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실선은 사미천제방과 석장천제방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둔전동(屯田洞)은 살울 동쪽에 있던 마을로 고려 때 지방에 주둔한 군대의 군량을 자급하고 관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두었던 둔전이 있던 곳이다.
사미천교는 1999년도에 준공되었다. 예전에는 나이롱다리, 범소다리, 경포교로 불리던 다리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콘크리트로 건설되었으나, 한국전쟁 중에 폭격으로 끊어져 통행이 어렵게 되자 급조하여 출렁다리를 놓았는데 이를 나이롱다리로 불렀다. 지금의 콘크리트 다리는 1999년에 준공되었고 개성과 장단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중요한 교량이다.
사미천제방, 석장천제방, 그리고 전동리 앞으로 난 372번 도로가 삼각형의 광활한 개활지를 이룬다. 내 계산으로 40여만 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저지대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잔디를 재배하고 있으며 일부 율무를 심었던 흔적도 보인다. 이 제방을 언제 쌓았는지 알 수가 없고, 제방이 없던 시절의 하천흐름도 짐작할 수 없지만, 옛날에는 저지대침수지역으로 늪지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살울 (箭洞,전동리)
전동리는 본래 살울(箭洞)이다. 箭(전)은 화살 전字로, 화살은 시(矢)∙전(箭) 또는 줄여서 살이라고도 한다.
장대부리 북쪽, 골짜기 안에 있던 마을로 삼국시대 초기 임진강 남쪽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에 있는 육계토성에 주둔하던 군사들이 강 건너 대안에 있는 이 곳에 과녁을 설치해 놓고 활을 쏘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둔전동에 주둔하던 군사들이 이 곳을 향하여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이라는 설도 전해 온다.
실제로 이 마을은 장단군과 적성현의 사이에 있어 ‘사이'의 어근인 ‘샅[間]'이 ‘골짜기'‘마을'의 뜻으로 쓰이는 ‘울'과 합쳐 ‘샅울'로 되었으나 차츰 ‘살울'로 발음되면서 한자로 ‘전동(箭洞)'으로 표기된 것이다. 그러므로 장단과 적성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이다.
※'샅’은 ‘두 다리의 사이, 두 물건의 틈’을 이르는 우리말로 ‘사이, 틈’과 같은 말이다. 옛말은 ‘삿ㅎ’이다. “좁은 골짜기의 사이,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 또는 골목 사이”가 ‘고샅’이며, '사타구니'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사태'라는 말도 원래 '샅의 고기'라 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사태고기'가 되어 나온 순수한 우리말로, 소 다리의 '샅에' 붙은 고기를 ‘사태’라 하였다.
살펴보건대 육계토성으로부터 강을 건너 살울까지는 2km쯤 된다.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그리고 살울은 장단군과 적성현의 사이(間)라기보다는 남쪽 임진강에서 북쪽을 향해 벌어진 두 다리(발)격인 사미천과 석장천 사이의 사타구니에 끼어있는 형국이라서 그러한 이름이 붙은듯하다.
이재석의 임진강기행에서는 ‘백학과 적성 사이에서 임진강은 적성 쪽으로는 현무암 석벽을 만들고 백학 쪽에서는 사미천과 석장천을 받는다. 두 하천은 임진강으로 들어오면서 하나로 합치는데 마치 화살로 임진강을 찌르듯이 진입한다. 이곳이 살여울, 전동리다. 풍부한 유량과 복잡한 지형으로 접근이 어려워 하천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곳이다. 두 하천의 합류로 유속이 느려지면서 많은 퇴적물이 쌓이고 이로써 비룡대교와 사미천 사이에서 넓은 여울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이곡진(梨谷津)과 세물머리
여지도서(輿地圖書)는 1757년(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전국 읍지(邑誌)로,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다시 고치고 그동안 달라진 내용을 싣기 위해서 편찬되었다. 적성현지 산천條를 보면 임진강에 대한 기록이 있다.
「 부연강(腐淵江)은 함경도 안변군 영풍현 방장동에서 나와 이천, 안협, 삭령을 거쳐 연천현의 서쪽에서 징파도가 되고, 마전군의 남쪽와서는 한탄강(大灘)과 합류한다. 적성현의 동쪽경계는 부연강으로 마전(麻田)소관의 나루다...」
그 다음 임진강의 상류로부터 하류로 내려오면서 강과 나루의 명칭, 현치(縣治, 적성읍내)로 부터의 방향과 거리, 위치 등을 기록했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명 縣에서 거리 위치, 비고
腐淵江 (부연강) 東 쪽 20里 썩은소
龜尾淵 (구미연) 東北쪽 9里 부연강하류, 강바닥에 월암이 있다.
神智江 (신지강) 北 쪽 5里 구미연 하류, 너비660尺, 나룻배가 있다.
戍灘 (술탄) 北 쪽 7里 신지강하류
梨谷津 (이곡진) 西 쪽 7里 술탄하류, 구미연부터 장단현 소관이다.
頭耆浦 (두기진) 西 쪽 7里 이곡진하류, 너비 660尺
如意津 (여의진) 西 쪽 20里 두기진하류, 장단소관 나루다.
나이롱다리 동쪽에 있는 넓은 벌판 즉 사미천과 석장천사이의 개활지와, 육계토성이 마주보고 있는 곳은 아우라지요 합수머리다. 그러나 그 흔한 두물머리(二水)나 아우내(倂川), 양수리(兩水)가 아니다. 세물이 아우라지는 세물(三水)머리인 것이다.
이곡진(梨谷津)은 어디일까? 이곡진은 적성면 주월리에서 장남면 원당1리를 오가던 나루였다.
사미천제방을 따라 임진강을 향해 2km를 내려갔다. 제방의 왼쪽은 삼각형개활지이며 오른쪽이 사미천이다.
골프장처럼 넓은 잔디농장. 전에 이곳에 가서 몇 차례 골프연습을 한 적이 있다.
잔디가 상할까봐 아이언은 못 잡는다. 드라이버로 때리고, 걸어가서 공을 주워 또 때리고..
사미천이 임진강을 만났다. 건너편은 적성면 주월리의 ‘육계토성’
사미천제방은 왼쪽으로 굽어 돌아 석장천제방과 연결된다.
석장리에서 백학면소재지를 지나온 석장천이 임진강으로 흘러간다.
석장천이 임진강을 만난다.
372번도로 북쪽으로 그리 깊지 않은 골짜기마다 몇 호씩 취락이 형성되어 있는 전동리
임진강에서 멀리 사미천교가 보인다.
사미천교에서 본 하천 상류
사미천교에서 본 하천 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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