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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不有時(다불유시)와 해우소(解憂所)

백수.白水 2019. 10. 23. 16:56

 

가을이 깊어 조락의 계절로 들어서고 있다.

가을걷이가 마무리될 때쯤이면 고향동네사당에서 시제를 지내는데 11월초에 다녀올 생각이다.
금산의 진악산(進樂山,737m)동남쪽기슭에 천년고찰(885년 창건)인 보석사(寶石寺)가 있다.

885(신라헌강왕11) 창건할 때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전각이 모두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소원을 비는 원당(願堂)으로 삼았다.

 

 

 

보석사의 자기마한 건물에서時有不多라는 푯말을 만날수 있다. 한자서적을 읽듯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면 多不有時(다불유시)가 되어 WC(water closet)를 소리 나는 대로(音譯) 한자로 적었음이 분명하다.

 

반대로 요새처럼 왼쪽부터 읽으면 時有不多(시유부다)가 되어시간이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기회를 잃지 마라. 허송세월하지마라는 가르침으로도 읽힌다.

 

지금은 변(便)을 보는 장소를 쓰임새와는 달리 점잖게 화장실(化粧室)로 많이 부르지만

원래는 뒷간·측간(廁間)이란 말을 썼고, 절에서는근심을 풀어내는 곳이라 하여 해우소(解憂所)라는 이름을 많이 썼다. 多不有時(다불유시)는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푯말은 아니다.

해우소(解憂所)는 한자풀이 그대로 근심을 푸는 곳, 뉘우침의 장소이기도하다.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 정일근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不食)을 했다면 뒷간으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를 깔고 뉘우친다.

가벼워진 세상의 발들 전(殿)을 돌아 장등(丈燈)이 밝혀주는 대웅전 앞 섬돌을 밟고 오를 시간,

나는 뒷간 무명(無明)속에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진실로 뉘우친다.

 

내 죄의 반은 늘 식탐(食貪)에 있다.

법고(法鼓)소리에 기름진 가죽이 함께 울고,

목어(木魚)의 마른 울음 오장육부를 북북 긁고 간다.

운판(雲版) 소리의 파편이 뼈 마디마디 파고들어 욱신거린다.

선암사 뒷간에 앉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근심을 버리자!

근심은 버리려 하지 말고 만들지 말아라.

뒷간아래 깊은 어둠이 죽비(竹篦)를 들어 내 허연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마음을 비우자!

마음은 처음부터 비워져 있는 것이다.

나무 벽 틈새로 스며들어온 꽃샘바람이 주장자(柱丈子)를 들어 내 뺨을 친다.

뱃속 근심이 우주의 근심을 만드는 저녁.

염주알 구르는 작은 원융(圓融)의 소리에도 사방십리 안 모든 봄 나무들이 깨달음의 문을 열어 꽃 등불을 켜는데,

나는 내 몸의 작은 뒷문 하나 열지 못하고,

단 몇 푼의 근심조차 내버리지 못한 채 선암사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뉘우친다.

 

 

금산 진악산(進樂山)과 보석사(寶石寺)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