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때 그 시절, 토종닭 키우던 일.

백수.白水 2019. 11. 25. 21:31


2007년 봄 귀촌하여 여러 종류의 가축을 사육하다가, 다음해인 2008년 말에 모두 정리해버렸다. 그런 후 겨우내 잘 먹고 잘 놀았는데 2009년 새봄이 오니 아내가 발동을 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달걀일랑 사먹지 말고 토종닭순종으로 10마리만 사다가 기르면서 잡아먹지는 말고 알을 내먹자는 제안이었다.



우리나라의 토종닭은 한 동안 자취를 감췄었는데 경북대학교(?)에서 산학협동으로 복원에 성공했다고 한다. 깊은 산골을 찾아다니면서 토종에 가까운 닭을 찾아내어 다년간 계통선발과정을 계속한 끝에 나온 성과로 덕분에 흔치는 않지만 토종닭농장이 전국 몇 곳에 생겨났다.


아직도 토종닭을 맛보기는 힘들다. 거개가 진짜토종닭이아니라 재래종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토종닭은 체구가 작고, 새처럼 잘 날아다니는데, 가장 확실한 특징은 다리가 청갈색이라는 점이다.

육질은 일반 닭보다 쫄깃하고, 알은 작지만 노른자가 진홍색으로 매우 진해서 접시에 깨뜨려도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옹골차다.


 

그 당시 간식으로 가끔씩 폐기처분되는 빵을 먹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어떤 방문자는 초코 도넛,머핀,소보르,바겟뜨,모닝빵,베이글,식빵....” 등 빵 이름을 척척 맞췄다.


 

기왕이면 성인병에도 좋고 계란보다 알이 큰 오리를 함께 기르기로 했다.

전에 쓰던 큰 축사를 부셔버리고 집 가까운 곳에 닭집을 새로 짓고 병아리를 사다가 기르기 시작했다.

토종닭은 수컷2마리 암컷3마리로 5마리, 오리는 수2마리에 암컷2마리로 4마리.

몇달이 지나자 닭과 오리는 어미로 성장하여 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부부둘이서 실컷 먹고도 남아 모아뒀다가 가끔씩 아들네로 보내주기도 한다.

 

 

대량생산이라는 자본주의 이면, 엄청난 물량이 폐기된다.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사회의 그늘진 곳에서는 한 조각의 빵이 절실한데도 말이다. 그나마 우리 집 닭과 오리가 이렇게 먹어주니 다행 아닌가? 방부제 때문일까? 밖에다 수십 일을 방치해도 부패가 되지 않는다. 부드럽고 달콤한 백색의 유혹. 조심 할지어다.



닭장의 분란(紛亂)


닭을 키우면서 몇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닭은 원래 일부다처(一夫多妻) 수탉 한 마리에 암컷15마리가 딱 좋다고 한다.

15:1의 비율이면 수탉의 보호로 암탉에게 안정감을 주어 산란율과 유정란율을 높여주는데, 

무식한 내가 암수성비를 닭 2:3(오리 2:2)로 잘못 맞춰준 탓에 암컷들이 곤욕을 겪고 닭장의 분란은 끊이지 않는다. 흰색과 붉은색의 수탉 두 마리모두 애착이 가는지라 선뜻 한 마리를 도태시키지 못하고 뭉그적거리다보니 여기까지 밀려온 것이다.


관찰결과 흰색 수탁이 1인자로 보인다. 수탉이 먼저 모이를 시식한 후 꾹꾹꾹!!! 신호를 보내야 다른 닭들이 달려와서 먹이를 먹게 된다. 서열싸움을 하는 중에도 제짝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혹시 다른 닭이 짝의 등에 올라타고 찍어누르기라도 하면 짝꿍이 달겨들어 부리로 찍아가며 끌어내리고,도망가는 놈을 끝까지 쫓아다니며 난리를 피운다.

오리는 울음소리로 암수구별을 한다는데 흰색이 수컷임은 분명하지만, 나머지 것들은 같은 색깔이라서 어떤 놈이 수놈인지 구별이 어렵다.

 

 

닭과 오리 간에도 우열의 다툼이 있다. 처음엔 부리가 날카롭고 동작이 빠른 닭이 오리를 이길 걸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동작이 느리고 뒤뚱거리며 부리가 뭉툭한 오리가 이긴다.

닭이 참 멍청하기는 하다. 그래서 멍청한 사람을 일러 닭대가리라고 하는가 보다.

