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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경허스님, 나혜석과 이응로

백수.白水 2023. 1. 18. 11:20

신도리에서 버스를 타고 태안에 내려, 다시 홍성 • 예산을 거쳐 수덕사에 도착하니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계속 비가 나리고, 꽃샘 바람까지 불었다.

 

 

수덕사입구에 이르자 수덕여관이 보였다. 돌계단을 올라 마당에 들어서니 이응노화백이 자연석에 새겨 놓는 <수덕여관>이란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 수덕여관은 김일엽스님, 나혜석 화가, 이응노화백 등 文學과 美術界의 거장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1896년, 일엽과 같은 해에 수원에서 부유한 관료 집안에서 넷 째 딸로 태어난 나혜석은 서울진명여고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여자미술대학에 유학 가서 서양화를 공부한다.

유학시절 오빠 친구인 게이오 대학생 최승구와 열애에 빠졌고 결핵을 앓던 최승구의 죽음으로 그들의 관계는 막을 내리지만,첫사랑은 나혜석의 뇌리에 영원히 각인(刻印)된다.

귀국후 여성화가 최초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한 화가생활을 하는 한편, 同人으로 활약하고 있는 <폐허> <삼천리> 등 신문잡지에 칼럼을 쓰 면서 신여성으로 맹렬하게 활동하였다.

이때 春園 李光洙와 교분을쌓은가 하면 1919년 김마리아 등과 함께 3 • 1운동에 여학생 참가를 주도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도 했다.

1920년에 혜석의 나이 24세에 부유한 집안의 김우영과 결혼을 한다.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첫사랑 최승구의 비석을 세워줄것을 요청한다.

김우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란 것에 매료되어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신혼여행지를 최승구의 무덤이 있는 곳 으로 정하여 비석을 세워 주었다.

이후 나혜석의 스캔들로 이혼을 한다. 이혼의 아픔을 안고, 당시 32세의 파란만장한 속세의 삶을 접고 女僧으로 수행을 하고 있는 김일엽을 찾아 수덕사로 간다.
나혜석이 수덕여관에 머무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청년화가 이응노는 수덕여관에 몇번 들락거리다가 나혜석과 정이 들어 버린다.

1944년 나혜석이 떠날무렵 이응노는 아예 수덕여관을 사 버린다. 혜석으로부터 꿈에 그리던 파리생활과 그림 이야기를 들은 이응노는 21세 연하의 박인경과 함께 파리로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그의 본부인 박귀희가 여관을 운영하였으나, 2001년 그녀마저 죽음으로 수덕여관은 폐허로 변했다.

뒷뜰을 돌아보니, 고암 이응노화백이 1967년동백림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고 석방된 후, 심신을 추스러기 위해 머물렀던 자연석 너럭바위에 文字를 추상화기법으로 암각(岩刻)한 작품이 뒷마당을 지키고 있다.

수덕여관을 지나 덕숭산 중턱에 자리 잡은 대웅전에 이르렀다. 大雄殿은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지명법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1천 4백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인지 그 당시의 단청은 모두 사라지고 민낯바닥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묵묵히 세월을 떠 받들고 있다.

화장한 여인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맨얼굴이 고와야 진정한 美人이라 한다. 丹靑을 모두 벗어버린 大雄殿의 모습이 高僧같이 묵중하게 千년의 세월을 받히고 있다.
대웅전을 구경하고 <修德寺 聖寶 博物官>에 들렸다.그 고통스런 일제시대에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루웠던 경허, 만공 등 큰스님들의 親筆유묵과, 다른 켠에는 <청춘을 불사르고>란 一葉 비구니스님의 친필원고들도 전시되었다.
경허(境虛) 큰 스님, 1849년 전북 전주 자동리에서 태어나 9세에 서울 청계사 계허스님 아래서 삭발출가 하여 14세때 계룡산 동학사 만화스님을 모시고 각종 佛敎經傳을 섭렵하게 된다.

23세 되던 해 동학사 강원에서 강사로서 조선팔도에 이름을 떨치면서, 學人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31세때 아홉 살에 떠난 친 어머니를 보러가던 중 마을마다 전염병이 퍼져 시신이 늘려 있는
참상을 보고 강원(講院)을 폐쇄하고 용맹정진에 들어 갔는
데, 한 사미승이 전한 <소가 되어도 고삐를 뚫을 구멍이 없다>는 한 마디에 활연대오(豁然大悟) 한다.

