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우리말..
우리말과 똑같은 멕시코 아즈텍 제국 언어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들은 민족관이 소심한 편이다. 환국(桓國)이니 환웅, 대쥬신제국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이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일제침략기에 '단군신화'로 비하시킨 교육탓인가 보다.
오래전 부터 보았고 아는 이 지도가 좀 황당스럽다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학자들 보다는 외국학자들에 의해
우리 말, 우리 언어에 대한 연구로 우리민족의 이동 경로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인도말과 한국말
드라비다인은 유럽 아리아족의 침입 때(기원전 15세기) 인도 남부로 쫓겨난 토착민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드라비다인의 언어(타밀어) 가운데 한국어와 유사한 단어가 400~1300개나 된다고 한다.
쌀은 sal, 벼는 biya, 밥은 bab, 풀(草)은 pul, 씨(種)는 pci, 알(粒)은 ari, 가래(농기구)는 kalai,
사래(밭고랑)는 salai, 모(茅)는 mol이라 한단다.
볍씨를 ‘아리씨’라 하는 것도 흥미롭다. 아빠와 엄마(암마), 언니(안니)의 경우도 거의 같은 발음이고,
궁디(엉덩이), 메티(메뚜기) 등의 명칭도 심상치 않단다. <생략>
http://www.ok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61
배재대학교 손성태 교수가 밝힌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멕시코를 정복하고 나서 스페인 신부들이 기록한 내용의 일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기려(tacuilo) : 화가
다마틴니(tamatini) : 다 맞히는 사람, 즉 점쟁이나 예언가
다도안이(tatoani) : 다 도와주는 이 (왕)
다차고(tachaco) : 공놀이
태백(tepec) : 산
다치활태백(tachihualtepec) : 손으로 지은 산 (피라미드)
다조타(tazota) : 다 좋다
나 그 다조타(na c tazota) :나 그것이 다 좋다
내집(nechib) : 내집
다메메(tameme): 지게꾼
아시키(ashkii) : 아이
콘앳/콘엑(conet/konek) : 큰 아이
팜 약이 있다 (pam nahi-ta) : 약이 있다.
읽으면 곧바로 우리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글자를 서양의 학자들은 수 백년간 밝혀내지 못했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언어를 상용했던 민족이 아즈텍과 잉카인들입니다.
주어와 목적어 뒤에 조사가 오는 교착어이며 어순이 완전 같고 발음도 같습니다.
언어의 어순이라는 것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스페인 신부가 "당신들이 무슨 언어를 상용하는가?"라는 질문의 의미를 몰라
그저 "나와 다들이"(우리 모두가)라고 했다. 이것을 '나와다들이어'어라 기록했고
'나와틀어' 또는 '나와어'가 되었습니다.
(교착어 : 한글, 일본어, 몽골어, 만주어, 아즈텍인들의 나와틀어, 케추아어, 쇄기문자)
남아 있는 많은 흔적 중에 윷놀이도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멕시코 윷놀이인데 북미에도 윷놀이가 남아있습니다.
놀이에서 내 말이 먼저 나오면 '조우타(zouta)'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전세계에 퍼져있는 윷놀이의 원형은 한국이라고 밝히는 미국의 민속학자도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지게를 사용하는 민족입니다. 북미와 멕시코 인디언들도 지게를 사용했습니다.
지게는 중국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우리 민족만이 사용했습니다.
아래 그림은 멕시코 사람들의 지게 사용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또 아이가 태어나면 점을 보았다고 합니다.
히이보왈리(Hiuhpoualli)와 토날보왈리(tonalpohualli)는 두 개의 책으로 점을 쳤습니다.
히이보왈리는 '해를 보아서'이고 토날보왈리는 '신성한 날을 보아서'라는 우리말입니다.
점쟁이의 입 앞에 갈고리 같은 모양은 말을 한다는 의미로 천마총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여성의 의상은 한복에 거의 가깝고 머리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머리와 같습니다.
금줄 문화와 굿을 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나쁜기운이 들어오기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금줄을 쳤습니다.
굿을 하는 신성한 장소에도 금줄을 쳤습니다.
스페인 신부의 기록에 둥근 금줄과 줄형 금줄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래 오른쪽 그림은 금줄 밑에서 굿을 하는 장면입니다.
원주민 무당들이 중요한 의식을 굿(GU)이라고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이들이 하였던 '다다살리'라는 풍습은 우리네 고수레와 같습니다.
음식을 먹기전에, (불을 발견해서) 음식을 익혀 먹게 했던 '고수레'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요즘도 '고수레'를 하는 어른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공기놀이가 남아 있고..
