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6(토)
도고산 정상에서 <360도 동영상파노라마> ▶마우스왼쪽 2번 클릭
젊은 시절 한때 온양온천에서 살았고 처갓집이 도고면에 있기 때문에 이쪽지역을 자주 찾게 되는데 언젠가는 꼭 한번 오르리라 벼르던 그 도고산(道高山)으로 간다. 먼저 그동안 궁금했었던 지역의 유래 중 두어 가지만 살펴보자.
처갓집주소가‘도고면 신언리(新堰里) 3구 궁밭’이라서 옛날 어느 시절 궁궐 또는 OO궁이라는 이름의 건축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궁금했었는데... 맞다.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으로 왕이 피난하여 이궁을 지었기 때문에 궁전 또는 궁밭이라고 지명이 전해진다고 한다. 그 자리가 지금의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소소한 사실 하나를 더 붙이자면, 신언3구 궁밭에 기차역이 있었는데, 1950년 선장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1972년 도고온천역으로 역명 변경되었고, 2007년 장항선선로개량에 따라 지금의 위치로 역사(驛舍)를 신축 이전함에 따라서 신언리의 장항선선로와 기차역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져버렸다.
도고산(道高山,482m)은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와 예산군 예산읍 간량리 사이에 솟은 산으로 북으로 아산만과 아산만 좌우의 내포 땅을 바라보며 서 있다. 그 모습이 도(道, 바른 길, 또는 근본)가 높은 군자처럼 의연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주봉인 국사봉에는 봉수대가 남아 있다.
삽교천방조제가 세워지기 전에는 바로 산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정도로 여기 내포는 바다가 깊숙이 파고 들어온 땅으로서 정상에서 예당평야와 아산만은 물론 멀리 천안까지 한눈에 들어와 서해안의 초계와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지로 유명하다.
아산만을 내려다보는 이 산은 옛날부터 서해안을 감시하는 군사적 요새 역할을 했던 산으로, 1390년(고려 공양왕2년) 6월에는 서해안으로 침입한 왜구들이 이 산에 진을 치고 약탈을 자행하자 이때 장수 윤사덕과 유용생이 이끈 관군이 100여 명의 왜구를 전멸시켰다고 한다.
2년 후인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국하면서 고려 때의 소부소감(小府少監)을 지냈던 김질(金秩)를 예조판서에 임명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이곳 산에다 거적을 치고 기거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다가 순절하였다고 한다.
[출발] 도고중학교 – 동막골재 – 칼바위(375봉) - 국사정 – 도고산 정상(462m) = 2.8Km
[하산] 국사정 – 칼바위- 동막골재- 동막골 – 시전1리 - 시전2리 - 도고중학교 = 2.6km
도고중학교
도고중학교·도고초등학교가 어떠한 연유로 한적한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도고면의 유래를 살펴보니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고, 면사무소는 향산리 용호원에 있다가 1917년 신언리(新堰里)로 이전했고, 다시 1993년에 지금의 청사(신언리64-3)로 옮겼다.
따라서 지금은 면소재지(신언리)와 온천지역(기곡리)이 번성하지만 옛 시절 한동안은 도고산 아래 시전리일원이 도고면의 중심지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출발 지점부터 정상까지 대부분의 구간에 이런 식의 돌이나 나무계단을 만들고,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밧줄을 걸어 놨다. 굳이 줄을 잡지 않더라도 오를 수는 있지만 여러 군데 힘든 깔딱 고개가 있다.
전원주택마을 갈림길
331봉
정상을 1.3km 앞둔 지점의 331봉.
331봉에 오르자마자 수직에 가까운 긴 내리막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계단을 내려서면 동막골갈림길(독막골재) 이따가 하산할 때 이곳에서 동막골로 내려설 것이다.
일출골 갈림길.
364m봉
조록싸리꽃. 새부리 모양으로 붙은 꽃잎 안에 암술과 수술이 들어 있다. 잎이 조록나무처럼 갸름하다고 조록싸리이다.
국사정전망대(424m) 도고산정상과 국사봉전망대 두 곳에서 보는 풍경이 거의 비슷하다.
