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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대련사(大蓮寺)

백수.白水 2017. 6. 11. 17:30

2013.12.10.일 천안에 살고 있는 아들네 집에 내려왔을 때, 잠깐 짬을 내어 예산봉수산에 있는 임존성(任存城)을 보러온 적이 있었다.

그날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날이 어두워져서 대련사만 둘러보았고, 그 다음날인 12.11일에 다른 코스를 선택하여 임존성을 답사한 후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렸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36개월이 지난 오늘, 대련사를 거쳐 봉수산에 올라 임존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왔다.

다시 보는 대련사와 임존성, 그리고 그때 올렸던 글과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딱히 옛글을 수정하거나 보충해야 될 내용도 그리 많지 않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지금은 여름이니 바뀐 풍경사진이나 좀 올리고, 오류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여 옛것을 그대로 옮긴다.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600년의 계단위에 느티나무 2그루가 마치 일주문처럼 서있다.

 

 

 

오래 묵은 느티나무는 모두 3그루다.

 

 

 

본전인 극락전과 심검당(오른쪽)

 

요사채 위에 산신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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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모두 2013.12.10일에 올린 글과 사진임]

 

대련사(大蓮寺)

 

예산군 광시면 봉수산(鳳首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656(백제 의자왕 16) 의각(義覺)과 도침(道琛)이 창건하였다. 인근 임존산성(任存山城)에 연당(蓮塘)과 연정(蓮井)이 있어서 절 이름을 대련사(大蓮寺)라 하였다. 동국여지승람범우고》 《가람고등에는 대련사(大連寺)라고 적혀 있다. 845(문성왕 7) 무주(無住) 무염(無染)이 중창하였고, 1648(조선 인조 26)1691(숙종 17), 1745(영조 21)에 각각 중수하였다. 1836(헌종 2) 보월(普月)이 수선당(修禪堂)을 중수하였으며, 1843(헌종 9)에는 노전(爐殿)을 새로 지었다. 보월은 1849(헌종 15)에도 법당을 중수하여 절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이후 1975년 원통보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근대 불화의 대가 문성(文性: 18761954)이 머물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노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19845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로 지정된 문화재로서, 본래는 원통보전이라고 하였으나 1975년 해체 보수할 때 대련사법당중수상량문과 함께 극락보전이라는 현판이 발견되어 극락전으로 바꾸었다. 정면 3,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양옆에 눈과 비를 피할 수 있는 풍판이 달려 있다. 대련사법당중수상량문1648년과 1849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물로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8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높이 260cm이며,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 상륜부가 있다. 탑신부 3층에 이질적인 형태의 옥개석이 삽입되어 있어 마치 4층 탑처럼 보인다. 이 옥개석은 거의 마멸되지 않아 후대에 끼워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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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채

 

느티나무 2(보호수), 수령 600, 높이 25m, 흉고둘레

6m.

 

 

사찰위로 600m 오르면 백제부흥군의 최대항전지인 봉수산 임존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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