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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울(개여울, 戌灘)과 강선정(降仙亭)전설

백수.白水 2013. 12. 29. 17:54

 

 

적성면 가월리에서 강 건너 백학면 노곡리를 보다.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옛 임진강틸교>

이곳은 연천군 노곡리요, 강을 건너면 파주시 가월리.

임진강 北岸에서 본 南岸의 옛 틸교자리. 왼편의 높은 다리가 비룡대교.

임진강 北岸의 옛 틸교자리에서 멀리 주월리의 육계토성을 본다.

남쪽에서 틸교를 건너와 노곡리(가여울)로 오르던 길. 길섶에서 샘물이 솟아오른다.

강바닥보다 조금 높은 걸로 보아 강물은 아닌 듯, 손을 담가보니 전혀 차갑지가 않다.

 

 

가여울·개여울·戌灘(술탄가월리(佳月里노곡리(蘆谷里)

 

 

적성에서 371번 도로를 타고 연천군 백학으로 가는 길, 적성면 가월리와 임진강건너편의 백학면 노곡리 사이에 비룡대교가 높다랗게 놓여있다. 전에는 비룡대교보다 조금아래쪽에 1950년 초 미군이 건설했던 길이 3, 너비 5규모의 임진강틸교가 있었으나 장마철만 되면 매년 침수되므로 2007년에 철거를 한 후 새 다리를 놓은 것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나룻배를 이용하거나 다리 아래쪽의 여울을 건넜다. 이 여울을 가여울 또는 개여울(戌灘)이라고 하는데, 한국전쟁 전에는 강화나 서해에서 새우젓이나 소금 배들이 올라와 머물던 포구가 있었다고 한다.

 

개여울은 개울의 여울목을 말한다.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이르는 동시에 개울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물가·바닷가를 한자로 표기할 때는 주로 (개 포)를 쓴다. 임진강가의 당포성(堂浦城)은 성 앞을 흐르는 당개를 한자로 적은 것이며, 파평면 두포리의 장포(長浦)의 본래이름은장개.

 

개울은 골짜기나 들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말하며, 강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여울이라 하고, 여울물이 턱진 곳이 여울목이다.

 

개여울은 한자로 戌灘(술탄)이다. 가여울로 변음되면서 강물에 비친 달이 너무 아름답다는 이곳의 풍광과 어우러져 가월리(佳月里)라는 동네이름을 만들어 냈고, 다시 갈여울·갈울로 옮겨지면서 무성하게 우거진 임진강변의 갈대와 연결되어 노곡리(蘆谷;갈대 골)라는 이름이 생겼다.

 

 

 

강선정(降仙亭)의 전설과 위치 

 

임진강은 맑은 물과 수 십리 이어지는 푸른 암벽이 그림같이 아름다워 고려태조가 자주 찾아 궁중악으로 선유하였던 곳이라 한다. 또한 공민왕(恭愍王) 20(1371) 3에 왕이 장단에 나가 대장군 이화(大將軍 李和)에게 명하여 공인을 시켜 연천군 주월리(舟月里) 산언덕에 정자(降仙亭)을 건립케 하고 배를 타고 상류를 오르내리며 기악(技樂)을 즐겼는데, 이때 상장군 김흥경(上將軍 金興慶)은 왕께서 손수 배를 저어 보시겠습니까하니 나는 비록 즐기기는 하나 배를 저을 줄은 모른다 하였다하며 수시로 배를 타고 여락(女樂)을 즐겼다는 절경이다<파주문화원 / 강선정(降仙亭)과 신지강(神智江)의 일화 중에서 발췌>

 

 

강선정(降仙亭)의 위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상반되는 두 가지설이 있다.

 

1. 하나는 파주문화원에서 전하는 전설처럼 강의 南岸인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舟月里)의 강 언덕위에 있었다는 설이다.

 

-. 장남면 원당리 강정나루(降亭渡)는 말뚝봉 동쪽, 임진강에 있던 나루로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의 강선정(降仙亭)으로 건너다니던 곳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에 폐쇄되었다. <연천군 장남면홈페이지>

 

-. 주월리(舟月里)는 고려 때 우왕과 공민왕이 궁녀들을 거느리고 달밤에 뱃놀이를 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자연마을로는 강정, 샛말, 성안, 원터, 함밤이 등이 있다.

강정은 한야동 서쪽 임진강변에 있는 마을로 옛날 임금이 정자를 짓고 궁녀들과 놀았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함밤이(漢夜洞)는 고려의 공민왕이 강선정이란 정자를 세우고 궁녀들과 밤을 새워 뱃노래를 부르며 강에 비친 달과 은하수에 도취되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고 전한다. <적성면 주월리 지명유래>

 

 

-. 현재 주월리에 강정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강선정(降仙亭)의 약칭인 강정(降亭)인지 아니면 강변에 있는 정자라는 강정(江亭)인지는 알 수가 없다.

 

2. 다른 하나는 강의 北岸인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가여울)의 강 언덕위에 있었다는 기록이다.

 

-.降仙亭戍灘北有降仙亭舊基石礎散在田間卽麗朝宰臣崔某別業云今無

  가여울 북쪽의 강 언덕에 강선정 옛터가 있는데, 밭으로 변한 터에는 초석과 석재가 널려 있으니 곧 고려 때 재상을 지낸 최씨의 별장이라 전해 오는 곳이나 지금 정자는 남아 있지 않다.”<여지도서 적성현지목록>

 

-. 한국전쟁 전까지도 강선정터에는 큰 느티나무 고목들이 우거져 임진강을 건너는 여행객들과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었으나 지금은 농경지로 변했다고 한다.

 

결론: 여지도서(輿地圖書)1757(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한 전국읍지다. 관찬사서(官撰史書)로 믿음이 가지만 어느 곳이 정확한지 속단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