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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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국내여행. 산행

한계령 1004 <박영대>

백수.白水 2020. 1. 16. 17:16

 

생각나서 2016.2.10.일 올렸던 글, 리메이크한다.

 

 

 

태백산맥의 설악산(1,708m)과 점봉산(1,424m)의 안부로 높이 1,004m. <2015.12.11  양봉모 촬영>

 

 

 

 

한계령 1,004

 

박영대 >

 

내 몫을 내려놓기 위해

한계령 쉼터에 짐을 부린다

골짜기로 지고 올라온

구비구비 세간살이 걱정도

체면에 발목 잡혀 연연했던 인연도

천사의 바람 앞에서

내 몫 어디쯤인지 헤집어 본다

 

늘 오르막이었던 맨정신으로

봉우리 하나 장식하기 위해 저지른

막무가내가 여태까지 걸어온 억지였다

 

돌뿌리의 갈증을 먹고 버틴 풀뿌리

모질게 고아낸 즙이 이마에 새겨진

짐승의 비명을 살려낼 수 있었을까

 

내게만 관대하게 눈 감아온 면책의 목록

연이어 불거져 나온 옹이가 암벽으로 솟아

하늘선에 매듭처럼 매달려 있다

 

창창해서 더 생생한 깎아지른 바위의 눈물

내 몫만치 꼭 버리고 가야 할 다짐길

여기 아니면 다시는 못 버리고 도루묵이 될 것만 같아

속죄의 양을 가늠하듯

묵은 후회가 원근의 능선이 되고 있다

 

솟아 나온 것이 아니라

살포시 내려온 하늘의 뜻

이만큼은 지고 온 내 몫을 곱게 받아 주실는지

 

오르기 전에는 모르고 그냥 왔는데

여기서부터가 가장 낮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