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탐대실(小貪大失)과 대탐소실(大貪小失)

백수.白水 2011. 12. 24. 20:59

서울에서 장사장이라는 분이 며칠 전 이곳을 찾아왔다. 일면식도 없었고 나보다 세살이 많은데도 참 깔끔하게 차리고 다닌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세상사를 얘기하다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나왔다. 자기는 작은 계산은 잘하는데 큰돈은 계산이 잘 안 된단다. 확실한 고수익보장사업이 있으니 한번 해보자는 아내의 제안에 아는 사람에게 6억 원을 투자했는데 최근 3개월 만에 거덜이 났단다. 투자얼마 후 투자받은 사람이 부도를 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 쥐뿔도 없어 그 큰돈을 한방에 날려버렸노라고,


마땅한 호칭이 없으니 그저 내가 사장이라 부르는 거고, 그는 은퇴한 사업가도 아니고 많은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하는 소일하며 노후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에 그리 되었다며 허망해했다. 덕분에 부인이 매일 간병 일을 하러 다닌단다. 작은 일은 꼼꼼하게 잘 챙기는데 큰일 앞에서는 매번 무모함이 발동된다는 것, 그저 잘되겠지 하는 들뜬 마음에 앞뒤를 재지도 않고 대범한척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그때마다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단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것을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하는데 작은 것은 잘 관리하는데 큰 것은 잘못 챙기고 다 잃었으니 이런 일도 소탐대실이라 할만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생전에 나를 형님이라 부르며 절친하게 지냈던 왕사장이라는 친구. 건설경기가 호황이던 시절, 주택건설업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파트건설까지 해서 큰돈을 모았는데 그 분야의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었고 근검절약하며 자금관리도 치밀하게 잘하는 친구였다. 동업계의 다른 친구들은 룸살롱을 드나들며 호기를 부렸지만 절대로 같이 휩쓸리지 않았고 손님접대도 대중음식점에서 소주를 곁들여 저렴하게 마치는 것으로 언제나 서민적인 소박함을 고집했다.


그러다가 건설업불황이 찾아들었는데 돈은 벌었고 나이도 들었으니 사업을 접고 고수익투자에 눈을 돌렸다. 지인들이 시공하는 건축업에 돈을 투자했는데 어음을 받고, 2순위근저당권을 설정하고 매월 높은 이자를 받는 속칭 돈놀이. 그러나 불황기에 분양이 저조한 것은 뻔한 일. 이자 몇 달 들어오고는 몇 달 만에 스톱, 사업장이 부도가 나니 경매가 진행되고 결과적으로 2순위 설정권자에게 돌아오는 돈은 한 푼도 없다. 이자 몇 푼 받고는 원금을 고스란히 날린 것.


내가 알기로는 처음 깨진 것이 친한 친구에게 당한 11억 원. 비우면 다시 채우고자하는 심리, 사람이 본전을 찾고자 하는 심리는 가히 본능적이다. 한번 본전을 잃고 나니 원금을 회복하려고 대여섯 차례 같은 형태의 투자를 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고백으로는 한 50억 원 해먹었단다. 나와의 술자리에서 그 친구가 하는 말‘형님! 저는 이상하게도 잔돈푼에는 강하고 큰돈에는 약해요. 고치려고 해도 그게 안 됩니다.’ 협심증과 심한 당뇨를 앓고 있었는데 작년도 초여름 날, 자살한 동생의 장례식장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저 세상으로 갔다.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여자들에게 살갑게 잘 대하니 따르는 여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장례식장에서 한 여자가 그러더란다.‘어차피 이렇게 갈 거면서 데이트할 때 좋은 음식이나 사주지 이게 뭐냐고’데이트를 할 때 점심이건 저녁이건 매번 식대가 5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장례식을 마치고 재산 정리를 하면서 보니 그 동안 남아 있는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월2부 조건으로 건축업자들에게 사채를 놓고 그 이자를 받아서 일부는 은행대출금 이자를 갚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는 기막힌 재테크를 하고 있었더란다. 사채 쓴 사람들, 채권자는 죽었겠다, 이미 갚았다는 사람도 나오고 내배 째라 하는 사람도 나오니 받을 돈은 별로 없고, 줄 돈은 갚아야 되고 남는 게 얼마 없더란다. 그 친구 손위처남 말로는 퉁퉁 치고 나니 그래도 한 50억 원 되겠다나. 그래도 그 부인, 남편이 많은 재산 남기고 갔으니 큰 횡재를 한 것 아닌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반의어로 대탐소실(大貪小失)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자질구레한 작은 일은 염두에 두지 말고 큰 것에 신경 쓰라는 뜻이다. 또 다른 뜻으로는 단숨에 크게 이루겠다는 허황된 꿈에 취해 자신이 갖고 있는 작지만 모든 부분을 모두 잃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즉 큰 것을 탐하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뜻과도 통한다.


대탐소실(大貪小失)의 심리. 화투판에서 흔히 통용되는 한방의 브루스다.  고스톱 판에서 기본 3점짜리 열 번 나는 것보다 위험하지만 쓰리고 한두 번하는 것이 훨씬 소득이 크다. 그러니 노름판에서 ‘화약장사가 돈을 많이 번다’‘도토리 여러 번 구르는 것보다 호박 한번 구르는 것이 훨씬 낫다’고하며 대박을 위해서는 ‘못 먹어도 고’라는 말도 횡행한다. 도리짓고땡에서 노 한번 나봐라 얼마나 큰돈이 들어오는지...이것이 한두 번은 통할 수 있다. 그러나 화투판을 오래지속하다 보면 돈을 딴사람은 없고 전부 잃은 사람만 나온다. 노름해서 부자가 된 사람도 없다.


대탐소실의 심리. 이것이 큰돈을 소홀하게 투자(투기)하게 되는 원인이다. 노름판에서의‘아니면 말고’식의 투기심리와 ‘한방의 추억’이 사람의 경계심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소탐대실도 대탐소실도 모두 정도껏, 지나침을 경계해야 된다.


나 역시 살아온 길 뒤 돌아 보면 자유롭지 못한 사람. 다시는 덫에 걸리지 말자고 수도사가 기르는 앵무새처럼 다짐하면서도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당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들뜬 기대심리는 잠깐이고 후유증으로 겪게 되는 고통은 길다. 이제 다시는 대탐소실의 덫에 걸리지 말자는 것이 한해를 보내면서 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송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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