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옮겨 온 글

그래도 물어보고 잡다. 그대여, 편안하신가.

백수.白水 2017. 9. 24. 19:28


45년 동안 쇳가루를 먹었더니 아직 젊다는 원동 사거리 철공소 늙은 아저씨.
'일가를 이룬다는 건 쉽지 않아' 하고 혼잣말 했더니 어디서 도 닦느냐 묻는다.
'날마다 돌을 닦으면 돌도 반질반질 하겠지요.' 하다가

자건거에 팔뚝 만한 둥근 쇠토막 하나를 싣고와 열처리해야 한다는 젊은 사람과

열처리 필요 없다는 늙은 주인과의 대화를 듣는다.


젊은 사람은 아들이고 늙은 사람은 아버지다.

아들이 '해주라 그러던데 알아서 하세요.' 하자

'저리 갖다 놔' 그런다.


아들이 자전거에 실린 쇠토막을 옮기는데 힘을 뽈깡 쓴다.

'70kg은 나가보인다' 그러자

늙은 아버지 말 하기를 '사람 뼈가 시긴 시제.'한다.
얼굴빛으로 봐선 60대 중후반쯤 보이지만

팔십이 다 되어 간다는 쇳밥 먹고 아직 젊은 아버지는  말 속에서 뼈마디 하나씩을 툭툭 던진다.


하긴 쇠토막 가지고도 뼈와 살을 추려낼줄 아는 사람이 까짓 말쯤이야.
군더더기 없이 뼈마디 잘 추려내는 으뜸 시인으로 주저하지 않고 정호승을 드는 나는

이런 저자거리애서 도인들 만나는 즐거움도 누릴줄 안다.
돌덩어리를 떡 주무르듯 하는 사람과 쇳덩어리를 흙 주무루듯 하는 사람을 보면 일단 경외감이 먼저 든다.


일평생 붓을 갖고 노는 사람도 성질머리 까탈쓰러울 수 있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도 담장 안팎에서 승질머리 드럽단 소릴 들을 수 있지만

그러나 한 세상 일과가 어디 어물전 비린내로만 기억되던가.
허공 중에서 실 잣듯 진리를 뽑아내는 물레질이 어디 성질대로만 되던가.


살점 잘 발라낸 뼈마디로만 남아도 좋을 것을

사람들은 자꾸 자기 내면, 성근 별들 사이사이에 꽃자수를 놓을려고 하니

무얼 밟고 길을 가는지 거푸집 세우다 청춘을 버리곤 하는 것이다.


뭐 그래도 좋다.

간혹 실패 해도 좋고 버림받아도 슬플 거 하나 없다.

독야청청하다고 일상이 다 푸른 쪽물이 아니다.
꽃 지면 꽃 떨어지는줄 알고 낙엽 지면 낙엽 지는줄 알아야 꽃 지고 새 우는 내력을 알지 않겠는가.
능엄경에 이르기를 둥근 그릇이 물을 담으면 둥근 물이 될 것이요,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물이 될 것인즉

물 스스로는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하였으니 무위롭다 마시라.


더딘 것이 울렁증까지 불러오지 않는다면 사소한 것도 다 일리 있는 출현인 것이다.

님만 님이 아니고 방광만 방광이 아니듯 그대는 네모났는가 세모났는가 둥근가,

이리 물으면 또 네모나고 세모난 모양에 끄달릴 것이어서 묻기도 쉽지 않다만

그래도 물어보고 잡다. 그대여, 편안하신가.

<여공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