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짓날, 서울에서 고향친구들 모임이 있는 날이다. 아침 일찍 팥죽을 끓였다.
옆집은 식구가 많아 불에 올려놓고 끓이기만 하면 될 수 있도록 엊저녁에 미리 재료를 넘겨주었고,
혼자사시는 윗집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옘병으로 사람이 죽어나간 집에서는 팥죽을 끓이지 않는단다.
그러나 드시기는 한다기에 퍼뜩 한 그릇 퍼다 드렸다.
강가에서 혼자사시는 이사장님이 눈에 밟힌다. 눈이 녹지 않아 찻길이 뚫리지 않았다.
아린 손 호호 불며 싸박싸박 걸어서 따끈따끈한 온기를 전한 후 서울로 나갔다.
다들 귀신 붙지 않고 맘 편히 사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자주 드나들었더니 이제는 그 집 개들이 짖지 않고 마중을 한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서 운다.
오늘 식사를 한 식당에 목각예술품이 많다.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옛날부터 이날 팥죽을 쑤어 조상께 제사 지내고 대문이나 벽에 뿌려 귀신을 쫓아 새해의 무사안일을 빌던 풍습에서 남아 있는 절식이다. 동지팥죽은 새알심을 넣어 끓이는데 가족의 나이 수대로 넣어 끓이는 풍습도 있다. 그래서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이러한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지나 전래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말의 학자인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에 팥죽의 기록이 있으니, 그 이전부터 팥죽을 먹어왔을 것은 분명하다.
동지는 해가 가장 짧은 날이라 음(陰)이 극에 달한 날이어서 음성인 귀신이 성하는 날이다. 이를 물리치기 위해 상대적인 양(陽)의 기운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양을 상징하는 붉은 팥죽이 음의 기운을 물리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대인들은 붉은 색이 주술적인 위력을 지닌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태양, 불, 피 같은 붉은 색을 생명과 힘의 표식으로 삼았고 이를 숭상한 것이다. 따라서 동지는 태양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날로 여겼기 때문에 고대인들의 적색 신앙의 잔영으로 붉은 색의 팥죽을 쑤게 된 것이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붉은 팥으로 집집마다 죽을 쑤어 문에 뿌려 부적을 대신한다. 동짓날 팥죽은 조상께 제사 지내고 방, 마루, 광, 헛간, 우물, 장독대에 한 그릇씩 놓는다. 또 들고 다니며 대문이나 벽에 뿌리면 귀신을 쫓고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했기 때문에 팥죽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고도 했다.
경상도에서는 동구 밖에 서있는 신목(神木)에 금줄을 치고 팥죽을 뿌려 마을의 안일을 빌었다. 전라도에서는 새해 풍년을 점치는 데 팥죽을 썼다. 동지 외에도 여름 삼복에도 끓이며 이사하거나 새 집을 지었을 때도 팥죽을 쑤어서 잡귀를 쫓아내고 무사를 기원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도 팥죽을 쑤어 길에 뿌려 병마를 쫓았으며 초상집에 팥죽을 쑤어가 잡귀를 범접하지 못하게도 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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