의 한 귀절이 절로 생각난다.

달이 떠오르면 동쪽 덕숭산에 둥실 환하게 거울이 창앞에 비추는 것이요.

바람이 대나무숲에 당도하면 스스삭삭 거문고 소리가 날 것 같은 실경이다.

 

실제로 대나무숲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람소리 새소리가 함께 울려 나오는데 도미솔 도미솔 라시도를 들을 수 있겠다

 

마음이 넉넉하여 이웃과 소통하기 위해 담장에 길을 내어 오가기를 청하고 달뜨기를 기다려 술잔을 기울인다 하니 그의 삶이 가히 평안하다.’<2016.12월 박영대시인 방문후기 중에서>




2017.10월 추석연휴 때의 수덕산과 대숲의 모습.



그동난 가려져 보이지 않던 흉측한 모습의 빈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쪽 귀퉁이만 보였던 펜션은 온 모습을 드러냈고, 수덕산의 계곡과 산기슭까지 모두 보인다.



누가 폐허로 변한 집터를 사서 어제부터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무너져 내린 돌담을 헐어내고 축대를 새로 쌓을 것이며, 폐가철거 후에 새로 집을 지을 것이다.

주변일대가 깨끗한 모습으로 변모될 것이다.



섭섭하기도 하지만 전망이 툭 트이니 시원함이 더 크다.

이제 댓바람은 펜션 뒷산에서 불어 올 것이다.



동네 앞에서 보는 뒷산



이제 우리 집도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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