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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태국-라오스

[33] 종교의 이해

백수.白水 2015. 3. 19. 17:05

아리아족의 이동 

 

아리아족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첫 등장한 것은 오늘날 남러시아 일대의 초원이다.

이들은 유목민으로 푸른 눈과 갈색(금발)머리의 백인모습이었다. 이들은 세계 각지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유럽(게르만과 겔트족), 팔레스타인, 이란, 그리고 인도다.

특히 이란의 아리아족은 BC 9세기경부터 점진적으로 러시아 초원에서 남하해서 우수한 승마술로 오늘날의 이란고원에서 세력을 넓히고 페르시아라는 대제국을 이룬다. 그러나 오늘날 페르시아인들은 원주민이나 아랍인들과의 수많은 동화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 옛날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또한 인도의 아리아족은 원주민인 드라비안족을 정복하지만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그들과 피가 섞여 아리아족 고유의 모습을 많이 잃고 원주민처럼 까무잡잡한 피부와 갈색 눈을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인도인 중 상류계층에서 흰 피부, 갈색머리, 깊숙하고 푸른 눈, 높은 코 등 유럽인에 가까운 건장한 체격의 아리아족 고유의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여전히 자주 볼 수 있다.

 

현재의 인도인은 인종적으로는 북방의 아리안족()과 남방의 드라비다족()이 주류를 이룬다. 드라비다족은 옛날에는 인도 전역에 분포했으나, BC 1500년경부터 아리안족이 이란고원 방면에서 인더스강 유역과 갠지스강 유역으로 거주권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인도반도남부로 남하하게 되었다. 북방에 남아 있던 드라비다족은 아리안족과 혼혈되거나 그 사회에 동화되었다.

 

아리아족은 당연히 지배자로서 자신들을 상위에 올려놓고 피지배 민족을 그 아래에 두었다. 그러나 후에 아리아인 중에서도 사회적 기능에 따르는 구분이 생겨난다. 카스트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브라만교 (婆羅門敎,바라문교, Brahmanism)

 

브라만교는 BC 1500년 경 아리아인들이 인도 북서부로 침입하면서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노예화하거나 남부로 몰아내고, 갠지스강에 정착한 후 BC 1,000 ~ 800년 경 카스트(caste) 제도가 확립됨에 따라 브라만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된 종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명확한 체계를 갖춘 종교는 아니고, 고대의 베다(veda)사상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른 인도의 정통철학사상 · 신관(神觀) · 제례(祭禮) 등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인도의 전통적 생활방식이며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힌두교

 

본래, 혼연된 종교 문화의 복합체에 대한 편의적인 호칭으로, 명쾌한 정의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힌두교라는 말은 가끔 브라만교와 구별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의 브라만교는 불교흥기 이전에 브라만계급을 중심으로 베다성전에 의거해서 발달한 종교를 가리킨다. 한편 힌두교는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4세기에 베다문화의 틀이 붕괴해서 브라만교가 토착 민간신앙 등을 흡수해서 크게 변모한 형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양자가 완전히 별도의 것은 아니며, 넓은 의미로 힌두교라는 말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브라만 교도 안에 포함한다.

 

힌두교는 특정한 교조에 의해서 창시된 것이 아니라, 인도지역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것이다. 힌두교는 개인 개인에 의해서 의식된 신앙 체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인 관념이나 의례와 융합된 사회관습적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데 입신이나 개종에 의해서 힌두 교도가 된 것은 아니며, 힌두 교도의 자식으로서 태어나는 것이 바로 힌두 교도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런 성격은 힌두교가 불교나 그리스도교 등의 세계종교에 대해서, 유대교 등과 함께 민족종교라고 불리는 이유의 하나이다. 그러나 힌두교가 인도를 넘어서 전파된 경우도 있다.

 

힌두교는 복잡다양한 복합체로, <종교>라는 말의 의미를 일탈하고 있는데 신 또는 절대자를 보아도, 힌두교는 일원론도 일신교도, 이원론도 다신교도, 무신론도 그 중에 포함하고 있다. 한편 힌두교는 그리스도교 등이 배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포섭력을 가지며 모든 것을 흡수하여 성장한다. 따라서 힌두교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극도로 발달한 철학체계에서 그 저변에 있는 가장 원시적인 신앙이나 주술도 그 중에 수용하고 있다. 힌두교는 고도의 신학이나 윤리 체계를 포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카스트제도나 아슈라마(생활기)제도를 비롯해 인간생활의 전반을 규정하는 제도, 법제, 습속 등을 내포하고 있다.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생활법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과 같은 성격에서 유래한다.

