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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태국-라오스

[67]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 / 방콕 왕궁

백수.白水 2015. 4. 12. 17:09

 

2015.02.25(수)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

 

 

방콕 왕궁 내에 자리한 왓 프라깨우는 국왕의 제사를 치르는 왕실 수호사원이다. 방콕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꼽힌다. 본당에 안치된 에메랄드 불상으로 유명해 에메랄드 사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왓 프라깨우는 여느 사원과 달리 승려가 사는 승당이 없고, 잘 치장된 법당 건축물과 부처상, 불탑만 존재한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개가 있으며, 중앙 문으로는 왕과 왕비만이 출입할 수 있다. 크기는 다른 문보다는 작지만, 타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상징적 절차이다.

 

사원의 건축은 1785년 라마 1세가 톤부리에서 방콕으로 천도를 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왓 프라깨오의 원래 이름은 왓 빠이아(Wat Pa Yia)로 대나무숲 사원이라는 뜻인데 옛이름 그대로 사원 구석구석 대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중앙의 대웅전은 '우보솟'(ubosoth)이라고 하며,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으로 꼽히는 에메랄드 불상을 볼 수 있다. 높이 약 66cm, 48.3cm 크기로 녹색 옥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부좌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불상은 1434년 태국 북부의 치앙라이에 있는 사원의 부서진 탑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 후 치앙마이, 라오스에 보관되었다가 1778년 라오스 비엔티안을 정복한 라마 1세가 방콕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태국인들은 이 에메랄드 불상을 국왕의 수호신으로 여긴다. 1년에 세 번, 태국 국왕이 직접 불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을 진행한다. 에메랄드 불상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며 태국인들도 매우 경건하게 기도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경내에서 최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1.先朝 藏佛閣(선조 장불각) 2.本朝 藏佛閣(본조 장불각) 3.프라씨 랏타나 쩨디  4.金剛佛殿(금강불전) 5.尖頂佛塔(첨정불탑6.앙코르와트 모형  7.프라몬돕,도서관  8.王室法藏殿(왕실법장전) 9.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 10.대법전(대웅전11.香王觀音閣(향왕관음각) 12.종루(鐘樓)

 

 

외국인 특히 중국인단체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입구에서부터 인산인해(人山人海)

 

 

뱀 꼬리처럼 긴 행렬이 말 그대로 장사진(長蛇陣)을 이룬다.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

 

 

우보솟 주변의 가루다와 나가

 

 

 

 대웅전(大雄殿)

 

사원 내부 <웹에서 캡처>

 

에메랄드 불상 <웹에서 캡처>

 

파란만장한 에메랄드 불상, Phra Kaew(프라 깨우)流轉

 

 

태국 최고의 보물인 에메랄드불상은 폭 48.3cm, 높이(옥좌포함) 66cm의 좌불상(座佛像)으로 본래 초록빛 불상이다. 불상을 처음 본 승려가 잘못알고 에메랄드불상이라 부르게 된 것이 그만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 불상은 처음 인도의 승려 가가세나(Nagasena, 那先)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불상은 당시 인도에서 발생된 내전을 피해 실론(지금의 스리랑카)로 옮겨진다.

 

 

그후 11세기에 이르러 버마를 통일한 바간(Bagan)왕국의 아누릇(1,0441,077)왕이 상좌부(上座部)불교 즉 소승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스리랑카에 프라깨우(Phra Kaew)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불상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풍랑을 만나 잃어버리게 된다.

 

 

그 후 불상은 엉뚱하게도 캄보디아의 바닷가에 있는 한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범상치 않은 이 불상은 자신들의 제후에게 바쳐졌고, 캄보디아 왕은 이 불상을 당시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던 타이족의 아유타야왕국(1,3501,767)에 선물로 바친다. 왕은 이 불상을 아유타야 왕국 캄펭펫(Khamphaengphet)왓 프라께오(Wat Prakeo)’ 사원에 봉안하였다.

 

 

그러나 이 불상은 아유타야가 버마의 침공을 받으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사라졌던 불상은 거의 100여년이 지난 1,434년 어느 날, 치앙쎈의 폭풍우로 씻겨 내려간 흙더미 속에서 [ 일설에는 치앙라이의 왓 프라깨우(원래 이름은 대나무사원이라는 뜻의 왓 빠이야였다.)에 있는 쩨디가 번개를 맞아 파괴되면서] 스투코(stucco, 하얀 회벽)로 덧칠해진 채 긴긴 잠에서 깨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석고가 벗겨지고 이 드러나자, 전설속의 에메랄드불상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이후의 행로는 역사기록으로 남아있다. 불상은 치안센에서 당시 란나왕국의 첫 수도였던 치앙라이(Chiang Rai)로 옮겨졌다.

