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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영인산(靈仁山)

백수.白水 2018. 6. 13. 16:18

2018.06.12.()

 

아산(牙山)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인접도시 일뿐만 아니라 새파란 젊음을 불태우며 5년여 동안을 살았던 곳이라서 남다른 관심과 사랑으로 추억하는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치기어린 유흥을 멋으로 알고 나댔을 뿐 현충사 신정호를 빼고는 유적지답사나 관내여행 등 주변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다.

귀촌한 후로 드문드문 내포지방의 낮은 산을 오르고 유적지를 찾아다니는데 이제야 퍼뜩 생각이 든다.

아차! 그렇지아산지방을 가봐야지...

 

여기서 40km쯤 떨어진 아산시 영인면의 영인산(靈仁山)으로 간다.

 

 

 

먼저 아산시의 유래를 개관한 후, 여민루 아산향교 김옥균의 유허지에 관한 글을 올리고,

다음 편에 영인산 산행기를 올리기로 한다.

 

 

아산시(牙山市) 유래

 

지금의 아산시는 백제시대의 탕정군(湯井郡) 굴직현(屈直縣) 아술현(牙述縣)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 탕정군은 시대에 따라 온천과 관련되는 온수군(溫水郡), 온양현(溫陽縣), 온양군(溫陽郡) 등지명으로 개칭되는데 권역은 대략 지금의 ()온양읍·탕정·배방·송악지역이다.

 

 

-. 굴직현은 기량현(祈梁縣), 신창현(新昌縣)으로 개칭되는데 권역은 신창·도고·선장면지역이다.

 

-. 아술현은 음봉현(陰峰縣, 음잠현陰岑縣), 인주(仁州), 아주(牙州), 아산현(牙山縣)으로 개칭되며 권역은 둔포·음봉·영인·염치·인주면지역이다.

 

 

 

 

아산(牙山)이라는 이름은 염치읍 서원리와 영인면 등의 경계에 어금니처럼 생긴 어금니바위가 있어서 '어금니 '자를 따서 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옛 이름 아술(牙述)도 역시 '어금니처럼 생긴 바위(-수리=봉우리)'를 뜻하는 이름이다.

     

어금니바위는 영인산의 동쪽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원리이다. 수암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바위가 300m쯤 쭉 벌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바위가 부처처럼 생겼으므로 불암(佛岩) 또는 부처바위라고 전한다.

 

조선지형도에 영인면·음봉면·염치면의 경계에 부아암(負兒岩)이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아이를 업은 형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인면(靈仁面)은 아산(牙山)이란 지명의 뿌리가 되는 아산리(牙山里)가 중심인 면이다.

1914년 지명 개편 시 면의 남쪽에 위치한 영인산(靈仁山)의 이름을 따서 영인면으로 하였는데, 그 어원은 고려 6대 임금인 성종 9년 이후 이 지역의 별호가 영인(寧仁)이었던 것에 기인한 듯, 고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 하고 있는 것이다.

 

 

 

 

영인산이 자리한 아산시 영인면은 백제시대부터 지금의 아산시권역을 三分했던 탕정군(湯井郡) 굴직현(屈直縣) 아술현(牙述縣) 중 아술현에 속한 지역이었다.시대가 내려오면서 아술현(백제)은  음봉현(신라경덕왕) 인주(고려) 아주현(고려)로 개편되며, 1914(일제강점기) 위의 3()현을 통합하여 아산군이 된다.

치소(治所)는 역사 이래 변함없이 지금의 영인면 아산리였으나 1922년 아산군 청사를 온양면 온천리로 옮기면서 일개 면사무소소재지로 전락되었다.

 

 

 

 

 

아산현은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1,517-1,578)선생이 1,578년 아산현감이 되어 걸인청(乞人廳)을 만들고 노약자와 굶주린 백성들의 구호에 힘쓰다가 재직 중에 죽은 곳이기도 하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742&cid=59015&categoryId=59015

 

   이지함(李之菡) / 민초들의 삶 한가운데 살았던 조선의 선각자 /인물한국사.

 

 

김옥균(金玉均, 1851 ~ 1894) 유허(遺墟)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1406&cid=59015&categoryId=59015

      인물한국사 / 김옥균(金玉均)/ 근대적 개혁운동 갑신정변을 주도하다

 

 

 

 

 

 

 

 

 

부인인 기계 유씨와 합장묘이다.

 

 

 

묘소서쪽으로 영인산이 우뚝하고

 

 

 

북쪽이 툭 터져 면소재지(옛 시절의 군·현 치소, ·縣治所)인 아산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아산만 아산호가 시원스럽다.

 

 

아산향교(牙山鄕校)

 

 

 

 

 

 

 

 

도난사고 때문에 향교의 모든 문이 잠겨있다. 꼭 보고 싶으면 관리자한테 전화를 하면 된다.

 

 

 

일반적인 향교의 배치형식대로 아산향교역시 앞에 명륜당, 뒤에 대성전을 배치했다.

 

 

 

 

 

 

보리수나무

 

 

 

 

 

 

 

 

 

 

관음사석탑(觀音寺石塔)

 

 

아산향교에서 남쪽으로 영인산자연휴양림을 향해 조금 올라가다보면 관음사(觀音寺)라는 절이 나온다. 살펴보니 다른 부속건물은 없고 대웅전만 덩그러니 퇴락한 절이다. 휴식년을 운영함에 따라 관음사에서 올라가는 길은 출입금지이니 휴양림(수목원, 영인산 정상)으로 가려면 영인농협 앞의 큰길로 내려와 다시 찾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