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多子女출산이 愛國愛族

백수.白水 2011. 8. 8. 10:37

 

 

 

 

 

 < 둘째 손자, 양하빈(梁河斌) 탄생 >

 

2011.8.5 (금)일 큰아들이 둘째아들을 봤다. 출생시각이 음력으로 7월 6일 오후 11시 32분인데

사주명리학에 따르면 칠월칠석날 子時가 되니 기억하기도 좋다.

내가 30살에 작은 아들을 본 것에 비교하면 4년이나 늦었지만 그러나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이 시대에 그래도 아들 둘을 출산했으니 제 몫을 다 한 것이고 애국 애족을 한 거다.

손자 이름을 지어줬다. 원래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돌림자는 아니지만 큰손자 이름에 빈자를 썼으니

그냥 돌림으로 쓰자는 생각이었고, 큰 손자는 宇 자를 써서 하늘을 뜻하니, 음양의 조화를 생각해서

작은 애는 땅을 의미하는 물 河자를 쓴 것이다. 발음하기 쉽도록 양하빈(梁河斌)이라 이름 하니

은하(銀河)처럼 황하(黃河)처럼 크고 길게 성(盛)하고 빛나 나라의 대들보가 되라는 큰 뜻을 담았다.

아무쪼록 밝고 튼튼하게 자라서 한몫을 하라는 기대가 들어있다.


나는 삼천만동포여러분! 이라고 외치던 시대에 자라났다.

직장생활을 할 때 결혼을 했고, 애들이 태어나던 시절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등장하며 출산억제가 시작되던 시절이었다.

직장에서 자녀 둘까지만 세제나 학비보조 등 혜택을 주었고

셋째부터는 자녀학자금 지원도 하지 않았으니 적게 낳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정관수술을 하면 훈련을 면제해주고 일찍 돌려보내주던 시절,

셋째 임신해서 4개월이 됐는데 아내와 둘이서 주판알 튕겨보고는 과감하게 임신중절을 해버린 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죄책감이 들고 후회스럽다. 다 저 먹을 것은 타고나는데 말이다.

 


 < 우리나라 인구변화 추이 >

 

우리나라의 인구문제, 특히 저출산 문제를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 인구통계는 경제기획원의 한국통계연감에 의하면 1910년 것이 그 효시인데 남북한 합해서

1,312만9천명이다. 1910년이라면 우리나라가 일본식민지가 된 해이다. 이때 1,500만 동포라고 했다.


1920년 국세조사 때, 1,726만 명

1925년 국세조사 때, 1,902만 명

1930년에 가서야 2,430만 명이 된다.

1944년의 인구는 2,512만 명인데, 이때까지가 남북한 전체의 인구통계이다.

여하간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동포 2천만"이라는 구호가 사용됐다.


해방 후는 1949년 5월1일에 제1회 총인구조사를 실시했는데 남한에만 2,016만7천명이라고 조사됐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5년에는 2,150만2천명이 됐다. 

"남한동포 2천만"이라는 구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해인 1964년 인구는 2,795만8천명,

그래서 "대한민국 동포 3천만"이라고 했다.


1967년에 3,013만 명으로 삼천만 명을 넘어섰고

1985년에 4,080만 명으로 사천만 명을 넘어섰으며

2001년에 4,734만 명이었으며

가장 최근의 통계로는 2010. 11.1일 현재 4,858만 명으로 증가세가 많이 둔화되었으나

"남한동포 5천만", 남북한 합쳐서 "한국민족 7천만"시대가 된 것이다.


 

 < 저출산 문제 > 

 

그러나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유엔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총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4,818만 명에서

2030년 5,034만 명까지 늘어난 뒤 줄어들기 시작해 2100년에는 3,722만 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고점인 2030년과 비교해 인구가 26%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한국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구 감소로 노인부양 부담도 가중되면서 한국의 노인부양비율

(경제활동인구 대비 노인 비중)은 2050년에는 62.9%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령인구 증가로 복지 지출이 늘면서 한국의 재정건전성에도 큰 타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장장 20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내며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란 찬사까지 들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경제정책에 대해

“한 이론이 10년 정도 맞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는데 정확한 말이다.


국가기록원에서 출산장려에서 출산억제, 다시 출산장려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인구정책의 변화를 인터넷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시작했다. 10년 단위로 구분한 시기별 인구정책을 보면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는 대폭적인 출산장려책을 폈던 시기로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라는 표어로 베이비붐을 이끌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덮어 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로 표어가 딴 나라처럼 바뀌는 것을 시작으로 산아제한 정책은 1990년대까지 계속됐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축복 속에 자녀하나 사랑으로 든든하게(1980년대)’가 이 시기에 등장했다. 1983년 “둘도 많다”는 표어가 등장할 때만 해도 아이 울음소리 듣기 힘든 21세기를 원려(遠慮)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1986년 발행 우표에도 ‘하나 낳아 알뜰살뜰’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1990년대는 아들선호 풍조를 빗댄 ‘아들바람 부모세대, 짝꿍 없는 우리세대’가 표어로 나타났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사회문제가 인식되기 시작한 2000년대는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동생입니다’며

저출산 타개의 몸부림이지만 효험이 별로다.

 


 < 인구억제세 >

 

인구증가 인구 억제가 화두였던 시절 1985년도 신문에 실렸던 ‘이규태 코너’의 ‘인구억제세’라는

글을 다시 읽어보니 격세지감이요 금석지감이다. 십년이면 세상이 변해도 정말 크게 변한다.

 

인구가 모자라 걱정인 나라들에서는 자녀가 늘수록 자녀수당이 늘고 있다.

國是로 인구를 늘리고 싶은 프랑스에서는 자녀가 둘일 때 월 139프랑(14,000원꼴)의 자녀수당을 받고 있으며 아이가 많을수록 비례해서 늘어난다. 7남매일 경우 무려 1,456프랑(146,000원꼴)이 된다. 근로자의 월평균 수입이 3,000프랑이란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자녀 값이 아닐 수 없다. 소련에서는 無子稅를 문다고 한다. 20세 이상 50세 미만의 부부나 독신남자로서 자녀가 없는 사람은 월수의 6%를 무자세로 공제한다.

스위스에서는 독신세가 있다. 독신 월수 3,000프랑이라면 400프랑이나 물어야 한다.


역시 인구가 많아 골치 아픈 나라들에서도 세금과 수당으로 증가를 억제하고 있다.

세계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는 공무원가족수당을 자녀 셋까지만 준다. 그 이상은

5명이건 10명이건 3명분이상 받지 못한다. 땅이 넓고 자원이 있는 나라이기에 여유 있는 규제를 하고 있다.

가장 각박한 나라인 싱가포르에서는 아들이 하나일 경우 연간 세금공제액이 750달러인데,

아들이 넷일 경우는 반감을 한다. 5명이상이면 세금공제혜택이 없다.

이상 인구조절을 위한 세금과 수당을 볼 때 독신세나 부자세를 제외하면 이미 주어온 혜택을 줄이거나

주지 않거나 하는 혜택감소나 혜택취소로 인구정책을 장려하고 있는데 예외가 없다.

 

어젯밤을 계기로 우리나라 인구가 4,000만명을 돌파, 인구공황이 새삼스럽게 대두됨으로서 정부에서는

다각도로 인구 억제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외국의 혜택감소에 의한 장려책과는 달리 세금이나 보험료를

중과시키는 부담가중으로 마치 벌금형 같은 규제인상을 받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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