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심(愁心). 가을을 타다.

백수.白水 2011. 8. 28. 15:19

 

 

 

  처서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가을의 문턱,

티 없이 맑고 높고 파란하늘, 싱그러운 한낮의 태양은 따가운 눈길로 성숙의 결실을 채근한다.

처마 밑의 수세미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 내 장딴지만큼이나 크고 튼튼하게 주렁주렁 매달렸고,

밤이 되니 콩밭을 휘저으며 짝을 찾는 고라니들이 웨에엑 웨에엑 애달프게 구애의 소리를 질러댄다. 


근심걱정 염려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수심(愁心)이라 하고 愁는‘근심 수’또는‘모일 추’라 하는데 굳이

파자(破字)를 하면 가을 秋와 마음 心의 合字이니 가을의 마음 즉 추심(秋心)이 곧 수심(愁心)이 아닐까 싶다.


추심! 가을을 탄다는 것은 무엇일까? 녹음처럼 우거진 콩밭 그 짙은 그늘 속에서 치열하게 삶의 끈을

부여잡고 끈질기게 늘어지던 바랭이 풀도 이제 힘이 빠져 시들해지고 일렁이는 바람에 수세미도

노란 꽃잎을 하나 둘 내려놓는다. 하나 둘 서서히 시들고 사라져간다는 것, 숙연한 침묵, 인생의 허무함.

우주를 자유로이 떠돌던 바람이 이 가을저녁 내 몸을 스치고 갈 때 나는 가을을 탄다.

지루한 장맛비 세차게 휘몰아치던 여름날에도 끄떡없던 내 가슴이 소슬하게 스쳐가는 가을바람을 타네.

 

 

“이 계절에 전해 듣는 죽음의 전령은 또한 각박한 삶의 호흡을 뒤로하고  잠시나마 숙연한 침묵으로

상념을 안겨주기도 한다.....쓸쓸한 삶 산다는 것의 처연함과 고적함. 비애 그리하여 몹쓸 게도

나는 가을을 앓는다. 봄은 여자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그래서 봄 처녀 가을 총각이란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속되고 야한 은유로 봄 조개 가을무를 들먹거리기도 한다.

봄 조개는 놋젓가락도 자르며 가을무는 무쇠도 뚫는다는 엄청난 비유도 세간에는 있다.

<靑睦閑筆 / 남자 가을을 타다.>”

 

 


“하늘은 맑다/ 앞산 푸른 숲속에 나그네처럼 찾아와/ 일렁이는 바람은

지난밤 어디에서 밤을 새우고/ 말없이 홀로 떠나 왔는지/ 만개한 아까시아 꽃

흔들어 놓고/ 대답도 하기 전에 또다시/ 길을 나선다.


무념의 삶을 살다 가라고/ 삶의 흔적도 남기면 안 된다고/ 지나는 순간마다 스스로 흔들리면서/

그 흔들림으로 숲을 흔들고/ 하얀 순결로 피어난 아까시아 꽃을 흔들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흔들어 주고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흔적 없이 오늘은 또 어디로 떠나가는지


삶은 그렇게 살다 가야 하는가./ 애초 인연도. 애증도 남기지 않고/ 무념으로 홀로 왔다가 /

무념으로 홀로 가야 하는가./ 맑은 하늘과, 푸른 숲과/ 하얗게 핀 아까시아 꽃들과/

이미 인연으로 눈빛 마주해 버린 나는/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수심(愁心) / 송하 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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