 

 

란나왕국(1,2591,558)의 삼팡켄(Samfangkaen) 왕은 이 불상을 수도인 치앙마이로 옮기고자 코끼리를 세 번이나 보냈으나, 코끼리가 매번 치앙마이가 아닌 람팡으로 람팡으로 방향을 잡자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1,436년 람팡에 있는 왓 프라깨오 돈타오(Wat Phra Kaew Dontao)에 모셨다. (이 불상은 1436년부터 1468년까지 32년간 이곳에 모셔졌다)

 

 

이 불상은 1468, 다시 란나왕국의 강력한 왕 틸로캇(Tilokat)에 의해 왕국의 수도인 치앙마이로 옮겨져 왓 쩨디 루앙의 쩨디 동쪽 벽감(壁龕)에 보관되면서 치앙마이왕국의 수호상이 되었다. (1,4681,551년까지 83년 동안 보관 됨)

 

 

83년 동안 란나왕국을 지키던 타이민족의 수호상, 에메랄드불상은 1,552년에 타이민족의 손을 떠나 라오족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의 정세를 보면, 태국중북부지역은 란나왕국, 라오 지역은 란쌍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란나왕국의 공주와 란쌍왕국의 왕자 포티싸랏(Potthisarat)이 결혼하면서 15451548년까지 두 나라는 연합 상태를 이루게 된다.

 

그러던 중 1551년에 란나왕국의 틸로캇(Tilokat) 왕은 아들이 없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란나왕국의 공주와 란쌍왕국의 왕자인 포티싸랏(Potthisarat) 사이에는 유일하게 한 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Lao의 셋타티랏(Setthatirat) 왕이다. 란나 왕국의 각료들은 왕자를 치앙마이의 왕자로 불러들였다. 셋타티랏 왕자는 틸로캇 왕을 이어서 란나 왕국의 왕위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의 나이 15세 때의 일이다.

 

 

 

1,552, 셋타티랏의 아버지인 란쌍왕국의 포티싸랏 왕이 죽자 셋타티랏은 란쌍왕국으로 돌아갔고 푸라깨우 불상도 왕국의 수도인 루앙푸라방으로 옮겨버렸다. 불상을 가지고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났으나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불상도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불상은 이때부터 무려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타이족의 손을 떠나 라오족들의 수호상으로 추앙받으며 라오스에서 보관된 것이다.

 

 

1,563년 버마가 라오스를 침공하자 라오의 셋타티랏왕은 비엔티안에 Wat Phra Kaew(왓 파 깨우)를 짓고, 1,565년 이곳에 에메랄드불상을 봉안했다. 지금의 라오스 프라깨우는 사원이 아니라 법당만 남아있기 때문에 호 프라깨우(Ho Phra Kaew, 호 파깨우)로 불리며, 라오스에서 영문표기는 Phra Kaew 또는 Phra Keo를 혼용하고 파께우로 발음하기도 한다.

 

 

타이족의 톤부리왕국(1,7671,782) 탁신왕은 버마를 내쫒아 아유타야의 옛 땅을 회복하고, 크메르지역과 라오지역까지 세를 넓혔다.

 

 

1779년 탁신왕은 라오의 위앙짠(지금의 비엔티엔)을 공격하여 파깨우(Pha Kaew)사원에 보관 중이던 프라께우(Phra Kaeu, 에메랄드불상)와 라오족의 보물인 황금불상 파방(Phabang)을 빼앗아 톤부리에 있는 왓 아룬(새벽사원)에 보관하게 된다.

 

 

그후 톤부리왕조 다음에 일어난 차끄리 왕조의 라마1세는 1784년에 왕실사원인 왓 프라께우를 건설하고 프라께우를 이곳으로 옮겨 지금까지 태국최고의 보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라오족의 보물인 파방은 1867년 라오스에 반환되어 1975년부터 루앙프라방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프라씨 랏따나 쩨디(Phra Sri Ratana Chedi)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황금 탑, 프라씨 랏따나 쩨디(Phra Sri Ratana Chedi)

  라마 4세 때 스리랑카 양식으로 지은 둥근 탑으로 부처의 가슴뼈가 안치되었다고 전해진다.

 

프라 몬돕라마 1

세 때 지어진 도서관, 프라 몬돕.

 

 

프라 몬돕.

 

앙코르 왓 모형

 

 

라마 3세가 덧댄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왓 모형.

 

 

이것은 타이가 앙코르와 문화적, 종교적 기원을 함께 공유하고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옥수수 모양 탑이 인상적인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

 

쁘라쌋 프라 텝 비돈

(Prasat Phra Thep Bidon)

 

 

 

 

 

 

 

 

 

 

 

 

 

 

킨나라, 반인반조의 전설의 캐릭터

 

 

 

 

 

 

 

 

 

 

 

 

회랑의 벽화

 

 

회랑 벽면에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태국 화풍으로 묘사한 178개의 벽화

 

 

라마 3세 때 제작된 것으로 지금까지 복원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