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7(일)
남-북으로 뻗어 내린 가야산맥(伽倻山脈)의 여러 봉우리 중 원효봉-가야봉-석문봉-옥양봉-서원산을 연결하면 동남방향인 덕산시내를 향해 앞이 벌어진 삼태기모양이다.
깔때기에 물이 모이듯 동남쪽사면의 여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상가리마을회관 옆의 계곡에서 하나로 모여 지금의 덕산천(德山川)이 된다. 덕산천은 옥계저수지에 모였다가 삽교천을 만나고 삽교호–아산만을 거치며 서해로 들어간다.
옛적 가야산곡(伽耶山谷)을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헌에 가야구곡(伽耶九曲)이 전해진다. 가야구곡 중 2곡인 옥병계(玉屛溪)와 4곡인 석문담(石門潭)을 둘러봤다.
대원군이 상가리에 있는 가야사 터에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쓸 때, 우선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임시로 탑 뒤 산기슭으로 옮겼다하는데 그 땅은 영조 때 판서를 지낸 윤봉구의 사패지로 그 후손에게서 자리를 빌려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보아 윤용구 선생이 이곳에 살던 시절 가야산일대에 많은 땅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냇가에 제방을 쌓았고 암벽까지 흙을 채워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글씨를 새긴 부분이 메워질 듯 아슬아슬하며 옛 시절의 모습은 많이 훼손되었다. 옛날에는 바위 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하며, 덕산현의 관기가 바위 위 강당에서 놀다가 실수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기암(妓巖)으로도 불린다. 지금은 언덕 위에 고풍스런 기와집이 보인다.
玉屛溪(옥병계)는 옥 병풍이 있는 시내라는 말로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의미가 큰 암각문이 아닐 수 없다.
바위를 보면서 포천 창수면 오가리 영평천의‘푸른 옥 병풍’ 蒼玉屛(창옥병) 암벽을 생각했다.
그곳에서는 이런 색깔의 암벽을 두고 창옥병이라 했다.
청송 성수침(1493∼1564)의 글 水哉臺(수재대), 물에 의해 만들어진 대(높직한 평지)라는 뜻
김진규(1658∼1716)선생이 새긴 玉屛溪(옥병계)
어느 누구의 글인지...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의 글 洗耳嵒(세이암)
석문담(石門潭)
18세기 이전까지 내포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어낸 역량이 가야산에 숨겨져 있다.
충청도 가야산 가야구곡은 송시열과 내포지역의 윤봉구와 한원진 등 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모여 사람과 짐승의 본성이 다르다는 인물성이론을 꿈꾸며, 조선을 성리학으로 집대성해 유교국가로 설계하자고 논의한 곳이다.
또 가야산에 살던 병계 윤봉구는 옥양봉과 석문봉에 이르는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9곳을 가야구곡이라 명명했다. 그중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수려한 석문담에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 따서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에 정진하던 공간으로 윤봉구가 가야산을 중심으로 내포지역에 유학이 뿌리내렸다.
이처럼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는 충청도 선비들의 문화공간으로 내포지역의 선비치고 가야구곡을 다녀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울러 병계 윤봉구가 가야산에서 산천경계가 좋은 가야동을 차지하고 주인 노릇을 하자 강문팔학사는 물론이고 그 외에 많은 사우들이 가야동을 찾아와 시문을 남겨놓았다.
죽천(竹泉) 김진규(1658~1716) 대제학을 지낸 포암(圃菴) 윤봉조(1680~1781), 운평(雲坪) 송능상(1710~1758),죽하(竹下) 김익(1723~1790), 월곡(月谷) 오원(1700~1740)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1820~1898) 운양(雲養) 김윤식(1835~1922) 등이 그들이다.
<출처: 굿모닝충청 이기웅 예산시민기자>
죽천 김진규(1658∼1716)선생의 글, 石門潭(석문담). 우암 송시열의 醉石(취석)은 다음에 다시 찾아봐야겠다.
伽倻九曲(가야구곡)
가야구곡(伽耶九曲)은 영조 때 판서를 지낸 병계 윤봉구(屛溪 尹鳳九, 1681∼1767)선생이 가야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아홉 곳을 가야구곡이라 칭하고 그의 문집에 기록해 놓음으로써 유명해졌다.
구곡의 명칭 가운데 옥병계, 석문담, 와룡담은 일찍이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1658~1716)가 명명하고 손수 팔분체(八分體)로 써서 암석 표면에 새겨둔 일이 있었고, 나머지 육곡은 병계가 그 아우인 석문 윤봉오(石門 尹鳳五,1688~1769)와 함께 옥계(玉溪) 아래 복거(卜居)한 후에 명명한 것이다.
伽倻九曲 序曲 [屛溪 尹鳳九]
伽倻秀氣炳三靈(가야수기병삼령) 가야산 수려한 기운 삼령(해 달 별)처럼 빛나는데
一道巖泉九曲淸(일도암천구곡청) 한줄기 바위에서 솟아오른 샘물이 아홉 굽이 맑아라.