밖에 풀어놨던 닭과 오리를 집안으로 몰아넣을 때, 오리는 출입문을 알아서 잘 찾지만 닭은 우왕좌왕 헤매고, 좋은 둥지를 새로 만들어줘도 처음 알을 낳던 자리를 고집한다.

 


토종닭은 바닥이 아니라 닭장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알을 낳기 시작했다.

아마도 알을 다른 동물에게 알을 도둑맞지 않으려는 생존전략일 것이다.

닭의 사랑은 시시때때로 아무 때나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서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는 노래처럼  

해질녘이면 닭장마당은 북새통을 이룬다.

정신나간 수탁이 오리 등에 올라탄다. 수컷오리가 꽥꽥대며 달려든다. 오리는 도망가는 수탁을 쫓아 다닌다.  붉은 수탉이 암탉 등에 올라탄다. 흰색 수탉이 사정없이 쫓아 내린다.

암컷들은 매일 계속되는 수탉의 폭압을 피해 도망 다니는데 붙잡히면 곤욕을 겪는다.

수컷의 구애(求愛)는 난폭하다. 암컷의 잔등털이 쥐어뜯은 듯 뽑혀나가 흉측스럽고 불쌍하다.

야밤에 흰색수컷을 잡기로 했다. 토종닭은 동작이 빠르고 새처럼 잘 날아 다닌다.

오리는 그렇지 않지만 닭은 100% 야맹이라서 꿈짝 못한다.

 

 




토종닭의 알 품기(포란.抱卵)


일반 닭은 알품기를 거의 않지만 토종닭은 알을 품어 새끼를 까는 습성이 아주 강하다.

며칠 전부터 검정암탉이 알 품기를 시작하기에 둥지에 달걀(7개)과 오리알(5개)를 둥지에 넣어주었다.

병아리를 사다가 키웠기 때문에 이 암탉은 어미닭의 알 품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때가 되니 저렇게 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지켜보니 며칠씩 먹이는물론 물 모금 먹지 않고 둥지를 지킨다.

수탁이 교대를 하며 알을 품어주는 것도 아니다.

배곯는 게 안타까워 사료를 코앞에 내밀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혹시나 알을 꺼내갈까 신경을 곤두세우며 매처럼 눈초리가 사나워진다.

생물의 종족보존을 위한 생식(生殖)행위는 욕구가 아니라 본능이고, 지독한 모성애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하나뿐인 둥지에서 알을 품는 관계로, 다른 닭들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옆에다 새둥지를 만들어줬지만 굳이 포란 중인 둥지로 비집고 들어가서 알을 낳으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수시로 쫓아 내리는데도 역시나 닭은 닭대가리, 다른 닭들이 포란 중인 둥지에다가 지금까지 알을 몇 개나 낳았는지 알 수가 없다.

포란을 시작할 때 알에다가 매직펜으로 표시를 해두었는데, 알을 확인하고자 둥지에 손을 집어넣으려하면 부리로 사정없이 손등을 쪼아댄다될 대로 되겠지... 확인을 포기하고 알을 낳기 위해 올라가는 닭을 쫓아 내리기만 하고 있다.

저녁 한 번씩 살펴보면 짝꿍인 붉은 수탉이 옆에서 둥지를 지켜주고 있다.

부부애가 대단하다. 몇 마리의 새 생명이 태어날까? 요즘 최대의 관심사다.

 


부화 중 알을 도둑맞.


생명을 잉태하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 산고(産苦)는 눈물겹도록 치열하고 안쓰럽다.

알을 품은지 18일이 지났다. 정상적이라면 3일후에 병아리가 태어난다.

관찰결과 토종닭은 땅바닥이 아니라 높은 곳에다 알을 낳고, 반드시 낳은 장소에서 알을 품는 산란과 포란습성이 있다. 

따라서 둥지나 알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어도 알을 낳았던 그 자리로 돌아가서 품게 되고, 혹여 알이 없어졌더라도 그 빈자리를 품고 앉아있다.

포란 중인 둥지에 다른 닭들이 올라가서 알을 낳으려고 자리다툼하는 바람에 둥지가 엎어져서 알이 쏟아져 내리기도 하였다.