국사정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
서쪽방향인 예산 신례원지역.
삽교평야와 삽교호(사진 우측)
도고온천(가운데)과 영인산(사진 맨 오른쪽 끝)
도고저수지 산 너머로 아산시. 그 오른쪽으로 천안시가지가 이어진다.
아랫마을이 덕암리인 듯, 그 뒤로 먼 바다 파도처럼 산 너울이 일렁인다.
동(東)에서 동남(東南)방향으로 이어지는 태학산-망경산-광덕산-봉수산-천망산 등의 산군(山群)들,
나는 어느 산이 어느 산인지 구별하지 못하겠다.
보이는 봉우리가 도고산정상.
도고산정상의 금계국. 원예용 귀화식물이라고 멸시할 필요는 없다. 너도 이 땅에 뿌리박고 같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면 다 같이 아름다운 우리나라 꽃이다.
꽃과 나비의 유희!
나비 한 마리 달콤한 꿀 향에 취해 이 꽃 저 꽃으로 너풀거리며 들떠있다.
배방산, 설화산, 광덕산, 봉수산에 망경산, 태화산까지 언제가 한번쯤 오를 것을 기약하면서 지도에 표시를 한다.
정상에서 천안에서 살고 있다는 산객을 만났다. 12.8km 떨어진 봉수산에서 왔는데 다시 봉수산으로 하산하겠단다. 한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송전탑이 자리하고 있던 정상의 봉수대는 1999년 송전탑을 서봉(475m)으로 옮긴 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도고산 정상에서 보다 ▼
국사정 사진과 비슷하고, 한곳에서 방향을 달리해 여러 장을 찍었기 때문에 유사한 사진이 많다.
설명 없이 그대로 올린다.
막힘없이 펼쳐지는 정상에서의 시원스런 조망!
나는 벅차오르는 그 감격 때문에 산을 오른다.
구불구불 사행하며 흘러가는 강줄기도 좋고, 일망무제로 아득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좋다.
먼 바다의 파도처럼 너울거리는 산 너울은 연한 수묵화 같아 그 아련한 맛에 정감이 간다.
가까이가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덕분에 웬만한 추잡함은 탈색되고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도시의 모습도 아름답다.
정상에 서있는 동안만큼은 잡다한 세상사가 시시해지고 옹졸한 마음이 사라진다.
억눌림에서 벗어나 호연지기가 들어찬다.
하산 길 ▼
하산 길에 다시 동막골재를 만난다. 동막골까지 거리는 1km,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밟고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 바로 절골약수터로 내려와 동막골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는 걸 몰랐다.
급경사 내리막계단
동막골재에서 급경사 400m를 내려오니 아래처럼 잘 닦인 임도를 만난다.
내려온 임도를 뒤돌아본다. 시전리에서 동막골로 올라와서 정상으로 간다면 이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왼쪽 길은 내가 하산한 동막골재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절골약수터를 지나서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로 생각된다.
시전리2구 – 시전리1구 – 동막골의 이곳까지 들어와 주차하고 정상으로 오르면 될 것 같다.
전국적으로 동막리나 동막골이라는 동네가 많다. 돌이 많고 뒷산계곡이 (돌로)막혀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곳 시전리의 동막골 유래는 잘 모르겠으나 특히 돌을 캐던 채석장이 있던 동네에 이런 이름을 많이 붙였는데 돌의 고어인 '독'과 '막'이 합쳐 '독막'이라 하다가 ‘동막'으로 변음되고 한자를 빌려 東幕으로 적기도 한다.
내 고향인 금산의 진산면에 석막리(石幕里)라는 마을이 있다. 원래 돌이 많은 산간마을인데 돌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하여‘돌매기’또는‘돌막’으로 불렀으나 한자를 빌려‘石幕里’가 된 것이다.
시전리(枾田里)는 감나무가 많아 '감밭'으로 불리던 마을의 가로수도 온통 감나무다.
동막골로 내려와 도고산정상을 본다.
시전리(柿田里)마을
요것이 담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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