우리와 똑 같은 팽이치기 놀이가 있습니다.
사냥할 때와 전쟁에 사용했다는 나무에 흑요석을 붙여 만든 몽둥이를 "막까기틀(막 까는 틀)"이라 했습니다.
여성들의 머리는 가체를 했는데 천을 사용해서 묶기도 했고 의복은 조선시대 여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아즈텍 귀부인들은 우리 한복과 같이 화려한 의상을 입었습니다.
여인들은 비녀를 사용했고 사람이 죽으면 곡을 했습니다.
왼쪽은 한복입은 우리 여인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아즈텍 여인들이다.
남자들의 의상은 불과 100년전(지금도 가끔씩 보지만) 우리의 옛날 모습과 다를바 없습니다.
아래 좌측은 17세기 아즈텍인들의 의상이며 오른쪽은 19세기 우리 민족의 모습니다.
'당신들은 어디서 왔소'라는 질문에 '아스땅'에서 왔다고 했다.
기록엔 아스탄(astlan)으로 되어 있는데 아사달에서 왔다는 말이다.
아사달을 단군조선의 수도였던 곳으로 '밝은 땅'이란 의미이다.
500년전 멕시코 문헌에도 '아스'는 '하얀'이라는 뜻이다.
아사달의 본래 발음은 '아스다'이다.
서정범 교수님의 <한국어원사전>에
우리말의 땅은 원래 '닫>달>다>를 거쳐 >땅"으로 변천 되었다고 나와 있다.
아스다는 아스탕이고 이것이 아즈텍(Aztec)의 기원이다.
BC10~AD10 사이에 꾸준히 넘어 왔는데 820년 경에 크게 넘어 갔다고 한다.
'당신들은 어떤 민족이냐"라는 질문에 "우리들은 '고리족'과 '맥이족'"이다 라고했다.
고리족이 먼저 왔고 멕이족이 나중에 왔다.
고리족은 만주와 아무르 강에 살던 사람들이고 맥이족인 맥족 또는 예맥족은 요동에 살던 사람들이다.
수천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던 우리민족이 만주에서 멕시코와 남미로 넘어갔으니
중남미에 피라미드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멕시코(Mexico)라는 나라 이름을 현지인들은 메히코이라 발음한다.
본래 <맥이족이 사는 땅>이란 의미의 맥이곳이다.
나중에 맥이곳을 영어로 표기해서 멕시코가 되었다.
맥이족이 넘어올 때 '하늘이 여러번 갈라지는 곳'으로 넘어 왔다고 한다.
즉 알류산 열도를 넘어 갔는데 최근에 알류산 열도에서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온돌이 발견 되었고 멕시코에서도 온돌 문화가 발견되었다.
(한민족이 만든 세계 최고의 발명품 중엔 온돌, 금속활자, 한글, 나침반 등이 있다.)
이동 경로상에 있는 북미 인디언들 언어와 남미 인디언들 언어도 같음을 밝히게 되었다.
(아래 지도 : 최근에 상생출판사에서 나온 환단고기가 밝히고 있는 우리 민족이 이동경로.
언어와 문화를 통해서 또는 천연두 유전자를 추적하는 서양 의학자들에 의해서도
아래와 같은 이동 경로였음을 밝히고 있다.)
멕시코 시티 (해발 2,240미터) 중심은 스페인이 정복하기 이전에는 호수였습니다.
멕시코 중앙 고원에 자리한 곳으로 주변은 3천에서 5천미터가 넘는 산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호수에 떠있던 작은 섬은 아즈텍의 수도였던 '테노티치틀란'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가 인구 5만 이었을 때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30만 이었다.
멕시코 정복자 '코르테스'는 스페인 국왕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 했다.
"사방 어떤 곳에서 부터 섬에 가더라도 2레구리아(약11킬로미터) 입니다.
세비야나 코르도바처럼 크며 주요도로는 아주 넓고 곧습니다.
도시엔 광장이 많은데 시장이 계속 열려 상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살라망카시의 2배 되는 대규모 광장도
있습니다. 매일 6만여명이 모여 사고 팝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원과 우상을 안치한 신전들이 많습니다.
대단히 높고 아름다운 탑이 40개 정도 있으며, 가장 높은 탑의 꼭대기까지 50단이나 됩니다.
세비야의 대성당의 탑보다 훨씬 높습니다.”
아즈텍 인들은 신전을 지을 때 꼭대기엔 반드시 두 개의 첨탑을 두었다고 한다.
하늘의 신과 땅의 신에게 제사는 지내던 곳이라 추정하고 있어서 우리의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같은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아즈텍 제국을 세울 때 9명의 부족장이 모여서 회의 하는 모습이다.
