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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국내여행. 산행

2022년 창덕궁昌德宮)의 봄

백수.白水 2022. 4. 22. 05:06

2022420()

 

서울대병원에서 검사 후 진료를 받을 때까지 대시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 년에 12차례는 꼭 둘러보게 되는 창경궁과 창덕궁.

갈 때 마다 시간에 쫒기며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허둥댔지만 이번에는 창덕궁에서 2시간 넘게 여유를 즐겼다.

 

그간창덕궁의 후원(後園)”을 몇 차례 돌면서도 옥류천 일원에 접하지 못한지라

이번에는 꼭 보려고 서둘렀지만 이번에도 시간이 맞지 않아 발길을 돌려 아쉽다.

 

창덕궁과 창경궁에 대한 해설은 비치된 안내팜플렛이나 홈페이지에 아주 상세하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의 인조반정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화재가 있었으며, 1917년에 대조전 과 희정당 일곽이 소실되어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사용한 후 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다.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하였다.

정전 공간의 건축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여 높게 하였고, 침전건축은 정전보다 낮고 간결하며, 위락공간인 후원에는 자연지형을 위압하지 않도록 작은 정자각을 많이 세웠다.

건물배치에 있어 정궁인 경복궁, 행궁인 창경궁과 경희궁에서는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 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한 배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이다. 또한,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300년이 넘은 거목과 연못, 정자 등 조원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건축사적으로 또 조경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후원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창건할 때 후원으로 조성하였으며, 창경궁과도 통하도록 하였다.

창덕궁 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 시설로서 자연적인 지형에다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있게 건물을 배치하였다. <문화재청>

 

 

 

창덕궁 - 세계유산 (cdg.go.kr)

 

창덕궁 - 세계유산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 건축 그림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가로 576cm 세로 273cm 이며 순조 30년에 불타버린 환경전과 순조 34년에 중건된

www.cdg.go.kr

 

 

창덕궁 안내지도

 

 

 

 

 

 

창덕궁 회화나무 군.  돈화문 안에 있는 회화나무 여덟 그루로  200646일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되었다.

 

 

 

궐내각사(闕內各司)는 궁궐 내의 설치된 여러 관청을 뜻한다.

조선왕조의 중앙관청은 궁궐 안에 설치된 궐내각사와 궁궐 밖에 설치된 궐외각사(闕內各司)로 크게 구분된다.

 

궐내각사는 국왕 보좌 또는 왕실 업무와 직접 관계된 관청으로 승정원, 규장각, 홍문관, 예문관, 선전관청, 오위도총부, 세자시강원, 세자익위사, 내의원 등이 대표적이며, 궐외각사는 의정부, 육조, 충훈부, 의금부, 사헌부, 사간원, 사역원 등의 일반 관청이다.

 

 

 

 

규장각(奎章閣)은 조선 후기의 왕실 학문 연구 기관이자 왕실 도서관으로, 지금의 국립중앙도서관 격이다.

역대 임금의 시문과 저작, 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 등을 보관하고 수집하였다.

 

 

 

 

책고(冊庫)

 

 

 

 

 

 

약방(藥房)

 

 

진선문(眞善門)

 

 

 

 

인정문

 

 

 

 

창덕궁 인정전(昌德宮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이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고 신하들로부터 조하를 받는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임진왜란후 경복궁 근정전 대신 정전으로 사용되었다가 창경궁의 명정전과 이궁역할, 동궁으로 사용되었다.

198518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었다.

 

 

인정전 뜰아래로 품계석(品階石)이 내려다보인다.

 

 

인정전 내부

 

 

선정전(宣政殿)은 창덕궁의 편전(便殿)으로 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보고 경연을 하던 곳이다.

뜻은 선정을 베풀라는 뜻이 아니라"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이다.

 

 

 

 

 

 

 

 

 

 

======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일원  ▼  ======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일원: 창덕궁의 주거 건물로 낙선재와 다른 부속 건물들을 통틀어 부르는데, 대한제국의 황실가족들이 1989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낙선재 뒤뜰 화계(花階, 꽃 계단)에 세 개의 괴석이 놓여있다.

 

 

小瀛州(소영주):  영주산(瀛州山)은 중국전설에 나오는 신선이 산다는 세 개의 산(蓬萊山 · 方丈山 · 瀛州山) 중의 하나임.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들어와서 내려다 본 창경궁

 

앙부일구(仰釜日晷): 천구(天球)의 모양을 본 떠 만든 반구 형태의 해시계. 앙부일구는 세종 때에 처음 제작하였는데, 종묘 남쪽 거리와 혜정교 옆에 설치하여 공중용 해시계로 사용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앙부일구들은 모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앙부일구는 오목한 반구 안에 북극을 지향하는 영침과 영침의 그림자를 받는 시반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반면에는 24(12절기와 12중기)를 나타내는 13개 계절선과 15분 간격의 시간을 나타내는 시각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