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나의 이야기

오늘 나의 하루는....

백수.白水 2011. 5. 18. 16:50

 

 

젊은 시절 나는 술에 자주 취하고, 그래서 항상 잠에 취했다.

잠이 고프면 남의 눈을 피해 마른자리 찾아다니며 도둑잠을 즐겼는데...

이제 잠자는 자유만큼은 확실하게 찾았기에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아침 5시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나는 언제 어느 자리에서건 눈감고 5분 이내에 잠이 들고 

 

집사람은 서울 살 때 변비와 알레르기성 비염, 그리고 불면증으로 시달렸는데

이제 다 정상으로 돌아왔고 특히 그 어려운 잠도 잘 잔다.

잘 먹도, 잘 싸고, 잘 자니 건강을 되찾은 거 아닌가.


어제는 참깨 씨를 뿌리느라고 하루를 보냈다.

엄밀하게 따지면 뿌리는 게 아니고, 밭이랑에 구멍 뚫린 참깨용 비닐을 덮고

그 구멍에 6-7알씩 일일이 씨를 심는 작업이니 시간과의 싸움으로 매우 더디다.

아내와 같이 하면 시간이 절반밖에 걸리지 않는데 힘에 부치는지 금년부터는 슬슬 뒤로 꽁무니를 뺀다.

자기도 할일이 많다며 집안청소를 시작하는데 별 수 있나.

다른 친구들은 부인이 농촌생활 절대로 싫다 해서 귀농을 못하고 있는데

같이 내려와 적응하고 이것저것 제철에 나는 나물 뜯어 푸짐하게 상차리고

즐겁게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

 

시골 여자들 옛날 어머니들처럼 힘겹게 뙤약볕아래서 콩밭 매는 사람들 없다.

옆집 돼지농장 이사장 부인은 나이가 젊은데 고추를 같이 따자고 하면

고추 줄기를 전부 꺾어버리니 일을 시킬 수가 없단다.

돼지기르는 일도, 농사일도 혼자하고 부인은 노인병원 요양사로 일한다.

내가 5년째 농사를 짓지만 나도 고급인력인데, 따져보면 인건비도 안 나오는 적자 사업이다. 

나도 어디 공사판에 가면 8만원은 받는데 그게 편하지 어느 누가 적자나는 재래식 밭농사를 짓겠는가.

나 같이 개념 없는 사람이나 옛날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 것도 모르고 동네사람들은 나 보고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하단다.


오늘도 5시에 일어났다. 벌써 먼동이 텄고

앞산에서 뻐꾸기 두 마리가 배가 고픈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박자를 맞춰가며 운다.

돼지농장 사장이 트랙터로 골을 쳐줬는데 축산이 전문이라서 밭갈이는 영 서투르고 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별수 없는 일, 나는 4월 달에 경운기보다도 작은 관리기로 로터리 치다가

기계와 같이 도랑에 뒤로 쳐 박혔는데 등치가 큰 트랙터는 못 다룬다.

첫해부터 3년간은 옆에서 비닐하우스 농장을 하는 김사장이라는 친구가 밭갈이를 해줬는데

일은 깔끔하게 잘 하지만 사람이 인정머리가 없고 미꾸라지처럼 뺀질거리니 정나미가 떨어져 결별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어디 계산으로만 살 일인가.

서투르지만 이사장이 인간적이고 편하다.

 

서리태와 쥐눈이콩을 심고 내일 옥수수 심을 자리에 비닐을 덮었다.

옥수수는 심는 시기를 달리하여 노란 옥수수와 검정옥수수를 반반씩 나누어 심는다.

익으면 그때마다 따서 먹고, 많은 량을 쪄서 냉동보관 해 놨다가

겨울에 땅콩과 함께 간식으로 먹으면 별미,

여자들 옥수수 좋아하는데 울 마누라는 특히 좋아한다.


이제 밭에 심을 것들 2/3는 끝냈다.

6월 초쯤 흰콩과 녹두 그리고 팥을 심으면 되고,

모를 부어놓은 들깨와 조, 수수를 심으면, 심는 건 모두 끝난다.

씨 뿌려 가꾸고 거두는 일, 이게 농산데

앞으로는 잡초와 병해충과 동물과의 전쟁을 벌여야한다.


까치와 참새는 씨앗 심을 때 보고 있다가 사람이 사라지면 쫓아오는 것인지,

아니면 냄새를 맡고 오는 건지 잘도 파먹고, 고라니는 올라오는 새순을 사정없이 잘라먹는다.

웬만하면 비닐피복을 하지만 빽빽하게 올라오는 잡초를 호미로 맬 수가 없다.

우리 선배 한분 자연농법으로 농사짓는다고

양평인가 어느 산골에 들어 간지가 10년도 넘었는데 제대로 농사가 되는지?

예를 들면 산속 풀밭을 헤치고 매년 그곳에 콩을 심어 놓으면 콩이 자생력이 생겨

잡초를 이기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는 게 자연농법의 원리인데 내 생각에는 불가능한 일이나

워낙 고집이 강하신 분이니 성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먹을 것 내가 기르지만 비닐하우스 안에 심어 놓은 푸성귀만 무농약으로 재배를 하고

노지에는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린다.

친환경 유기농재배, 그거 말처럼 쉽게 되는 일 아니다.

요즘은 옛날처럼 맹독성농약이 아니고 친환경농약이니

나는 가급적 저농약으로 농사는 짓고 있을 뿐이다.

 

일은 오후 한시에 끝냈고, 점심 먹은 후 여적 낮잠 자다가 일어났다.

내일 비가 내린다더니 날이 흐리다.

마누라는 마당에서 풀매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내 블로그에 인문학관련 글들은 직장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큰놈 읽어보라고

신문을 스크랩하는 대신, 읽기 편하도록 편집해 끌어 올려놓은 글이다.

아침밥도 안 먹고 6시반에 출근했다가 저녁 9시 넘어서 퇴근하니 자기계발을 할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바쁜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배려인데 제대로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부터 끌어온 음악 틀어놓고, 나도 인문학 관련 글을 읽고,

여기저기 친구 블로그 탐색하면서 유유자적하면 된다.

몸이 근질거리면 동두천 연습장으로 후다닥 내달리면 될 일이고,

바쁜 농삿일하면서도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이리도 넉넉하니

이만하면 시골생활 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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