 

힌두교의 역사; BC 2,300~ BC 1,800년을 중심으로 현재의 파키스탄의 영내에 있는 모헨조 다로와 하라파를 2대 중심지로서 인더스 문명이 번영했는데, 이 문명의 종말과 거의 동일한 무렵(BC 2,000BC 1,500) 아리아인이 서북 인도로 진입하여, 이 문명의 유적 근처, 펀자브 지방에 정착해서 BC 1,200년을 중심으로 리그 베다를 편찬했다. 그후 BC 500년경까지 주요한 베다성전이 편찬되어 브라만 계급을 정점으로 하는 브라만교의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BC 500년경에는 사회적 대변동을 배경으로 반브라만교적 자유사상가가 배출되어 불교, 자이나교가 성립했다.

 

아직 불교가 종교 사상계의 주류를 이루었던 BC 2세기 ~ 기원후 3세기경, 베다문화의 틀이 붕괴해서 브라만교가 토착의 비아리아적 민간신앙, 습속 등의 여러 요소를 흡수하고, 크게 변모하여 힌두교가 성립되었다.

힌두교는 브라만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힌두교가 형성되었다

 

철학체계의 형성과 마하바라타나 그 일부를 이루는 바가바드기타 동남아시아 일대에도 큰 영향을 미친 라마야나 또는 힌두교 법전의 기반인 마누법전 힌두교의 중핵을 이루는 성전의 성립(기원전후 이후),

종파의 성립(1~2세기 이후),

강력한 바크티 사상의 대두(600~800년 이후),

탄트리즘의 형성(800년 이후),

이슬람의 침투(13세기 이후),

영국의 지배, 그리스도교의 전파, 서양문명과의 접촉(1800년 이후) 등이다.

 

오늘날의 힌두교에서 인도전역에 걸쳐서 숭배되고 있는 신은 비슈누와 시바이다. 힌두교는 이외에 브라마신을 더한 세 개의 신격을 중추로서 발달하고 있으며, 브라마신은 우주 창조를, 비슈누신은 우주 유지를, 시바신은 우주 파괴를 임무로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힌두교에서도 전개과정에서 종파가 생겼는데, 대부분의 종파는 비슈누파와 시바파의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힌두교는 민족종교적 성격이 농후한데, 인도의 상인이나 이민과 함께 인도를 넘어서 전파되었다. 인도의 상인 등이 향료를 구해서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자바 등의 섬으로 간 것은 서력 기원의 초기라고 하는데, 오늘날 자바제도에 남아 있는 보로 부두르 등 다수의 유적은 힌두교나 불교가 혼교한 당시의 종교를 시사하고 있다. 또한 발리섬에서는 오늘날에도 힌두교가 신봉되어 수백만의 신도가 있다고 한다. 아마 4세기경부터 네팔의 카트만두 계곡에 힌두교와 불교의 혼교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현재의 네팔왕국은 힌두교를 국교로 하고 있으며 스리랑카에는 총인구의 18%를 차지하는 힌두 교도가 있는데, 그 대부분은 남인도, 타밀 나두주에서 온 이민이라고 한다.

 

 

불교

 

기원전 5세기경 인도에 나온 석가에 의해서 제창된 가르침으로, 그리스도교, 이슬람과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로 현재 스리랑카,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기원전 3세기에 전도된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퍼진 남전불교(남방불교), 팔리어 불전을 이용하는 상좌부 불교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여러 나라; 인도 북서부에서 서역(중앙 아시아)을 거쳐서 퍼진 북전불교로, 한역불전을 기본으로 하는 대승불교

티베트, 몽고 등의 내륙아시아 여러 지역; 후기에 네팔 등을 거쳐서 전해진 대승불교로,티베트어역의 불전을 이용하는 등

이들 여러 지역의 불교는 역사와 전통을 달리하고, 교의나 교단의 형태도 다양한데, 모두 교조 석가를 불타()로서 숭배하고, 그 가르침()을 듣고 선정 등의 일천수행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또한 발상지 인도에서는 13세기에 교단이 파괴되고, 네팔 등의 주변지역을 제외하고 소멸했는데, 현대에 들어와서 신불교도라고 하는 종교사회운동이 일어나서 부활했다.

 

기본적 교리; 석가가 깨달아서 사람에게 설교한 법(진리=가르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불교 교리의 기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사구로 요약된다(이를 일반적으로 사법인이라고 한다. 때로는<일체개고>를 제외해서 삼법인이라고도 한다).

이중 앞의 3구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세계의 모든 현상에 관한 진리로, 모든 현상은 무상하며 변화를 계속해서 따라서 고통을 가져온다(가령 최대의 고통으로 죽음. 죽음은 무상의 대표), 모든 현상은 모든 자아도 자기의 소유물도 아니며, 따라서 자유롭게 될 수 없다. 고뇌는 실은 자유롭게 되지 않는 것, 무상한 것을 나의 것으로 생각, 집착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무아>에 대해서 후에는 무상과 직접 결부시켜서 영원불변한 실체(=)가 없다고 해석되어, <(내용이 없는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무아설). 이론적으로는 무상이며, 무아인 것이 사물의 진실한 모습으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고뇌가 발생하게 된다(깨닫게 되면 고뇌는 없어지지만 무상이며, 무아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고뇌의 소멸이 제4구의 <열반적정>이 나타내는 바로, 열반은 구체적으로는 고뇌를 일으키는 근원인 욕망, 집착의 불꽃이 진화해서 적정, 청량한 상태로 설명된다.

