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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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길을

여백의 시간

백수.白水 2012. 7. 20. 06:48

느림의 연장선상에 ‘비움’이 있다. 빽빽한 스케줄에 느림을 적용하면 시간 중간 중간에 텅 빈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이 비움, 혹은 비워짐이 의미가 없거나 별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비움이야말로 또 다른 채움과 충만을 위한 ‘결정적 배후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노자(老子)는 이렇게 말했다.

“바퀴살 서른 개가 모두 한 개의 바퀴 중앙으로 모여 있다. 그러나 모인 자리가 비어 있어 그곳으로부터 수레의 쓰임이 생긴다. 흙으로 그릇을 만들되 그릇의 빈 곳으로부터 그릇의 작용이 일어난다. 문과 창을 내어서 방을 만들지만 그 비어있는 곳이 방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있음’을 ‘이로움’이라 하고, ‘없음’을 ‘쓰임’이라 하는 것이다.”(‘도덕경’ 11장)

결국 꽉 찬 것이 그 존재의 의의를 가지기 위해서는 비움이 있어야 하고, 그 비움이 있어야만 꽉 찬 것도 쓰임새가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삶 속에서의 비움이란 곧 일상에서 ‘여백’을 확보하는 일이다. 별 쓰임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또 다른 외면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번씩 ‘생각주간(Think Week)’이라고 명명된 휴가를 떠난다. 일정을 꽉 잡아 여러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게 아니다. 혼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있는 소박한 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미래 10년을 위한 장기적인 비전을 세운다고 한다. 게이츠의 휴가는 그의 삶에서 완벽한 ‘여백의 시간’이다. 그는 비워진 여백을 통해서 ‘미래의 쓰임’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여백을 확보하는 건 쉽지 않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어떻게 시간을 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비우지 않으면 결코 채울 수 없다’는 점을 각인하고 비움의 중요성을 인식해보자. 의식적이고 계획적으로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그 텅 빈 시간을 음미하다보면 어느덧 좀더 풍성해지는 일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

 

 

중년 셋, 태고의 텅 빈 초원서 “처음처럼”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시인 겸 문화평론가 김갑수, 사진작가 윤광준 씨(왼쪽부터)가

몽골 초원 가운데 섰다. 지갑 열 일도, 휴대전화 쓸 일도 없었던 이곳에서

이들은 21세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가 바로 ‘비움’임을 깨닫고 왔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50), 시인 겸 문화평론가 김갑수(53), 사진작가 윤광준 씨(53). 세 남자가 이달 초 훌쩍 몽골로 떠났다. 무거워진 ‘오십줄’ 어깨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들은 텅 비어 있는, 태곳적 광활함만 남은 몽골 초원 가운데 섰다. 한국에서 꽤 잘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선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이들의 어깨는 가벼워졌을까. 김갑수 씨가 나흘간의 몽골 여행기를 보내왔다.》

“어디든 험한 곳으로 멀리 떠나자”


중년의 사내 셋이 있다.
먼저 사내 1. 현실로부터의 망명을 꿈꾸면서 폼 잡고 사는 족속이다. 기업체 스타 강사로 크게 한탕 하고 방송에서 ‘명작스캔들’ ‘승승장구’ ‘힐링캠프’ 따위로 여러 탕 하더니 베스트셀러 ‘남자의 물건’으로 결정타를 날린 김정운이다. 감당 못할 유명세에 허덕허덕하더니만 한적한 일본 나라(奈良) 현으로 진짜 망명해 버렸다. 고생 끝에 얻은 교수직마저 때려치웠다. “형, 나는 뭐가 뭔지 두려워.” 그는 자신이 획득한 성취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았다.

사내 2가 곁에 있다. 내 식으로 인간의 존재감을 분류하자면 ‘너무 있음’ ‘그저 있음’ ‘거의 없음’으로 나뉘는데 내 오랜 친구 윤광준은 ‘거의 없음’처럼 처신한다. 나대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로지 한평생 얼마나 재미있게 노느냐가 그의 인생 목표다. 주업인 사진촬영과 오디오 평론 말고도 종목 나열이 번거로울 만큼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늘 분망하다.

그 둘 사이에 시인이자 문화평론가라는 모자를 쓰고 사는 나, 김갑수가 있다. 평균치 바깥의 이상한 성격과 취향을 타고난 김에 이상한 삶을 살고자 했으나 전혀 이상한 사람이 되지 못한 장르 불상의 프리랜서이자 방송인쯤으로 정리하련다.

자주 어울리는 세 사내의 공통점은 음악과 여자를 유난히 사랑한다는 것, 별 쓸데없는 얘기를 자꾸만 책으로 출간한다는 것, 삶과 존재에 대해 청소년기 때 하던 담론 혹은 ‘구라’를 지겹게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랄까. 그런데 나이 오십이 넘자 어깨가 자꾸만 무거워져 간다. 지난 봄날 세 사내가 일본 교토(京都) 기온신바시(祇園新橋) 주점에서 ‘나마비루(생맥주)’를 기울일 때 이런 합창이 튀어나왔다. “우리 어디든 험한 곳으로 멀리 떠나자!”

