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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강(神智江)

백수.白水 2013. 12. 30. 07:16

 

 

감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장현천, 배우니천, 선고개천이 율포리와 객현리의 경계지점에서 만나 37번도로 구읍교차로의 북쪽 임진강으로 흘러들어가고, 구읍리에서 흘러내려온신지게역시 같은 지점으로 들어간다. 이곳이 신지강(神智江)으로 강건너 北岸은 백학면 학곡리가 된다. 지도에 신지게로 표시되었으나 이는 신지개의 와전으로 생각된다.

 

신지강(神智江)의 전설

 

 

공민왕이 신돈(辛旽)의 비첩(婢妾) 천하일색 미모가 아름답고 절색미인으로서 예절이 특이한 반야(般若)를 가까이 하여 모니노(牟尼奴)를 낳았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신돈의 아들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는 곧 우왕(隅王)인 것이다.

고려왕조에서는 우()를 빼앗아 왕후한비(王后韓妃)의 소생으로 하고자 하니 반야는 밤에 몰래 태후궁(太后宮)으로 들어가 울부짖으며 내가 낳은 자식을 어찌 한씨를 어머니로 하시겠느냐며 항의를 하니 태후(太后)가 반야를 하옥시켜 대간(臺諫)과 순위부(巡衛府)에서 감시케 하였는데 반야는 새로 지은 중문을 가리키며 하늘이 만약 나의 원통한 것을 안다면 이문이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하였더니 잠시 후 과연 문이 무너지니 사람들은 이상히 여겼다 한다.

삼사우사 김속명(三司右使 金續命)이 탄식하며 천하에 그 아비를 분간 못하는 자는 있어도 어미를 분간 못하는 자는 듣지도 못하였다고 하였다. 드디어 이인임(李仁任)등이 반야를 신지강으로 데려가 강물에 던져 죽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또한 고려 공양왕 4(1392) 이성계(李成桂)는 조선조 개국당시 공양왕은 송도에서 역대 왕의 신주를 모시고 몰래 빠져나와 고랑포에서 돛배를 타고 상류로 도망을 가다 구미연(龜尾淵)에 이르러 배가 파산하니 신주와 배는 강물에 가라앉고 왕은 구사일생 강 언덕으로 기어 나와 원주지방으로 가다 간성에서 피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후 이곳에서 신주를 빠뜨린 강이라 하며 신지강(神智江) 또는 구미연(龜尾淵) 구연(仇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또한 연천군 미산면 구미리에는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숭의전(崇義殿)을 건립하고 국가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

 <파주문화원 / 강선정(降仙亭)과 신지강(神智江)의 일화 중에서>

 

신지강(神智江)의 일화가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따질 의도는 없다. 다만 신돈의 비첩인 반야가 빠져 죽었고 고려역대 왕들의 神主를 빠뜨렸다는 신지강(神智江), 배가 파산하여 가라앉았다는 구미연(龜尾淵)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신지개의 하류에 멀리 비룡대교가 보인다

신지개에서 상류와 하류로 길게 현무암주상절리가 이어진다. 

신지개의 현무암용암대지위에 내가 잘 아는 객현리 맹승기사장의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장현천이 흘러내리는 곳

 빙판이 쩌렁쩌렁 운다. 용갈이(龍耕)가 시작됐다. 

설원(雪原) 신지강 상류

 감안산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