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 해를 보내면서

백수.白水 2012. 12. 31. 16:47

이 해(年.歲)가 서산으로 넘어 간다.

 

 

강원도 법동군 용포리의 두류산에서 발원하여 244km를 흘러내려와 한강을 만나서 서해로 흘러드는 임진강. 중간에 고미탄천과 평안천, 한탄강, 사미천을 합류한다.

 

세밑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에 흰 눈이 쌓였다. 발밑의 흰 눈 속 얼음장 아래로 이 순간에도 강물은 쉬임없이 흐르고 물고기 떼 지어 노닐겠지만 그 물이 고미탄전 물인지 한탄강물인지 알 수가 없고 가릴 필요도 없다. 그저 임진강물일 따름이다.

 

그 물이 두류산을 어제 출발했는지, 아니면 오늘 아침에 출발했는지 알 수도 없지만 가릴 필요도 없다. 물은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발밑을 흐르고 있을 뿐이다.

 

한해와 새해의 사이,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구분하여 어찌 획을 그을 수 있다는 말인가.

굳이 따지자면 흰 눈을 밟고 걸어온 나의 발자국이 나의 과거요, 앞으로 내 딛는 한발 또 한발은 나의 현재요, 앞에 펼쳐진 눈밭이 나의 미래인 것이다.

발뒷금치는 어제요, 발바닥이 지금이며, 앞굼치가 내일인 것이니 매순간 내 몸뚱아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함께 걸머지고 걷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인생이란 이렇게 세월의 길을 뚜벅뚜벅 걸러가는 것. 내가 걸어온 길이 구부러졌다고, 발자국이 흐트러졌다고 되돌아가서 다시 걸어 올수도 없는 일, 후회스럽다면 이순간부터 바로 걸으면 될 일이다.

 

오늘, 하늘 푸르고 강 건너 산은 하얘서 더욱 눈부시다.

해질녘 서산으로 넘어가는 이 해(, )를 미련도 없이 보낸다.

 

그리고 내일아침 찬란히 솟아오르는 새 해(, 年)를 그저 담담하게 맞이할 것이다.

 

 

 

 

임진강 얼음판  내발자국

 

두지나루(황포나루). 빨간 풍선 있는 곳에서  '임진강 황포나루 꽁꽁축제'가 열리고 있다.

클릭http://www.임진강겨울축제.com/   2012.12.24~2013.02.03

얼음 숨구멍

눈꽃인가? 서리꽃인가?

그도 아니라면 얼음꽃인가? 얼음판 바로 옆 모래밭에 예쁜 꽃이 피었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보내면서 즐거운 마음이 드는 이는 많지 않을 겁니다. 이룬 것은 없고 나잇살만 먹어가니 그러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덕무(李德懋)는 제야(除夜)의 밤을 반성의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21세 때인 1761년 ‘신사년을 전송하는 글(餞辛巳序)’을 지어

“묻노니 오늘밤은 어떠한 밤인가. 어린아이들의 기쁨은 크겠지만, 사실 해(年)를 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해를 줄이는 것이니 늙어가는 회포가 적지 않다. 마치 천 리 먼 곳에 벗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슬프다. 푸른 촛불의 그림자가 바야흐로 길기만 하구나”라고 탄식하였습니다.

 

또 1764년 지은 ‘갑신제석기(甲申除夕記)’에서는 그해 9월 9일부터 섣달그믐까지 100여 일 동안에 공부한 것을 돌아보면서 그 공과를 기록하고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안히 있으면서도 가르침이 없으면 바로 짐승에 가깝다”, “하루를 독서하지 아니하면 털구멍이 모두 막힌다”는 옛말을 든 다음, 성실하게 공부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한 해를 보내면서’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섣달그믐이 바쁘고 후회스러운 법입니다. 그래도 섣달그믐에 후회했던 마음을 신년에 그대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섣달그믐을 보내는 선비의 마음입니다.

 

이덕무의 벗 박지원(朴趾源)은 설날 아침 거울을 보고

 “두어 올 검은 수염 갑자기 돋았지만, 육척의 신장은 조금도 자라지 않았네. 거울 속 얼굴은 해를 따라 달라지건만, 자라지 못한 마음은 지난해나 그대로일세(忽然添得數莖鬚 全不加長六尺軀 鏡裡容顔隨歲異 穉心猶自去年吾)”라고 하였습니다.

 

외모는 세월을 따라 늙어 가는데도 마음이 그에 맞게 성숙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것입니다. 내일 아침 거울을 보고 무슨 생각들을 하실는지요?     <동아일보/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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