식음을 전폐하며 꼼짝 않고 알을 품고 있는 암탉, 일 주일 전에 내려와서 정신없이 먹이를 먹고 올라갔는데, 어제 두 번째로 내려 왔기에 들어가서 둥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처음에 알을 13개 넣어 줬었는데 6개만 남아 있는 것 아닌가. 7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멀리서 유심히 지켜보니 까치가 날아들어 알을 훔쳐가는 것이다.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 귀한 손님의 방문을 미리 알려주는 길조로 여기던 새, 그 까치가 새 생명의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지금쯤이면 계란 속이 핏빛으로 전부 변해 있을 때인데 까치 두 마리가 닭 품속의 알을 꺼내가 버린 것이다.


방법은 하나, 둥지 위에 바구니를 덮어 씌웠다. 암닭은 내가 해치려는 줄 알고 매섭게 노려보며 손등을 쪼아 대더니 금새 보호해주려는 것임을 알고는 순응한다.

그런 후로 닭은 불편을 감수하며 이제 안정을 되찾고 조용히 새끼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동물도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는지 보호해 주려는지 알아차린다.

3일후 병아리가 탄생한다면 그 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모성애의 승리다.

달걀은 수정된 난자(수정란)가 체외로 배출된 것이다.

따라서 닭이 알을 품기 시작해서 병아리가 깨어 나올 때까지의 포란(抱卵)기간을 임신기간,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 시점을 출산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새생명의 탄생과 오리쌔끼의 호가호위(狐假虎威)


닭의 부화기간은 삼칠일(21)이며 오리는 사칠일(28)이다.

51일 흑색토종닭이 검정병아리 2마리를 깠고,

며칠이 지난 57일에 그 둥지에서 노란오리새끼 한마리가가 또 나왔다.

제 새끼를 부화시킨 어미닭이 그 둥지에서 병아리를 품어 기르면서 동시에 남아있는 알을 계속 품어준 덕분이다.

 

그런데 제 새끼가 아님을 알아챈 어미닭은 오리새끼를 내치면서 학대하기 시작했다.

깜깜할 때 오리새끼를 몰래 품속으로 밀어 넣어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사정없이 쪼아서 내친다.

태어나자마자 한 순간에 미운오리새끼가 되어버린 것, 제 새끼들은 애지중지 얼마나 끔찍하게 챙기는지 모른다.

 별수 없이 오리새끼를 골판지상자에 담아 집안에서 기르는데 토종닭병아리는 아직 참새만한반면에 오리는 생후 14일이 지났는데도 내 주먹만 할 정도로 성장속도가 빠르다.

사실은 장날 시장에서 비슷한 크기의 오리새끼를 몇 마리사다가 한 동안 같이 기르다가 닭장에다가 합방시킬 계획이었다.

미운오리새끼 한 마리는 구박덩어리로 닭장에서 어미닭은 물론 어미오리한테도 학대받을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부화를 시킨 어미닭은 제 새끼가 아닌 걸 금방 알아버렸고, 어미오리들은 오리대로 저희들이 알을 낳은 부모의 입장이지만 제가 알을 까는 산고(産苦)를 겪지 않은 고로 애착이 없고 제 새끼로 인정을 하지 않는듯하다.

비가 내리면서 5일장은 서지 않았고 집안에서 오리똥냄새가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학대를 받아가면서 적응하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지만 별도리가 없이 닭장에 밀어 넣었다.

낯선 환경이 불안한지 오리새끼는 꽥꽥 울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데 내가 구제를 해주지 않으니 두리번거리면서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에는 한쪽 구석에 숨듯이 자리를 잡더라.

 

한 시간쯤 후에 내려와 보니 닭장에서 난리가 났다. 오리새끼가 닭에 접근하니 수탁과 병아리를 거느리고 다니는앙칼진 암탉도 모두 무서워서 꾹꾹꾹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도망가기 바쁘다.

거기다가 어미오리들도 새끼오리가 접근하면 정신없이 줄행랑을 친다.

 

재미를 느꼈는지 오리새끼는 계속 쫓아다니고...어미오리와 닭들은 도망 다니고... 오리새끼는 한 순간에 닭장을 평정하고 금방 서열1위에 등극하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별일이다. 살다 살다 처음 보는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새끼오리의 울음소리가 어미오리와는 달리 주파수가 소프라노처럼 굉장히 높다는 것을 알았다. 노란색으로 색깔도 저희들과 다르고 울음소리도 다르니 아마도 독수리새끼 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것, 미지의 동물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얼마 전에 살펴보니 어미오리들이 잠자던 곳에 오리새끼가 앉아 있고, 어미오리들은 무서움을 느껴서 그런지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미운오리새끼가 더 자라서 털갈이를 하여 어미오리와 같은 색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마도 계속 왕 노릇을 할 것이 분명하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