그렇게 우리는 몽골로 떠났다. 7월 5일 밤 11시쯤 몽골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에 내렸다. 기다리고 있던 산악용 포터 2대가 일행을 태우고 곧장 냅다 달렸다. 서술이 급해지는 까닭이 있다. 몽골에선 모든 것이 ‘냅다’ ‘다짜고짜’였다. 일단 차가 향한 방향이 다짜고짜 비포장 미답지였다. 그 밤에 3시간여를 달려 난가르에 도착할 때도, 다음 날 하루 종일 걸려 솔롱고스 파크 캠프로 갔을 때도 길은커녕 험준한 구릉지가 대부분이었다. 없는 길을 만들며 달리는 사륜구동 차는 덜컹거렸다. 속이 울렁거렸고 괜스레 막연하고 무서웠다.

몽골 산야에 문명은 텅 비어 있었다. 칭기즈칸은 광막한 초원과 구릉만 남겨 놓았다. 한국에서 우리는 길의 구획에서 살았다. 아무리 인적이 드물어도 가다 보면 인공 구조물이 나타나고 방위를 지시한다. 그런데 몽골에는 없다.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라고 하는 게 없었다. 이런 ‘로빈슨 크루소’는 처음이다. 산악 바이크를 타고 향도(嚮導·길 안내)를 맡은 과묵한 몽골 청년 묵파타가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곧 차가 뒤집힐 듯 아슬아슬한 산비탈, 무작정 전진하다 보니 앞뒤가 콱 막힌 숲 속, 광막하게 트여 정처가 없는 하늘 밑 초원. 알고 보니 그 광대무변(廣大無邊)이 해발 1300m나 됐다.

 

가는 곳이 길이요 머무는 곳이 집일세

 

지명도 가게도 박물관도 호텔도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행 내내 지갑 만질 일이 전혀 없었다. 이럴 때 심리학자는 남달라지는가 보다. 김정운이 중얼중얼 반복한 말이 이렇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데서는 왜 극단적인 성적 환상만 떠오르지?” 나는 일본 동영상에서 본 억양으로 화답했다. “스고이(멋져)! 기모치(기분 좋아)! 오이시(맛있네)!” 묵직한 윤광준이 한마디 거들었다. “지랄들 허네.”

몽골에서 ‘다짜고짜’는 길만이 아니었다. 마냥 달리다 보니 밥때가 한참 지났는데 비는 내리고 마땅히 은신할 장소도 없었다. 저 멀리 게르(몽골의 이동식 집) 천막촌이 보인다. 다짜고짜 아무 천막이나 들치고 들어갔다. 몽골 풍속은 과객의 방문을 절대 마다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고두심’의 신세를 지게 됐다. 배우 고두심 씨를 완벽히 닮은 주인아주머니가 웃으며 반겼다. 후줄근한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오삼 불고기를 구우며 법석을 떨어 댔다.

고마워요! ‘고두심’ 아줌마

야전침대와 옷가지, 양은냄비, 큼직한 화로 따위가 세간의 전부였다. 이 조촐한 유목인의 삶에서 빈곤을 읽는다면 참으로 멍청한 일이다. 거창한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여전히 휴대전화를 손에서 떼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했다. ‘고두심’은 자꾸 웃기만 했다. 우리는 그가 끓여 내온 양젖 차를 황송한 기분으로 맛있게 마셨다. 떠날 때 무언가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저 자연스럽고 몸에 밴 호의 앞에서 돈 따위를 내미는 건 정말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여행 내내 나무그늘에 몸을 맡기고 커다란 바위에 기대었듯이 또 하나의 자연에 잠시 의지했던 것이리라. 고마워요. ‘고두심!’

수천 년 농경정착민의 삶을 살았지만 원래 우리 선조는 유목민이었다. 정착 이래 중국 문명을 전면적으로 수용했고 이어 서구, 그중에서도 미국 문명을 압도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비로소 다시 바깥세상, 인류의 지평으로 진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단서는 디지털이다. 디지털 문명을 그야말로 아방가르드하게 활용하고 있는 우리다. 그것은 무한 가능성일까, 일시적 거품일까.

몽골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이어령 선생과 점심 식사가 있었다. 선생은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가 찾아갈 곳은 미국이나 중국, 유럽이 아냐. 비어 있는 유라시아란 말일세.”

비어 있어 찾아갈 그곳이 바로 몽골이고 중앙아시아다. 휴대전화 장사하고 K팝 유행시키자는 따위의 말이 아니다. 그곳엔 디지털이 없었고 첨단은 무의미했다. 처음을 체험하게 하는 태곳적 상태. 그 광활한 비어 있음은 압도적이었다. 자꾸만 우리 존재의 크기를 가늠하게 하는 몽골 초원의 평화로운 양떼를 떠올리니 무겁던 어깨가 생각났다. 중년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나? 아니 오히려 더 무거워진 건가?
<동아/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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