 

한국불교가 전해진 것은 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나 공식적으로는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2(372)에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사자(使者)와 승() 순도(順道)를 파견하면서 불상과 경문을 보낸 데서 비롯되었다. 이어 백제 침류왕(枕流王) 1(384)에 진()나라에서 온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의 예경(禮敬)을 받았다. 신라에는 법흥왕(法興王) 15(528)에 고구려에서 전해졌다. 그러나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데 대한 설은 많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지기 이전인 미추왕(味鄒王) 2(263) , 눌지왕(訥祗王) 시대에 사문(沙門) 묵호자(墨湖子)가 고구려에서 왔다는 설 등이다.

 

인도부파불교; 불교의 교단은 석가 입멸 후 100년 정도는 통일을 유지했는데, 그후 보수적인 상층부와 진보적 개혁파 대중사이에서 대립이 생겨서 분열하고, 각각 상좌부와 대중부가 되었다.

불교사에서는 상좌, 대중 2부로의 근본분열 이후를 부파불교 시대라고 하며 이에 대해서 분열 이전을 초기 불교 또는 원시불교라고 한다.

 

중국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것은 기원 전후의 일이다. 전한의 무제가 대원의 천마를 동경해서 서방의 경략에 임한 후에, 동서문명의 교류는 갑자기 번성하였고 소위 실크로드를 개통하자 불교의 동진은 표리의 관계에 있었는데 중국민족에게 서방은 항상 신비의 보고였으며 불교에 대한 대응은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불교는 기록이나 종교적 유적유물에 의해서 알려진 역사적 불교와 오늘날 신봉되고 있는 현대불교로 나뉘어진다. 보로부두르 등의 유적을 남긴 자바의 샤이렌드라 왕조의 밀교계 대승불교는 전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자바불교는 후에 시바교(힌두교 시바파)와 혼교해서 자만 부드라고 하는 독특한 형태의 불교를 낳고, 마쟌파이트 왕조하에서 번영했는데, 이슬람이 지배층에 침투함에 따라서 쇠미하고 15세기 이후 소멸했다.

 

현대불교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남부, 인도네시아의 일부에 보이는 스리랑카계의 상좌부 불교가 중심인데, 국민 속에 차지하는 상좌부 불교도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국왕을 불교의 수호자로 하는 전통을 잃지 않고 오늘날까지 독립을 유지한 태국을 제외하면, 2차 대전 후 독립한 이들 여러 나라의 불교는 헌법에 의해서 국교(캄보디아, 라오스)나 국교에 준한 지위(미얀마)가 보장되었다.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와 함께 불교계를 이끌어온 큰 종파중 하나로써 중생구제를 목적으로 한다. 대승은 큰 수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불타는 집에 큰 수레를 끌고 들어가 많은 대중을 구제하는 큰 수레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대승불교는 원래 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보급하기 위하여 재가자(출가하지 않고 수행하는 신도)를 포함하고자 하여 불교계의 진보적인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시도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당시의 불교계와는 다르다는 의미로 기존의 불교계를 작게 본다는 의미에서 소승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불교운동은 석가모니에게만 한정하던 보살의 개념을 넓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모든 중생을 보살로 보고, 자기만의 해탈보다는 남을 보살피는 보살의 역할을 그 이상이념으로 삼고, 광범위한 포교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불교에서 이상적인 삶의 목적이 소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이라고 하여 깨달음을 얻은 성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을 이기적 모습이라 규정하고 보살이 되는 것이 이상적 삶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발달한 개혁의 노력으로 발생한 대승불교는 한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가 몽골·티베트·한국·일본 등 이른바 북방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동북아시아에 전래된 대승불교인 것이다.

 

소승불교는 작은 수레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이다. 소승불교는 대승에 대비되는 말로 보수적 정통 불교를 주장하던 학파를 말한다.

소승이라는 말은 원래 대승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이름이다. 대승 불교도들은 기존의 보수적 성격을 지닌 소승불교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진리 추구나 중생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노력들이 기존의 불교보다 우월하다고 보고 기존 불교를 폄하하는 의미에서 소승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소승불교는 수행자 자신의 모습을 살펴 각자의 정신세계에만 몰입하고 사회와는 분리된 엄격한 수행을 강조하고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개인 해탈을 강조하게 된다. 이렇게 해탈의 수행 과정을 통해 얻어진 이상적 존재를 아라한 또는 나한이라고 하였고, 스스로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소승불교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석가모니때 발달했던 원시 불교와 아소카왕이 불교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했을 때의 불교를 통틀어 소승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경 불교계의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 대승불교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소승불교는 대승불교의 도전을 받게 된다. 소승불교는 주로 동남 아시아 지역으로 보급되어, 스리랑카, 타이, 베트남, 라오스 등지로 보급되어 이를 남방불교라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