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치차(齒車)

백수.白水 2013. 12. 15. 08:42

 

 

 

나이를 먹어도 모르고 사는 게 많다. 강변 둑 안에 작은 조립식주택 하나를 갖다 놓고 혼자사시는 68세의 이oo사장님, 산책길에 가끔씩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작년에 이곳으로 오셨는데 인생역정이 한마디로 파란만장하신 분이다.

하여튼, 며칠 전 마을회관 잔치자리에서 만났었는데 점심을 먹다가 오른쪽 어금니가 바사삭 부서져 내렸다고...틀니를 할 것인가? 옆에 있는 이빨에 걸 것인가? 임플란트 시술을 할 것인가를 놓고 얘기를 나누던 중에 치차(齒車)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본인이 공업학교를 나왔고 왕년에 전파사를 한 적도 있단다. 옛날 시계는 태엽과 톱니바퀴로 이루어 졌는데 톱니바퀴를 치차(齒車)라고 한단다. 공업기술 분야에서는 흔히 통용되는 말이겠지만 처음 듣는 말이다 보니 신기하고, 알수록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는 생각이다.

 

나무를 자르는 톱에 이빨이 있으니 톱니. 그렇다면 둥근 바퀴에 이빨이 있으면 齒輪(치륜)이요, 시계처럼 톱니바퀴가 계속 돌면 齒車(치차) 아니겠는가.

시계를 오래 쓰다보면 톱니바퀴가 마모되어 고장이 나는데, 자원이 부족하던 시절, 마모된 부분만 도려내고 그곳에 새로운 톱니를 오려 붙이는 게 시계수리기술이었다고, 임프란트 시술이라는 것도 결국 이러한 기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라고... 딱 맞는 말씀이다.

 

()

 

입술 사이로 보이는 이의 모양에서 따왔다. 치아(齒牙)는 이를, ()는 어금니를 이른다. 치조(齒槽)는 이틀, 치차(齒車)는 톱니바퀴, 치륜(齒輪)은 기어(gear). 나이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존경을 받는다는 말을 치덕구존(齒德俱尊), 마을에서는 나이 순이란 말을 향당엔 막여치(鄕黨 莫如齒)’라고 한다

 

강한 것은 망가지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간다는 뜻으로 치망설존(齒亡舌存:이는 없어지고 혀는 남아있다)이라는 말을 쓰는데 설원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노자 철학의 핵심을 보여준다

 

이 빠진 노인: (입을 쩍 벌려 보이며 노자에게) 내 혀가 있느냐?

노자: , 있습니다

노인: 내 이가 있느냐?

노자: 이는 없습니다.

노인: 자네는 알겠는가?

노자: 혀가 남아 있는 것은 혀의 부드러움 때문이 아닙니까? 이가 남아있지 않은 것은 그 딱딱함 때문이 아닙니까?

노인: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이와 같으니라

 

죽을 때까지종신토록이란 말을 몰치(沒齒),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다는 말을 몰치불망(沒齒不忘), 일생동안 벼슬 한 번 못해본 것을 몰치불용(沒齒不用)이라 한다. 나이순은 치서(齒序) 또는 치차(齒次), 나이순으로 앉는 것은 치위(齒位)라 한다. 치쇠(齒衰)는 연로(年老)와 같은 뜻이며 치랭(齒冷)비웃다는 말이다

 

하느님은 만물을 공평하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이빨을 주면 뿔을 안 주고 날개를 주면 발을 두 개만 주었다(予齒去角傳翼兩足)’는 말이 전한다. ‘한서’ ‘동중서전에 나온다<국민일보/권영대 |고려대 강사>

 

齒車(톱니바퀴)

 

중국 치과는 몹시 웃긴다. 어금니만 중요한 건지 치과를 '아과(牙科·야커)'라 하고 치아는 '아치(牙齒·야츠)', 치과의사는 '아의(牙醫·야이)' 또는 '아대부(牙大夫·야따이푸)' '아과대부(牙科大夫·야커따이푸)'. 송곳니나 앞니가 아파도 '아통(牙痛)'-어금니가 아프다 하고 치약도 어금니만 닦는 '아고(牙膏:야까오-어금니에 바르는 고약)'이고 칫솔은 '아쇄(牙刷·야수아)'. 하이라이트 용어는 '혈분(血盆·쉬에펀)'이다. 아과에서 어금니 치료를 받기 위해 딱 벌린 입이 마치 피가 담긴 동이 같다고 해서 '혈분'이다. '동이 분'자다. 신변잡기를 묘사한 저질 문학을 '아통(牙痛)문학'이라 하는 것도 그만큼 어금니가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이빨, , 치아가 건강한 건치(健齒)5복의 하나라고 했고 연치(年齒)가 곧 나이로 '나이 령()'자에 이빨이 들어 있다. 학덕이 높은 사람의 치아를 넣고 쌓은 탑이 '치아탑(齒牙塔)'이고 공장 기계에 없어서는 안되는 게 톱니바퀴-치차(齒車), 치륜(齒輪)이다. 화가 나서 떨리는 것도 치()가 떨리는 것이고 '절치부심'도 이가 있어야 박박 갈 수 있다. 무엇보다 음식을 씹는 생계 실천의 첨병이 이빨이다. 이토록 소중한 이빨이 벌레(충치)에 먹히다니! 굶주렸던 시절의 치통이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어금니 고약(치약)이나 물치약은 커녕 치분(齒紛) 치마분(齒磨粉tooth powder)이라는 가루치약도 없어 손가락으로 소금을 찍어 문지르는 게 고작이었고 이빨을 닦는 치목(齒木)이라는 것도 있었다.

 

번쩍이는 산플라티나 이빨이든 터무니없이 비싼 틀니든 임플란트든 요즘도 돈이 없으면 못한다. 일본인들이 '귀신이빨(鬼齒·오니바)'이라고 일컫는 덧니도 있는 게 낫고 가장 잔인한 말이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보고 하는 말인가. 틀니도, 임플란트도 못해 잇몸뿐인 노인을 방치한다는 건 지옥 갈 죄다. 그 일조(一助)를 맡은 게 치과에 엄청난 리베이트를 제공해 비싸게 만든 메이커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고 '식물을 심는다'는 고상한 말인 '임플란트(implant)'조차 모독한 인간들이다. <경인일보/오동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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