鬼護神呵千載秘(귀호신가천재비) 귀신이 보살펴 천 년을 감췄는데
淙然和我膝琴聲(종연화아슬금성) 물소리 내 무릎 위 거문고소리와 어울리네.
1곡 觀魚臺 在谷口淸風山之西 [관어대는 골짜기입구의 청풍산 서쪽에 있다.]
관어대는 덕산시내에서 남연군묘 방향의 옥계저수지내에 수몰되어 볼 수는 없는데 옥계의 물이 한 곳에 모이는 곳으로 넓은 개울이 형성이 되어 작은 배가 있었고 낚시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고 함.
2곡 玉屛溪 在壽星峯之北 [옥병계는 수성봉 북쪽에 있다.]
옥병계는 옥계저수지 상류의 가야교 옆에 위치하며, 옥병계를 중심으로 도로를 내고 둑을 쌓아 위의 글씨 등이 아슬아슬 하게 견디고 있다. 가야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크게 휘돌아 소를 이루고, 큰 절벽이 있으며 그 위에 강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덕산현의 관기가 강당에서 실수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기암이다.
3곡 濕雲川 玉屛溪向上少北 小澗之自東北 入於屛溪者也 [습운천은 옥병계에서 위로 조금 북쪽에 있으며, 작은 샘이 동북으로부터 병계에 들어온다.]
습은천은 옥병계에서 상류쪽으로 850m 상거한 곳에 위치하며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류지점이다. 제방공사의 끝 지점으로 지금은 조그만 보가 있는데 토사가 쌓이고 중선동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해지며 습지처럼 되어있다. 늘 신비로운 운무로 덮여 있었다고 함.
4곡 石門潭 在濕雲之小西 衆仙洞北 [석문담은 습운천의 조금 서쪽 중선동북쪽에 있다.]
석문담은 습운천에서 약450m 상류에 있으며 천렵장소로 유명하다. 수량이 풍부하고 작은 폭포가 있으며, 넓은 바위가 있고 대문기둥처럼 양쪽에 바위가 솟아있어 석문담이라 부르며, 우암 송시열이 ‘취석’을 죽천 김진규는 ‘석문담’이라는 글자를 바위에 남겼다고 한다.
5곡 暎花潭 去石門一轉 在靑龍坊 [영화담은 석문을 지나 한번 돌아 청룡방에 있다.]
영화담은 석문담 상류400m 지점 상가리버스승강장 도로 옆에 위치하며, 현재는 보가 있어 옛 모습을 볼 수 없으나 복숭아나무가 많아 꽃이 피면 물속에 꽃이 비치고 꽃잎이 떨어져 경치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6곡 卓錫川 在白塔南 [탁석천은 백탑 남쪽에 있다.]
탁석천은 남연군묘에서 상가리저수지방향으로 약150m쯤 되는 곳에 있다. 남은들상여집을 지나서 비닐하우스 좌측하천에 위치하며 조선시대에 가야사스님들이 여기서 닥나무를 물에 불리고 껍질을 벗겨 찧었다고 한다. 넓은 소를 이루고 있어 멱 감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7곡 臥龍潭 在迦葉峯之東趾 能仁菴下 [와룡담은 가섭봉의 동쪽 터 능인암 아래에 있다.]
와룡담은 남연군묘에서 좌측 가야산 방향으로 약 600m정도 올라 상가저수지 둑을 건너면 상가저수지의 최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멋진 소가 있었고 와룡담이라는 바위가 있었으며 덕산현감이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 곳으로 죽천 김진규는 이곳 바위에 와룡담이라 새겼고 그 옆에는 깊은 자연동굴이 있어서 용이 산다는 전설이 있으나 지금은 거의 매몰된 상태다.
8곡 孤雲壁 在靈臺少下溪南 [고운벽은 영대 조금아래 계곡 남쪽에 있다.]
고운벽은 남연군묘에서 오른쪽 길로 따르다가 옥양봉(2km)과 석문봉삼거리 이정표 있는 곳에서 석문봉방향으로 올라 좌측의 밤 밭을 통과한 후 옥계천(남연군묘에서 600m정도)으로 들어서면 기도터 있는 곳이 고운벽이다.
수렴동 계곡에 큰 바위가 서있는데 서령태수(서산시 지곡면 부성산 참조)로 왔던 최치원 선생이 쉬어갔다는 전설이 있어 그 호를 따서 고운벽이라고 한다.
9곡 玉梁瀑 在龍潭北 紫玉峯下 山之僧稱古梁洞者也 示別派也 [옥량폭은 용담 북쪽 자옥봉 아래 있다. 산승이 고량동이라 일컫는 것은 다른 갈래를 보인다.]
옥량폭은 고운벽에서 석문봉방향 약600m거리(약30분 거리)에 위치하며, 대체적 관리 양호한 지역으로 그동안 옥양폭포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석문봉과 옥양봉 사이의 계곡에 두 개의 크고 긴 바위가 있어 이곳으로 계곡물이 흘러 폭포를 이루는데 이 근처엔 백목련이 자생하여 봄철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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