모두 상투를 틀고 있는데 상투역시 우리민족만이 하던 풍습이다.
오른쪽 그림에서 상투가 이니면서 머리에 피가 묻은 사람은 무당이다.
오래전 굿을 하기전 무당은 닭피를 뿌렸다고 한다. 멕시코에선 새의 피를 뿌렸다.
가운데 독수리는 아즈텍이 수도 갈 될 섬에 있는 선인장에 앉은 모습이다.
족장들은 독수리가 앉은 자리를 신성한 곳으로 여겨 중심으로 삼았다.
지금도 멕시코 국기 가운데 독수리가 있다.
전사의 그림에 상투를 튼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다른 부족과 싸울 때 그림으로 상투를 튼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확연히 구별된다.
인구 2천만이 사는 지금 멕시코의 모습니다.
코르테스가 정복한 이후에 스페인 사람들이 호수를 없애 버렸다.
손성태 교수의 강의 내용 동영상과 수많은 블로그와 뉴스에서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가져온 곳 : http://thruguide.tistory.com/m/post/212
스페인어를 전공한 언어학자인 손성태(배재대학교 중남미학과) 교수가 아메리카의 고대 ‘아스텍 문명’을
건설한 주체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언어학적, 풍습, 유물, 신앙, 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연구하고 추적해
놓은 저서 ‘우리민족의 대이동’을 펴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민족이다(멕시코편)’이란 부제를 단 이 연구서는 손교수 필생의 작업의 결산물로
그의 첫 저서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래서 언어학자인 그가 한국고대사학회 등 정통 사학자들에게 공개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의를 다는 정통사학자에겐 공개토론을 하자고 했다.
멕시코에서는 9월 25 26일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 그를 특강강사로 초대했다.
손 교수는 우리 민족의 이동이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 왔음을 구체화하는 멕시코쪽 자료를 연구 발표해
그간 언론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는 이책에서 아스텍(Aztec, 스페인어) 문명은 발해의 유민이 건설했다는 것과 그들의 이동보다 앞서
고리족이 멕시코에 이주했음을 밝혔다. 또한 아스텍인의 언어 나와들어(語, 나와들=우리들)에 있는
우리말의 흔적을 추적해 놓았다.
그는 고조선이 세워진 ‘아사달’(阿斯達)과 아스텍인들의 선조가 유입됐다는 왔다는 ‘아스단’을 주목한다.
아사달을 중국어로 읽으면‘아스다’이며 아스단’은 바로 ‘아스다’라는 것이다.(서정범의《국어어원사전》에
보면 우리말의 ‘땅’은 원래 ‘닫 > 달 > 다 > > > 땅’으로 변천되었다고 하는데 ‘다’나 ‘단’은 모두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스텍에서도‘아스단’의‘단’이 ‘땅’을 의미한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
또한 500여년 전에 기록된 멕시코 문헌에 ‘아스’는 ‘하얀’이란 뜻이다. 결국 아사달, 아스다, 아스단은 모두
‘하얀 땅, 하얀 흙’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풍습 가운데, 장례 때에 하얀 흑, 회(灰)를 관 위에나
사체 위에 뿌려주는 풍습과 관련이 있으며, 흰 옷을 입게 된 풍습, 즉 백의민족으로서의 풍습과도 관련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스텍인들도 장례식 때에 사체 위에 흰 흙을 뿌렸고, 흰 옷을 즐겨 입어서 백의민족
이라고 불렸다. 즉 ‘아즈텍Aztec’도 ‘아스단’에서 나온 말이로 ‘아스단’에서 비롯된 영어 단어라는 것이다.
그는 “발해인들이 바다를 건너 아메리카로 와서 멕시코에 아스텍제국을 세우고 살 때까지 어떻게 고조선의
옛 지명을 그대로 기억했을까”하는데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것이 유목민의 특징이라고 해석한다.
유목민은 자기들에게 소중한 지명은 반드시 간직하고 다닌다. 항상 떠돌이 생활을 하니까 그마저 잃어버리면
자기의 근원지를 모르기 때문에, 유목민들은 자기 민족에게 중요한 지명은 신앙처럼 가슴에 묻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스텍 역사에 보면, 아스텍인들의 조상이 820년경에 그들이 살고 있던 ‘아스단’을 떠나 북쪽으로 이동해서
옛 부여가 있던 땅을 거쳐 알류산 열도를 타고 베링해를 건너 결국엔 멕시코까지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820년경이면 발해의 최절정기이다. 물론 아스텍 역사에 발해란 명칭은 안 나온다.