1904년 56세가 되던 해, 천장암에서 제자 滿空스님에게 전법(傳法)을 한 후,오대산 • 금강산을 순례 하고 세상을 피하고 이름을 숨기고자 북한과 만주지방으로 비승(非僧) 비속(非俗) 차림으로 떠돌며 인연에 따라 교화한다. 1912년 함경북도 갑산 옹이방 도화동에서 세수 64세 법랍 56세로 입적했다.

소설가 최인호가 한 신문에 인기리에 연재한 <길 없는 길>에서는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르지만, 경허선사의 마지막 인생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제자 만공에게 法을 전한 후, 수염을 길게 기르고 9척의 몸을 이끌며 거지같은 차림으로 갑산으로 가던 중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고 한다. 길바닥에 한 거지가 동냥을 하고 있었고, 거지는 문둥병에 걸린 여인이었다.
그날 밤 경허선사는 그 문둥병 여자와 더불어 들판 헛간에서 하루밤 사랑을 하였다고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몹쓸병에 걸려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천시를 받던 女人에게 男者의 체취는처음이었을 것이다.

보시중에 肉보시가 으뜸이란 말도 있다. 경허선사는 그 육보시를 행동으로 한 것이다. 그후 경허선사도 온 몸에 진물이 나는 문둥병에 걸려, 문둥병에는 개고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들개를 잡아먹는 장면이 나온다.

1881년, 경허선사가 나이 서른 세 살 때 1년간에 걸친 토굴생활을 통해 깨달은 경지를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속세와 청산이
다른 것이 무엇이랴
봄빛이 있는 곳에
꽃 안피는 곳이 없으니

누가 만일 성우의 일을 묻는다면
돌로 만든 여자의 마음속에
영원 저편의 노래가
있다 하리라.

* 성우(性牛): 경허선사의 호

대웅전과 박물관을 구경하고, 대웅전 위쪽 산중턱에 터 잡은 견성암(見性庵)으로 갔다. 덕숭산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나리던 비가 멎자 바람이 매섭다. 덕숭산 송림숲이 매서운 봄바람에 잉잉거리며 운다.

솔바람 속에 풍경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낮게 운다. 추위 때문인지 비구니스님의 그림자도 보이지않는다.

덕숭산 빈하늘에 겨울철새가 ㄱ역자를 그리며 날아간다.

바람이 거칠다. 견성암 마당 너럭바 위에 서 있는 처진 소나무도 운다. 풍경소리도 울고, 내 마음도 운다. 백 년전 경허 • 만공 선사도 흙이 되고 그들과 함께 산천대천세계를 누비던 지팡이만 박물관에 덩그러니 누워 있다.

지금 불고 있는 바람이 천 사오백년 전에도 그대로 불던 바람일까? 바람은 그때의 바람인데 인걸은 간데없고, 봄풀만 푸르러 오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또 어디로 가는가?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女僧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 ~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女僧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 ~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허전한 심사 달랠 길 없어, 수덕사 입구 주막에 들렸다. 아직 삼월 중순, 꽃샘추위 때문인지 손님이 없다. 도토리묵과 찹쌀막걸리를 주문했다. 정갈한 안주와 약간 갈색의 빛이 나고 달짝지근한 찹쌀酒가 일품이다. 한 되박을 먹고 나니 쓸쓸함도 추위도 한결 가시는 것 같다.

단아한 붓글씨로 쓴 詩句가 주막 벽에 붙어 있다. 題目도 詩人의 이름도 모르는 <詩> 가 술 잔에 가슴에 녹아든다. 일상속의 체바퀴같은 부질없는 삶을 벗어나기 위해 떠난,1월중순의 봄여행이 나그네의 心境 만 더욱 쓸쓸하게 했다.

山은 山인양 의연하고
江은 흘러 끝이 없다.
댓잎에 별빛

초가삼간

이슬 젖은 돌다리

모과수 그늘
하늘 밖 달빛에 바람은 자고
댓잎에 그윽한 바람소리

[출처: 꽃바람 추운 어느 初月에 東波 / facebook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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