그 당시 백성들은 국가보다는, 자기들을 이끌어주는 무(巫)다. 당(제사장)들에게 큰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백성들 가까이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무당, 이들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본다. 아스텍 기록에
의하면 그 무당들이 백성들을 규합해서 데리고 떠났다고 한다.
발해는, 고구려가 망한 후 대조영이 요동과 만주, 두만강 유역 그리고 연해주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역에
세운 국가이다. 인적 구성은 고구려 땅에 살던 옛 고조선의 후예, 고구려인, 부여의 후예, 그리고 말갈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말갈족도 우리 선조들의 일부이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때가 7세기이고, 발해를 건국한
장소가 지금의 요동, 곧 고조선의 아사달(=아스다) 지역이다. 그리고 그들이 발해를 떠나 아메리카로 건너온
시기가 대략 10세기 전후로 추정되고, 스페인이 아스텍제국을 발견하여 그들의 원래 조상이 ‘아스단’에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은 1500년대 초이다.
이외에도 그는 언어학자로서의 지식을 살려 민속놀이 풍습, 천문지식, 신앙 등과 연계시켜 ‘아스텍 문명’을
건설한 주체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멕시코쪽 기록에 기원후 49, 50년부터 ‘콜와’라는 민족이 멕시코에 도착하기 시작하여 670년 경에는
대규모로 이동해 왔다고 나와 있다. ‘콜와’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이들은 멕시코에 도착한 이후 다섯 집단으로
나뉘어 한 집단만 지금의 멕시코시티 지역에 남고, 나머지는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남쪽으로 향한 집단은 중미 지역을 지나 남미로 내려갔다고 본다. 남미 잉카제국의 언어에 다양한 우리말
흔적이 나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아스텍인들을 맞이한 이들은 바로 멕시코시티에 그냥 남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이끈 지도자가 ‘케찰코아들’이라 불리던 무당이었다.
케찰코아들은 우리민족의 ‘용’(龍)이다. 즉 용을 신으로 모시던 무당이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기록에 의하면, ‘콜와’의 어원인 ‘고리’라는 말은 ‘둥글게 휘어진 물건’이외에 ‘나직하고 봉우리가
둥근 산’과 그리고 ‘할아버지’를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도 이런 산을 고리라고 했다. 충청도 옥천군에
환산(環山)이 있는데, 그 옛 이름이 고리산이라 한다. 또 ‘고리타분하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구세대란 뜻을
갖고 있다. 할아버지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의 ‘고리’와 멕시코의 ‘콜와’족을 가리키는 ‘고리’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멕시코Mexico’는 ‘맥이가 사는 곳’이란 뜻으로 풀이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예맥족 또는 맥족으로
불리어 왔다. 5세기경 기록된《후한서》에 보면 우리민족을 ‘맥이’라고 불렀다(신용하 교수힘). 동이(東夷)의
이(夷)자까지 붙여서 맥이(貊夷)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발해인들이 820년경에 요동을 출발했으니,
5세기 이후의 명칭인 ‘맥이’를 사용한 것도 역사적 흐름상 맞다고 한다.
아스텍인들은 그들 제국의 수도를‘맥이곳’이라 불렀는데 자신들을 가리키는 ‘맥이족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와서 그 명칭을 듣고 스페인어로 ‘Mexico’라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스페인어
발음 원칙으로는‘멕시꼬’로 읽어야 하지만, 아스텍인들이 ‘맥이곳’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명칭에 따라서
‘멕이고’라고 발음한다. 오늘날에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멕시코를 ‘멕이꼬’라 부른다며
스페인어 언어학자다운 분석을 하기도 한다.
손교수는 이러한 언어학적 분석과 역사적 문헌을 통해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바로 우리 선조들이 3세기에서 10세기에 사이에 건너간 우리민족의
후예들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이 책에서 밝혔다. 앞으로 우리민족의 역사는 다시 써야 하게 되었고,
세계사와 인류사도 다시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가 제안한 공개검증과 공개토론이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다.
'고구려'시기만 해도 우리의 영토와 세력권은 이렇게 넓었습니다.
우리민족 환국, 고조선 사람의 수는 상대적으로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놀이와 기구, 언어, 등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 민족이 인도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명칭이 잘못되어 몽고반점이라 부르는 우리민족 엉덩이의 푸른점도 몽고반점이 아니라 한국반점입니다.
조선반점, 혹은 고려반점으로 불러야 합니다.
지금은 작은 반도의 땅에 갇혀 그것도 이념으로 반을 나누어 살지만..
중국, 미국, 일본에 기 죽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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